이번에는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테스트기 위에 희미하게 떠오른 두 줄.
기쁘지만 확신할 수 없었던 그 순간, 우리는 조심스레 마음을 눌렀다.
너무 들뜨지도, 너무 기대하지도 않기로.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조금 더 선명해지길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12월 29일 새벽.
평소 꿈을 거의 꾸지 않는 내가, 이상한 꿈을 꿨다.
초록빛이 도는 커다란 잉어 한 마리를 내가 품에 꼭 안고 있는 꿈.
꿈에서 깼을 때 심장이 두근거렸고, 순간 '혹시 태몽…?'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검색을 해보니 잉어나 물고기는 예로부터 태몽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이라고 한다.
꿈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씩 웃으며 “우리 애기일지도 모르지”라고 말했다.
마음 깊은 곳이 살짝 일렁였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새해가 밝았다.
양가 부모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는 전화를 하던 중,
어머니께서 불쑥 말씀하셨다.
“며칠 전에 이상한 꿈을 꿨어. 넓은 들판에 소와 조상님들이 한데 어울려 막 뛰어다니는데…
그게 어찌나 평화롭고 따뜻하던지… 태몽 같더라.”
그리고는 웃으며 물으셨다.
“혹시 너희, 좋은 소식 있냐?”
아직 뭐라고 확답할 수는 없었다.
행운이 일을 겪은 후라 더 조심스러웠다.
아내와 나는 그저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선, 그 꿈들이 현실이 되어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자라고 있었다.
며칠 후.
조금씩 진해지던 테스트기의 두 줄이 어느 순간부터 멈춰 있었다.
변화가 없었다.
아내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점점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검색을 해보니 우리가 사용하던 특정 임테기 모델이 일정 진하기 이상으로 색이 진해지지 않는
이슈가 있다는 글들이 보였다.
확인해 보기로 하고, 다른 모델의 임테기를 새로 구입해 다시 해봤다.
그 결과는, 다행이었다.
다른 임테기에서는 다시 색이 진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역전까진 아니었지만,
1월 10일. 두 줄의 색이 거의 비슷해졌고
우리는 드디어 병원으로 향했다.
이번엔 처음 보는 선생님과 진료를 받게 되었다.
이전 담당 선생님은 퇴사하셨다는 안내를 받았다.
놀랍지는 않았다.
행운이와의 마지막 진료가 그 선생님과의 마지막이 되기를
사실 우리 둘 다 바라던 터였다.
새로운 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단정한 말투를 가진 분이셨다.
초음파 화면에는 0.3cm의 작은 점 하나가 보였다.
“아기집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라는 말에 잠시 숨이 멎을 뻔했지만, 이어진 설명은 조금 조심스러웠다.
“다만, 피고임이 많아서 정확히는 단정할 수 없어요.
아기집이 아닐 수도 있으니 피검사 해보시겠어요?”
피고임
익숙한 단어.
행운이 때와 똑같은 말.
그 순간, 머릿속에 안 좋은 기억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기쁨보다 걱정이 먼저 스며들었다.
내색을 숨기지 못했던 내 표정을 본 아내가
되려 웃으며 말했다.
“여보, 괜찮아. 우리 이번엔 잘 될 거야. 선생님 피검사 할게요”
아내는 이미 엄마였다.
두려움 속에서도 아이를 믿고, 나를 다독이는 모습에 마음이 아릿해졌다.
5일 뒤.
새벽녘, 아내가 복통을 호소했다.
놀란 마음에 예정된 진료일보다 앞서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실.
선생님은 조용히 저번 피검사 수치를 꺼내 들었다.
“HCG 수치가 1700이네요. 주수에 비해 조금 낮은 편입니다.
지난 번 말씀드렸듯, 이게 아기집이 아닐 수도 있어요.”
그 말은 또다시 우리의 심장을 조여왔다.
물론 각오하고 있었지만,
막상 다시 들으니 뼛속까지 스며드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초음파를 보며 말을 아끼시던 선생님은
잠시 뒤, 조금은 밝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피고임이 많이 줄었네요.
여기 보세요. 아기집 보이고… 난황도 보이고…
난황이 너무 이쁜 반지 모양이네요.”
모니터에는 아주 작고 희미하지만, 다이아몬드 처럼 반짝이는 난황이 보였다.
행운이때는 보지 못한 너무나 예쁜 모양이었다.
“5주 정도로 보이네요. 출산 예정일은… 9월쯤 되겠어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안심과 기쁨, 그리고 눈물이 뒤섞여 마음을 파고들었다.
우린 조심스럽게 서로를 바라봤다.
그 눈빛엔 ‘안도의 숨’과 ‘다시 시작된 설렘’이 함께 있었다.
이번엔 부디, 잘 자라주기를.
기적은 조용히, 그렇게 우리 곁에 다시 찾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