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하루 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쁨의 연속이다. 실수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속 다짐으로 긴장된 몸을 이끌고 주유소 아르바이트 첫날은 예전 기억을 더듬고 차근차근 하나하나 배우며 단골손님을 눈에 익히면서 끝이 났다. 온몸에 밴 기름냄새와 얼마나 뛰어다니며 설쳤는지 몸에는 땀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집으로 돌아와 대충 씻고,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는 라면을 3개나 끓여 냄비가 닳도록 박박 긁어먹었다. 깊은 밤 별들도 새들도 모두 잠들어 있는 조용한 새벽에 일어나 선생님과 함께 땀을 흘리며 동네 한 바퀴 청소 일을 하고
청소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기쁜 웃음으로 다닐 수 있는 생각으로 환경미화라는 높은 존칭을 사용하고 선생님과 조금씩 대화의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했다. K 군이라는 내 이름을 밝히고 아이들이 넷이라 선생님의 안정적인 직업으로 네 아이를 키우기란 너무 힘들고 사교육비에 생활비에 빠듯하게 살아가는 가정 살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어떤 일이던 도전해 보고 싶었다는 선생님의 열정과 노력으로 선택한 일이 상쾌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미화 일이 뿌듯하다고 하셨다. 미화 일이 끝난 후 동네 달 목욕을 끊고 시원하게 몸을 씻고 학교로 간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이쁜 제자들에게 불쾌한 냄새가 들킬까 봐 몸에 옷에 방향제까지 뿌려가며 단정한 옷차림으로 변신을 하신다며 처음에는 사모님께서도 엄청 반대를 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일이라며 많은 사람들의 새벽을 밝혀주는 일이라 너무 뿌듯하다며 믿어 달라고 시작했던 일이 벌써 3년째 접어든다며 잠시 쉬는 사이 빵과 우유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내일 뵙기를 약속하며 아침이 밝았던 것이다. 그래도 허기가 져 편의점에서 컵라면, 삼각김밥으로 아침을 해결 난 후 가을이 오려는지 아침 바람이 제법 시원해지며 30분을 걸어 주유소에 도착을 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많은 샐러리맨들에게 친절한 인사로 자동차의 배고픔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시간에 쫓기며 바쁘다 보니 그녀를 생각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녀는 가끔 집으로 와서 옷을 갈아입은 흔적을 남기고 간다. 내가 알지 못하는 듯하고 생각을 하겠지만 내가 놓아둔 줄지은 물건들이 제 자리를 잃은 듯 비뚤어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나 왔다 갑니다"라고 선전포고를 하는지 방구석 빨랫줄에 빨랫비누 냄새가 아직 남아 있는 주먹 2개가 나란히 들어갈 만한 속 옷이 걸려 있기도 했다. 보기가 흉하기도 했지만 아직 얼굴 한 번 보지 않았던 그녀와 마음속 텔레파시가 통화는 지
거리감이 어느 정도 가까이에 온 듯 두 주먹 속 옷을 보면서 괜스레 웃음이 났다. "이야 부끄럽지도 않은가 봐 제법인데"라는 마음속 혼잣말을 하게 되고 제법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5분 거리마다 주유소 간판이 어서 오라며 손짓하는데 유난히 내가 일하는 곳에 차들이 마치 중고차 매매 상가인 듯 줄지어 들어오는데 땀을 비 오듯이 흘리긴 했지만 다른 아르바이트생보다 일을 빨리 배울 수 있었다. 나는 미친 듯이 주유소로 들어오는 자동차마다 달려들어 민망할 정도로 90도 인사를 칼같이 하였다. 같은 시간에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중 군 입대를 앞둔 친구도 있었고,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취준생인데 부모님 몰래 일하는 친구도 있었다.
이 녀석은 부모님의 심한 관습이 싫다며 공부 머리도 좋지 않은 데다 부모님의 지나친 욕심에 안정된 직장에 취직해서 서로 경쟁하는 삶이 너무 싫다고 했다. 이미 학창 시절 부유했던 부모님 아래에 유명하다는 학원을 바꿔 다니면서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탈모까지 왔다며 머리 정수리 속 밤송이만 한 원형탈모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정말 경쟁하는 삶은 싫다고 그냥 평범한 삶을 꿈꾸고 있었다.
"오라이 오라이, 어서 옵시오, 주유구 열어주시고요 얼마나 넣어 드릴까요" 차들만 보면 입버릇처럼 말한다. 솔선수범을 보이며 열심히 일하고 내 모습을 보고 이 녀석들이 보고 배우겠지라고 생각을 했지만 MZ 세대의 사람들은 자기 일만 하면 되지 더 이상 더 이하도 아닌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자동차가 들어와도 주유구 앞에 서면 로봇처럼 주유소 뚜껑을 열어 주유하고 결재하고 주유구를 받으면 끝이었다.
이번 역시 하얀 차가 들어왔고, 습관적인 인사로 말을 한 뒤 운전석 차 문을 연 젊은 여성은 "가득이요"라는 말을 하면서 이상하게 신경 쓰이는
미소를 띤다. 그런데 자동차 안에서 에어컨 바람으로 풍기는 향수가 낯설지 않았다. 어디선가 많이 코 끝을 스치는 향수 냄새였다는 것을 주유구 옆에 서서 뇌세포가 "이거 뭐지" 하는 신호를 전달해 주었다. 어디서 많이 맡아본 향수가 분명 한데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학창 시절 개 코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냄새 귀신이었는데 지금 냄새를 맡는 코 끝의 신경은 분명 귀신이 맞는데 기억의 뇌세포는 기절 세포처럼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는 사이 주유는 끝이 났고 이 분도 창문을 올리며 가 버렸다. 기억을 되찾아하는 나름대로의 큰 숙제를 해결해야 했다.
하루 종일 머릿속에 익숙한 향수가 계속 맴돌고 있다. 그리고 3964 하얀색 차량 번호 언제 올지 모르는 익숙한 향수의 차량과 숨바꼭질해야만 하기에 주유소 알바는 더욱 재미가 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