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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서린 Nov 26. 2024

6화 연애


과거 나의 연애들은 처음은 설레고 즐겁고 미래에 대한 벅찬 기대로 시작되었다가 익숙해지고 그 사람을 더 알아갈수록 실망하는 일이 많아지다가 결국에는 끝나버리는 그런 형국이었다.


개천절, 우리의 연애가 시작되던 날, 나는 마음속으로 과거의 연애를 반성해보기도 하면서 예전보다 상대를 이해하는 연애를 해보자고 다짐했다.


평소 어디 다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 듯한 남자친구는 나 때문에 서울 곳곳을 많이 다니게 되었다. 삼청동, 혜화, 신촌은 우리가 자주 가던 데이트 장소였다. 궁을 좋아했던 나는 남자친구와 연애하기 전에도 서울 사람들은 잘 안 간다는 경복궁이나 창경궁, 창덕궁 같은 궁에 자주 갔었다. 피천득 님의 <인연>이라는 수필집에서 처음 알게 된 창덕궁 안에 숨겨진 장소 같은 비원이라는 곳도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였다. 늘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사귀고 첫 번째 데이트 장소로 비원을 가면 어떨까 해서 창덕궁으로 갔다. 알고보니 비원은 예약제였다. 그래서 두 번째 데이트 때 미리 예약을 하고서 가게 되었다. 비원을 걸어 들어가면 중간쯤 연못과 정자가 나오는데, 거기서 둘이 찍었던 사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연애를 막 시작한 행복해 보이는 풋풋한 연인의 모습이었다.


반년 간은 정말 별다른 트러블 없이 잘 지내서 좀 놀랍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그만큼 말과 행동에서 서로 많이 배려해 주었던 것 같다. 가끔 대화가 물 흐르듯 재밌게 끊임없이 이어지지 않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코드가 완벽히 맞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었다. 남자친구는 수다스러운 성격은 아니라 거의 내 얘기를 듣는 쪽이었다.


그러다 익숙해질 무렵, 뭔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눈치인데 물어보면 아니라는 말만 하고 그런데 분명히 태도는 달라져있어서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잦아졌다. 결국 그게 싸움이 되었다. 반년 간의 평화가 깨졌던 순간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했다. 이전의 연애에서는 내가 상대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고 상대가 나를 풀어주는 상황이 대부분이었다면, 이 연애는 어찌된 일인지 남자친구가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있고 나는 영문을 몰라 답답해하다가 처음 이 연애를 시작했을 때의 다짐을 생각하며 내가 상대를 달래주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잦아졌고 점점 싸움은 커져갔다.



난 착하고 마음 넓은 사람이 좋은데, 알면 알수록 예민하고 속 좁은 남자친구의 모습에 점점 내가 그리던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만난 지 1년이 훌쩍 넘은 어느 날, 길가에서 크게 싸우고 서로 끝내자 하고 돌아섰던 날이 있었다. 이렇게 싸우고 힘들 바에 더 만나서 뭐 하나 싶었다. 나를 보듬어주지는 못할망정 늘 이기려 드는 애 같은 모습에 질려버렸다.


원룸으로 돌아왔다. 밝은 낮에 이별을 하고 돌아왔다. 있을 곳은 침대뿐이라 오도카니 앉아서 헤어진 우리를 생각했다. 밤이 되었고, 이게 헤어진 건지 어쩐 건지 헤어진 날이라 그런 건지 끝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찝찝한 마음과 함께 멍하니 누워있는데 전화가 왔다. 몇 시간 전 헤어진 남자친구에게서...



조금 전에 끝내자 하고 헤어지고 왔는데 휴대폰에 뜬 그의 이름이 얼마나 반갑던지...  


'왜 전화를 한걸까?'


몇 초간 울리는 핸드폰을 바라보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내가 말했다.


"나는 너랑 평생 헤어질 생각 없어." 남자친구가 말했다.


그 말이 나에게 프러포즈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남자친구의 그 말 한마디로 좀 전에 싸우고 헤어지자 하고 돌아섰던 사람들이 맞나 싶게 우리는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화해하고 또다시 만남을 이어갔다. 무슨 이유로 싸운 건지 기억도 나지 않고 헤어졌다고 할 수도 없는 에피소드 같은 몇 시간이었지만 '평생 헤어질 생각이 없다'라는 그 말은 나에게 생각보다 큰 확신을 주었다. 그 말처럼 평생 헤어질 것 같지 않았다. 그 후로도 물론 다투기는 했지만 헤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만난 지 2년 가까이 되어 갔고, 우리는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7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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