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질 때까지 상처받고 아파하기
학창 시절이든 성인이 되어서든 짝사랑의 유형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원초적인 감정은 동일하다.
말 그대로 혼자서만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이고, 또 혼자서만 아프고 힘든 일이다.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가끔씩은 아프고 힘든 일도 있는 일반적인 사랑과는 차원이 다르게 힘들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든 짝사랑을 놓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을까?
각자 저마다의 이유들이 있겠지만, 나는 가장 큰 이유는 '의미부여'라는 합리화 기술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가 스쳐 지나가게 말했던 사소한 것들을 기억해 주길래, 상대도 나에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다.'
'같이 대화하면 서로 재미있고 잘 웃어주길래, 상대도 나에게 호감이 있는 줄 알았다.'
물론 서로 호감을 인정한 상태에서는 당연히 서로 관심이 있어서 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겠지만,
나도 인정한 짝사랑 상태에서의 이런 상대의 행동은 그저 배려 또는 친절함일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저 상대의 모든 행동에 나의 행복회로로 합리화를 돌리는 것뿐이다.
사실 짝사랑 중에는 사소한 모든 행동에 의미부여를 하게 되기 때문에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괴로운 짝사랑을 끝내고자, 나 또한 유튜브에 짝사랑 끝내는 법을 검색해서 밤새도록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아침이 오면 그 기억은 리셋되고, 다시 또 나는 짝사랑 굴레에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일상이 힘들어질 무렵, 이 무모한 내 짝사랑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완벽히 끝을 맺었다.
그 방법은 상대방에게 더 집중해서, 그로부터 오는 상처들을 기꺼이 받고 받아 무뎌질 때까지 두는 것이다.
무슨 그런 게 방법이냐고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이만큼 강력한 방법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의미부여를 하며 계속 짝사랑을 해나가는 것은, 아직 상처받을 에너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받은 상처보다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의 크기가 아직 더 크다는 말이다.
상대에게 집중하면 할수록 나에게 관심이 없는 상대방의 마음을 더 또렷하게 느낄 수 있다.
그렇게 기대했다 실망하고, 다시 또 혼자 상처받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정점을 찍는다.
'내가 이렇게 힘든 동안에 저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텐데.'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구나, 계속해봤자 나만 망가지는 거구나.'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부턴 같은 상처를 받아도 무뎌졌고, 더 이상 슬픈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짝사랑으로 인해 뒷전이었던 내 일상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를 갉아먹던 짝사랑을 몇 개월 만에 겨우 끝낼 수 있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노랫말도 있듯이.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또한 소중한 경험이지만, 현재 짝사랑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겐 꼭 전해주고 싶다.
이뤄지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실컷 해보고 빨리 털어내는 것 또한 좋은 결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