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최선일지도.
'최선을 다하자!'
아마 한 번쯤이라도 무언가를 위해 열정적으로 살아왔던 사람이라면 몇 십 번은 외쳐보지 않았을까?
나 또한 스스로에게 되뇌었던 말로, 여기서 최선은 '내가 가진 에너지가 방전될 때까지 끝까지 해보는 것'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야 나중에 후회도 어떠한 미련도 없을 것만 같았다.
장기연애를 하는 동안 이런저런 다름으로 다투며, 결국엔 사랑이 식었다는 걸 인지한 순간에도 나는 그랬다.
그에게 나는 그저 동등한 사람일 뿐, 더 이상 연인으로서의 감정은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망하고 상처받으며 나 스스로를 갉아먹으면서도, 나는 내 에너지가 다 없어질 때까지 버티고 버텼다.
결국 모든 에너지가 방전될 때까지 버틴 나에게 돌아온 건, 더 큰 상처와 그 사람에 대한 미움뿐이었다.
이 연애의 끝을 직감했을 때, 서서히 내 마음을 정리하고 마무리를 했었더라면 이보단 덜 아팠을 것 같았다.
비단 연애뿐만 아니라, 건강을 잃어가면서도 다니는 게 최선인 줄 알았던 나의 첫 회사 생활도 그랬다.
과도한 업무량과 매년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조직개편으로, 20대 중반 젊은 나이에 나는 꽤 아팠다.
장시간 일을 하다 생긴 목 디스크와, 스트레스로 면역체계가 무너지면서 몸 이곳저곳에서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최선을 다했다. '여기서 포기하는 건 지는 거야, 항상 최선을 다하기로 했잖아!'
결국 회사가 합병으로 인해 폐업을 하게 되면서, 나는 비자발적으로 퇴사를 하게 되었다.
퇴사를 하고 나서는, 그동안 아팠던 몸을 치료하기 위해 몇 달 동안 병원투어만 했던 것 같다.
그동안 버티면서 벌었던 돈은 나의 몸을 그저 원위치시키는 일에 쓰이고 있었다.
다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생각했다.
'내가 최선을 다한 것이 과연 나에게 정말 최선이었을까?'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나는 비로소 최선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다시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최선이란 그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끝까지 버티고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선에서, 옳은 결정을 내리고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나처럼 지금 최선을 다하느라, 본인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때론 적정한 선에서 멈추고 물러나는 것이, 정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