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생각엔 슬레이트를

by 홍미

단순하게 살고 싶다고 말은 하면서도, 항상 복잡한 것에 더 끌리는 사람이다.

사소한 선택에 있어서도 오만가지 감정을 다 끌어와, 막판에 가서야 결정을 내리는 일이 많다.

더는 생각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등 돌리면 또다시 생각에 잠겨 허우적대기도 한다.


처음엔 나에게 남들보다 힘든 일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게 오는 일들을 미리 알고 막을 수만 있다면, 나도 불필요한 생각과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몇 주 전부터 걱정했던 회의도 무사히 마쳤고, 나를 짓누르던 집안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그렇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었던 유일한 순간에,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더 불안해졌다.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게, 마치 내가 무언가를 깜빡한 느낌이었다.


해야 할 일 중에 안 한 게 있는지, 오늘 내가 잊은 약속이 있었는지

내일 회사에 중요한 일정이 있는지, 혹시 친구나 지인의 생일을 놓치진 않았는지

정말 사소한 것들까지 다 확인을 해가며, 이 고요한 평온의 이유가 무엇인지 찾으려 했다.


아마 내 머릿속은 뭐 하나라도 잡고 계속해서 회로를 돌려야, 안정감을 느끼는 경지에 이르렀나 보다.

잠시라도 생각을 멈춘다는 건, 나에게는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사실 특별한 일이 없는 평범한 하루일지라도, 사소한 결정과 선택으로 가득 차있다.

그래서일까, 생각을 멈출 수 없는 나 자신이 때로는 참 안쓰럽기도 하다.

쉬지 못하고 아등바등 생각을 이어가는 게 스스로에게 못할 짓 같았기에.


그래서 이젠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슬레이트를 치기로 했다.

다음 주의 회사 일을 미리 걱정하다가도, 일단 오늘은 떡볶이나 먹고 빨리 자버리자고 다짐했다.

누군가의 말투 하나하나에 괜히 의미를 부여하며 마음이 흔들릴 땐, 좋아하는 예능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갑작스럽게 불안이 밀려와 마음이 텅 비는 순간에는,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을 꺼내 집중했다.


유치한 방법이지만, 신기하게도 나에겐 효과가 꽤나 좋았다.

오늘의 고민과 걱정은 할당량을 채웠으니, 남은 건 내일로 미뤄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건강한 정신을 지키는 수단이 되었다.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할머니가 손녀에게 건넨 말이다.

말 그대로 바꿀 수 없는 과거를 그리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되뇐다.

'오늘은 딱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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