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엔 우리네 인생이 있어

by 홍미

불가피하게 회사를 나오게 되면서, 10년 만에 원치 않던 백수가 되었다.

회사생활을 할 때는 지금 내가 일을 하지 않고 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꾸곤 했었다.

'회사에 갇혀서 로봇처럼 일하는 것 대신, 하루 온종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인생.'

생각만 해도 미소가 새어 나오는 행복한 상상이었다.


하지만 막상 퇴사를 하고 나니, 낙동강 오리알이란 말처럼 텅 빈 세상에 떨어진 느낌이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학창 시절 그리고 직장인 생활까지, 대부분이 항상 어딘가에 소속된 채 살아간다.

그래서 온전한 하루를 통째로 내가 계획하고 살아간 경험이 거의 없는 것이다.


분명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막상 시간이 주어지니 뭐부터 해야 할지 막막함이 앞섰다.

일단 몸부터 움직여보자는 생각으로 일찍 일어나 매일 아침 집 근처 카페에 갔다.

이른 시간에 도착한 카페엔, 예상외로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창문이 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잡고, 앞으로 어떤 것들을 해나가야 할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이직하기, 출간하기, 영어공부 하기, 운동하기...'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들을 써내려 가니,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이제 곧 연말이라 채용도 많이 안 할 텐데, 이대로 공백기가 너무 길어져버리면 어쩌지?'


마음 한편이 뻥 뚫린 듯한 마음으로 창문을 보며, 잠시 숨을 고르고 있던 찰나였다.

바로 옆에 친구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앉았고, 그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혼'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일부러 들은 건 아니지만, 이어폰을 꽂고 있지 않아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내 귀에 실시간으로 꽂혔다.


한 남자는 부인이 얼마 전 바람이 나서, 결국 이혼을 결정했고 법적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이런저런 위로의 말을 건네더니, 그는 이제 곧 사업을 접을 거라고 했다.

코로나 이후 잘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버텨 왔는데, 최근 사정이 너무 어려워졌다고 한다.


한참을 얘기하던 그들이 떠난 뒤, 나는 괜스레 같이 무거워진 마음으로 채용공고 사이트를 열었다.

원하는 직군을 검색하며 둘러보니, 역시 내 생각대로 채용 공고 자체가 많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과 함께, 추가 주문한 커피를 가지러 일어났다.


커피를 받아 돌아오는데, 옆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펜이 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펜을 주워서 건네려고 했지만, 그는 혼잣말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있었다.

옆에는 두꺼운 토익책이 올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자기 계발 중이거나 취업 준비 중인 것으로 보였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살짝 옆에 펜을 올려두니, 그는 이어폰을 빼고 나에게 꾸벅 감사 인사를 건넸다.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을 보니, 잠시 늘어졌던 마음을 다시 붙잡게 되었다.


어제 쓰다 말았던 이력서를 마무리하고 남은 음료를 정리하고 있는데, 앞에 익숙한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쌩판 모르는 남이지만, 괜스레 내적 친밀감이 생긴 내 또래 여자였다.

그녀는 매일 내가 카페를 오는 시간이면, 항상 내가 앉는 창가자리 쪽에 앉아 있었다.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늘 노트북을 바쁘게 두드리며 열중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알 수 없는 동지애와 힘이 올라오면서, 나는 졸린 눈을 더욱 치켜떠가며 잠을 깨웠다.


그리 길지 않은 며칠 동안, 내가 카페에서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고민이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 또한 어떤 무언가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 눈에도 열중하는 내 모습이 그렇게 보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은 공간에서 누군가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어떤 이는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한다.

서로 다른 것들을 향해 가지만, 그 끝엔 모두 각자만의 행복을 꼭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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