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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Feb 05. 2023

홍릉숲을 찾아

복수초꽃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간다.

맛있는 곶감 빼먹듯 세월은 흔적도 없이 하루씩 흘러가 버리고 없다

매일 지나는 일이 별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게 내 나이이다.

별일이란 것이 없으면 좋은 나이라고 한다.


내가 빈시간이 있어도 무료하지 않고 갈 데가 많아 행복하다고 생각하다.

집안에 있어도 할 일이야 많다. 집안 정리하고 우리 토리랑도 더 놀아주면 좋고

냉장고를 뒤져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도 시간을 보람 있게 쓸 수 있다.


코로나로 저녁약속이 없어져서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넉넉했는데 지금은 저녁에도 약속이 있다

보니 전처럼 그리 넉넉하지는 못한 것 같다.

약속이라야 그리 생산적이지는 않다.

오래된 친구들과의 약속이거나

직업상 필요한 모임이거나 모두 친목모임이다.


가능하면 주말에는 산이나 여행 가는 모임이 아니면 따로 잡지 않는다.

몇 시간 약속을 위하여 하루를 소비하고 나면 너무 아쉽다.

주말에 집에 있는 날은 겨우 세수만 하고, 종일 지낸다.

보고 싶은 책을 보는 날도 있고,

보고 싶었던 영화나 드라마를 골라서 본다.

어제 금요일 저녁에는 미루고 있던 ‘더 글로리’를 봤다.

드라마에 심취해 다 보고 나니

새벽 3시가 넘었다. 주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오늘은 국립산림과학관에 있는 홍릉숲에 가기로 약속한 날이다.

숲 해설하는 친구 8명과 함께했다.

만나면 항상 왁자지껄 엄청 상쾌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친구들이다.

매 주일, 길어도 한 달이 넘지 않게 15년을 봐오던 친구들이고.

취향이 비슷하여 만나면 편하고, 생기가 돋고 젊어지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 있는 귀중한 나무들이 그곳에서 자라고 있다.

곳곳에 이런저런 나무들이 거의 다 있다.

자연 상태로 둬서 인지 수세가 그리 왕성하지는 못하다.

매번 가지만 그 이유가 불분명하다.

숲으로 가꿔지지 못하고 항상 그 크기로  자라고 있다

2년 동안 숲해설을 했던 곳이라 곳곳에 있는

나무들을 거의 알고 있지만 사라지는 나무들도 많다.


오늘은 입춘이다.

어떤 집에선 대문을 활짝 열고 ‘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글귀를 쓰기 위해 먹을 갈고 있을 것이다.

어떤 집에선 봄맞이 집안 청소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오늘 주목적은 복수초를 보기 위해서이다.

자로 ‘福壽草’인데 가장 중요한 壽, 福을 의미하지 않을까 한다.

얼음을 뚫고 나와 꽃이 피면 그 주위는 동그랗게

녹아있는 것을 볼 수 있어 얼음새꽃이라고도 한다.

꽃의 자체 체온으로 얼음이 녹는 것을 볼 수 있다.


깊은 산속에서 자라는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미나리아재빗과는 대개 독성이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풀이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투구꽃, 사위질빵, 동의나물들이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보기는 흔치가 않아 자주 이곳을 찾고 있다.

가장 이른 봄에 줄기 끝에 한 송이 잔 모양의 노란 꽃이 잎보다 먼저 피어난다.

남들이 잠들어있을 때 일찍 일어나고,  남들이 일어나면 벌써 잠에 취하는 꽃이다

물 빠짐이 좋고 통기도 잘되고 부엽토에 쌓여 있는 그늘진 곳이라야 잘 자란다.

대개 여러해살이풀이라서 같은 곳을 보존하면 다음 해에 또 볼 수 있다.


지인이 자기 집 뒤뜰에 복수초가 있다고

해서 뿌리가 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감히 뽑아서

볼 수가 없어 자기도 아직 못 보고 있다 한다.


10시 반쯤에 복수초가 있는 곳을 갔더니 가장 큰애가 아직 봉오리 상태였다.

그리고 그 옆에 아직 눈을 뜨려고 하는 애들이 몇 개 있었다.

매번 비슷한 형태이다. 오늘은 틀렸나 보다 하고 다른 꽃들을 살피며

산책하다 보니 1시가 되어 내려왔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복수초 꽃이 활짝 피었다고 한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봉오리였는데.

식사를 마치고 다시 그곳으로 갔다.

벌써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울타리 가를 에워싸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아까 봉오리로 있던 꽃과 그 옆에 작게 있던 파란 봉오리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곳에서 복수초를 지킬 생각을 못했지만 파노라마로 촬영했어도 될 뻔했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일찍도 나오더니

꽃도 순식간에 피어버린 복수초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꽃같이 살짝 오므린 꽃잎들은 안에 수많은 수술들을 담고 앉아있다.

금세 초록색 잎을 내어 조화를 이룰 것이다

그리고 다른 꽃들이 나오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갈 것이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상사화도 있는데

남들 못 보는 것은 별것도 아닌지 모르겠다.


복수초 옆에는 길마가지와 산가막살나무, 수수꽃다리가 뚱뚱한 꽃눈을 키우고 있다.

머잖아 이곳저곳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생명들이 나올 것이다

가끔은 생각한다.

사람은 한번 태어나면 그 모양 그대로 죽을 때까지 있어야 하지만 나무들은 매년 새로운 옷을 가라 입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니 사람보다는 훨씬 오래 살아도 지루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야.

사람은 머릿속 두뇌의 복잡함 때문에 더욱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가?

어디든 갈 수 있는 다리가 있으니 사람이 더 좋은가?

밤이 늦어지니 갑자기 머릿속이 멍해진 건가?


                                    2023년 2월 5일 새벽에



#홍릉#복수초#입춘


사진 무단 사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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