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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Feb 25. 2023

열어젖힌 커튼사이로

참새


거실 깊숙이 들어온 따뜻한 햇볕이 반갑다.

아무 소리 없이 슬그머니 내려앉아 있는

햇살 때문에 기운이 조금 나는 것 같다.  

   

옛 사극에서 보면 병균이 창궐하면 병풍을

몇 겹으로 두르고 누워있는 왕세자를 보곤 한다.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을 거니까.

우리 집은 병균 때문이 아니라 추위 때문에

두꺼운 커튼을 쳐서 문틀 사이를 차단시켰다.   

  

1층이라 그런지 겨울이 되면 거실에

찬 기운이 사라지질 않는다.

베란다를 확장시켜서 더욱 그런다

뭐든지 처음 상태가 좋은 것이다.

두꺼운 커튼을 쳐놓고 있어서인지 훤한 대낮에

햇살이 이처럼 깊숙이 들어와 새삼 놀라웠다.     

몇 년 만에 이처럼 감기에 걸려보기도 처음이다

다행히 코로나와 독감이 음성이라고 나왔는데도

계속된 기침으로 피곤한 2주를 보내고 있다.

요즘은 대중교통에서 기침하면 벌레 보는 듯한

시선 때문에 출퇴근길도 조심스럽다.     



오늘은 산티아고에 같이 갔다 왔던 팀에서

등산 가는 날인데 남편만 보내고 난 빠졌다.

다들 아쉽다는 문자를 보내줘서 힘이 난다.

우리 토리도 오늘은 자기 방에 누워 긴 오수를 즐기는 모양이다.

모처럼 혼자 집안을 독차지하고 앉아 거실 커튼을 다 열어젖혔다.  


        

거실 밖으로 보이는 나무 위에도 봄이 와 있다.

집안에서 봐도 여러 나무들을 볼 수 있다

향나무가 줄지어 서서 눈 오는 겨울날이면 거실에 앉아서도 겨울을

맘컷 누릴수 있도록 하얀 동화의 나라를 만들어 준다.

그 곁에 서 있는 살구나무, 벚나무는 벌써  봄맞이 할 준비를 마친 듯하다

겨울눈 들이 살짝 터져가고 있는 것이 멀리서도 보인다.   

  

여름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듯한 느티나무가 그 곁에 자리 잡고 있다.

수많은 잎사귀를 만들어 여름을 시원하게 해 줄 것이다.

느티나무만큼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없을 것이다.

낙엽이 떨어질 때의 느티나무잎은 얼마나 얌전한가.

부스럭거리지도 않고 살짝 땅에 내려앉아 떠나가는 나무이다     

가을을 수놓는 복자기도 옆에 자리 잡고 있지만 키가

작아서인지 항상 느티나무에 치인 상태이다.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해 아쉬운 나무이다.     

키 작은 회양목이 울타리를 치고 있다

봄의 화단에서 가장 먼저 꽃이 피는 나무이다.

누군가 알아주지도 않지만 제일 먼저 왔다가

살그머니 사라지는 회양목꽃이다

아직은 꽃이 올라오지는 않았다.   

아파트 안에서는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거거하듯이

밖에서도 다양한 생명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느티나무 위에 아까는 직박구리가 있더니 지금은 잿비둘기들이 앉아있다.

아직 검불이 덮여있는 속을 뒤적거리며 먹이를 찾는 참새들이

오르락내리락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숲속도 마찬가지이지만 아파트 정원에서도 새들은 언제나

뮤지컬공연 중이다.

참새처럼 재잘거린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너무 시끄럽게 떠들면 '참새를 볶아 먹었냐'라고도 말한다.


겨울 10~15cm로 작은 새이면서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이는 가장 친근한 새다.

두발로 똑똑 뛰어 다니는 참새의 움직임을 따라 눈을 움직이다 보면

내 눈이 따라잡질 못한다. 단 1초도 가만히 있질 못한다.


먹이가 잡식성인 참새들은 여름철에는 그래도 해충등을

잡아 먹고 살아간다.

겨울철 추위에는 무리를 이루어 집단생활을 하게 되는데

먹거리가 많은 방앗간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참새 방앗간이란 말이 나왔을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곳은 별 필요도 없이 꼭 들려다 오면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랴’ 라고 말한다.

참새가 텃새이다 보니 속담도 많다

‘참새가 죽어도 짹한다’라는 말은 아무리 약한 것이라도

너무 괴롭히면 대항한다는 말도 있다


종종 뛰어다니며 먹이 사냥하는 참새가 물먹는 모습을 보면

절로 엄마 미소가 지어진다.

베란다 밖에 물그릇을 올려놨는데 새들이 오면

우리 토리가 짖고 난리가 난다.

부리로 물을 쪼아 목욕하는 모습 더욱 귀엽다.

적군이 쳐들어온 것으로 인식하나 보다

‘기특한 녀석, 밥값을 잘하고 있군’하며 또 엄마 미소를 짓는다.   


  

         내 감기도 겨울 자락과 함께 사라지길 바라며

    새봄이 우리 집 거실 깊숙이 들어와 자리 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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