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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Mar 05. 2023

주말 오후 공원에

산수유


2023년 정초부터 몸이 상큼하지 못하더니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음은 온통 물만나 개구리처럼 뛰어다녀야 하는데 몸이 따라주질 못하니 방법이 없다.

다들 피곤해서 그런 것 같다고 하니 쉬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냥 집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을 친구 삼아 주말에는 방콕을 하고 있다.

차츰 다가오는 봄기운이 펄쩍펄쩍 뛰어 나에게도 생기를 주길 바란다.     



막 공원이나 한 바뀌 돌려고 준비하는데 외손녀가 갑자기 들이닥쳤다.

만면에 미소와 ‘할머니~~’를 부르며 손녀는 온몸을 흔들며 격하게 인사한다.

잊지 않고 할머니 인제 안 아프냐고 묻는다.

‘당연하지. 안 아프지’ 하니 폴짝폴짝 뛴다.

다니던 유치원을 일 년 더 다녀야 한다.

항상 피곤에 찌들어 사는 딸은 오자마자 방에 들어가 눕는다.

우리 집은 항상 숙박시설이다. 그리고 식당이다.


롯데시그니엘에서 1박 하고 왔다 한다.

요즘 애들은 우리 때와는 다르긴 다르다.

나만 그렇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멀쩡한 집 두고 뭐 하러 호텔에서 잠을 자는지 모르겠지만

수영하기 좋다고 한다.     


손녀를 데리고 올림픽공원으로 나갔다.

이 공원은 강아지 출입이 가능해서 언제나 좋다.

사람 숫자만큼 강아지들도 도로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활보를 한다.

토리 줄을 잡은 손녀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잘도 뛰어다닌다.

줄을 잡고 가는데 수첩이 거추장스러웠는지 할머니 가방에 맡긴다.  

   

손녀는 항상 밖에 산책 나오면 연필과 수첩을 들고 다닌다.

그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그렇다고 집안 식구 누구도 그렇게 다니는 사람도 없다.

처음에는 신기해했는데 지금은 그냥 당연시한다.

할머니 수첩을 좀 빌려 주면 안 되냐고 한다.

자기 보물 가방 속에 들어있는 수첩이 있는데

할머니 집에 오면 할머니 것이 더 예쁘게 보이나 보다.

지나가다 특이하게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그걸 적거나 그린다. 


주로 도로를 그리기도 하고, 꽃이나 나무들을 그린다.

약도를 제법 그리는 것 같다. 도로를 세세하게 그린다.

가다가 뛰거나 놀려면 할머니 가방에 잠시 맡긴다.

자기 엄마 아빠는 그런 딸이 너무 부끄럽다고 한다.

어린애가 수첩을 들고 다니는 것이

남들이 얼마나 웃기게 보겠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가 특별히 미술에 소질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남편과 손녀와 토리랑 한컷 올라오는 봄기운을 잡으려는 듯

이리저리 갈지자로 걸어 다닌다.

방긋방긋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겨울눈들을 구경하며

야생화단지로 오니 전 주까지 피어있던 풍년화는 벌써 말라가고 있다.

그 곁의 길마지기는 아직도 눈을 못 뜨고 있다.

3주 차 지켜보고 있는데 쾌나 산고의 진통이 심하나 보다.

작년 12월에 눈 속에 피어있는 길마가를 봤는데 여기는 아직이다.




산수유의 빵빵한 겨울눈에는 노란 꽃망울들이 촘촘히 들어있다.

터질듯한 모습인 것으로 봐서 1주일만 있어도 제법 꽃잎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내가 작년에 산수유꽃을 따서 루페로 살펴봤다.

겨울눈 하나에는 보통 30~40개의 꽃대가 들어있다.

작은 꽃 하나에 꽃잎이 4장, 수술이 4개, 암술이 하나씩 달려있다.

그러니 그 작은 겨울눈 안에 160개가 되는 꽃잎과

160개의 수술, 40개의 암술이 옹기종기 맞대고 있는 것이다.

초과밀 상태이다. 그러니 빨리 얼굴을 보여 줄 수밖에.   

꽃과 어울리지 않는 줄기는 거칠기 그지없다.

꽃에 온 정열을 모으느라 줄기 치장에는 무신경한 듯하다.

             --   작년사진



노란 꽃이 지기 시작하면 파란 열매가 맺기 시작한다

그러다 가을이 되면 팥알 같은 빨간 열매가 달려 눈 오는 겨울까지 내내 달려있다

과육이 그리 맛이 없어 새들의 먹이가 되지 못하고 하얀 이불을 덮고 겨울을 나기도 한다.

그래도 이 열매를 말려 약재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나무들은 봄 맞을 준비로 눈코 뜰사이 없이 바쁘나 보다.

출산을 기다리는 산모들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식물들도 저마다 다른 전략을 세워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좋은 유전자를 남기려고 없는 두뇌이지만 머리를 매일 굴린다.

그래서 사람처럼 아롱이다롱이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복사꽃이 곧 피려고 봉실봉실한 탐스런 모습도 보고 내려와 자전거를 탔다.

4인용을 빌려 토리랑 같이 탔는데 처음 타는 토리가 겁에 질려한다. 

토리를 내가 안고 핸들을 잡고 페달을 밟으며 타다 보니 몹시 불편했다.

불안하다고 느낀 순간 팔 안에서 토리가 쭉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진다.  

순간적으로 꼬리를 잡아 땅에 떨어지지는 않아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십년감수한 것이다.

나는 토리를 안고 페달 밟기가 힘들어 남편 혼자

페달을 밟으려다 보니 잘 구르지도 않지만 손녀는 신이 났다.

얼마나 답답한지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뒤에서 밀어준다.

중간 매점에서 간식도 하나씩 사 먹고 힘을 다시 내서 돌아왔다     


슈퍼에 들려 저녁 찬거리를 사 와 ‘닭 한 마리’를 만들었다.

토막 친 닭을 넣어 끓이다 감자와 칼국수를 넣어 고소하게 끓이면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꼬막으로 무침도 새콤하게 만들었다.

손녀는 부엌에서 부침개의 반죽을 저으며 할머니의 저녁준비를 거든다.  

생선을 좋아하는 사위를 위해 사온 횟거리를 펼치고 숟가락을 놓는다.  요즘은 어른 한 몫을 한 것 같다.  

딸이 어렸을 때 집안 일을 잘 도와주더니 닮은 것 같다.

사위가 '저도 어렸을 때 엄마옆에서 도와줬어요' 한다.

어쩌든 다들 맛있게 저녁을 먹고 떠나니

지쳐 골아떨어진 토리의 코골이 소리가 벌써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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