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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Jul 23. 2023

난 성당 다니고 있다. 살아서 모두가 행복하면 한다.

49재에 다녀왔다

난 성당에 다닌 지가 40년이 다 되어간다. 성당에 다닌 후 한두 번 정도 주일 미사를 못 지켰지만 장기간 냉담을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어쩌든 열심히 다닌 것 같다. 그런데 내가 하느님을 믿고 열심히 다녔지만 지금도 성경도 잘 모르고 심신도 부족하다. 그런 신자들을 발바닥 신자라고 한다. 나도 발바닥 신자인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종교가 필요해지는 것 같다. 주일날에는 당연히 성당에 가지만 뭔가 허전하고 갈 때 없는 날 내 발길은 당연히 성당으로 들어간다. 요즘은 이웃집에 들어가는 것도 이런저런 눈치 보이지만 어디에 있는 성당이든지 내 집처럼 문을 밀고 들어갈 수 있어 좋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 저녁 가족 기도도 거의 빼지 않고 열심히 한다. 열심히 다니던 새벽미사는 체력이 도저히 따라가질 못해 직장에 다닐 때까지는 무리인 것 같아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지난 6월 남편 병간호하느냐 힘든 친구에게 영양제 선물 보냈다는 브런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친구 부부와 난 각별한 사이였다. 결혼 전부터 막역하게 알고 지내고 있었다. 그 친구 남편이 돌아가셔 어제가 49일째이다. 장례가 끝난 후 친구가 몹시 힘들어 어쩔 바를 몰라했다. 저녁마다 전화가 와서 못 살겠다고 운다. 아들이 엄마한테 와서 출퇴근해 주고, 딸이 왔다 갔다 하고, 곁에 친척들이 있는데도 너무 힘들다고 울기만 한다. 이러다가 우울증에 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같이 울어주다가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둘이 살다가 갑자기 가 버렸으니 허전한 것은 말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유난히 남편과 세트로 돌아다닌 친구이다. 노트 한 권 사 와서 남편한테 하고 싶은 말이나 과거에 못 해줬던 것, 서운했던 것을 생각나는 대로 쓰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편과 대화를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49재 끝나고 잠시 집을 떠나 절이나 어디 들어가서 쉬다 오라고 했다.     


친구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더니 그날부터 노트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한다. 하고 싶은 얘기, 보고 싶은 말들을 매일 노트에 쓰다 보니 맘의 안정을 찾아다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한다. 노트 한 권이 가득 채워져 간다고 한다. 의논할 일도 있으면 써보라고 했더니 남편이 대답도 해주더라고 했다. 그렇게 친구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어쩌든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주위에서 도와주는 것도 중요한 일 같았다.     



정토사에서 49재를 마지막으로 지낸다고 했다. 보통 가족들과 친지들이 참석한다고 들었다. 난 아직까지 불교와 정토사의 관계는 잘 모르겠다. 친구 남편이 정토사에 몇 번 다니며 후원금도 내고 있어 정토사에서 재를 지낸다고 했다. 마침 토요일이고 우리 집에서 가깝기도 해서 나도 가 보겠다고 했다. 자기네 친척 분들 중 교회 다닌다고 안 오신 분들이 많다고 했다. 정말 가 보니 자기 가족들과 남편 친구 몇 분이 와계셨다.     



 성당을 다니며 하느님에 대한 유일신을 믿는 내가 이곳에 와서 재를 지내는 것이 잘못된 걸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내가 믿는 것은 하느님이지만 난 다른 신에게 인사하려 가는 것이 아니고 친구 남편을 위해 기도하러 가는 것인데 그게 죄는 아닐 것 같았다. 난 어디서 하든 모든 기도의 종착은 하느님이라 굳게 믿는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나한테 뭐라고 훈계할지 모르지만 난 사는 사람이 서로 편하게 지내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생각이다.   

  

처음 가는 곳이고 이런 행사하는 것을 처음 봤다. 생소했지만 그대로 앉아 묵상한다고 생각하며 있는데 성당에서 하는 위령미사와 하등 다를 봐 없었다. 중간중간 부르는 노래 음률도 성당에서 듣는 음과 거의 흡사했다. 미사하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난 뒤에 앉아 절 하는 것만 빼고 다 따라서 했다. 그러면서 그들과 함께 극락에 들어가도록 기도했다. 마지막 49재를 막재라고 불렀다. 가는 분에게 드리는 노잣돈이라고 생각한다는 보시하는 순서도 있었다. 그래서 봉투에 헌금도 넣고 서서 고개 숙여 인사도 했다. 성당에서는 장례미사 중에 헌금은 하지 않지만 이곳은 하고 있었다. 오래전 상여 나갈 때 상여에 노잣돈이라고 돈을 주렁주렁 달고 나가는 것이 생각났다. 다들 그 돈은 장례 중 일하신 분들의 수고비라고 생각한다. 십시일반 그분들에게 베푸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 돌아가셨을 때도 염하면서 노잣돈 드릴 분들은 드리라고 하셔 봉투를 드렸던 것 같다. 꼭 이것을 비리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분들의 정성스러운 수고에 감사를 표한다고 생각한다.     


법륜스님의 설법을 스크린으로 들을 수 있는 시간도 있었다. 이 세상에서 저지른 죄를 다 씻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실 수 있도록 산자들이 기도하며 배고픈 자에게 베풀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신다고 하셨다.




내가 법당에 들어가서 친구 남편을 위해 49재 지낸 것이 하느님이 보셨을 때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오늘 성당에 가서 고백성사를 보며 여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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