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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Sep 06. 2023

맨발 걷기에 동참했어요

공원산책

그처럼 덥더니 저녁이면 창문을 닫고도 잠을 자는 걸 보니 더위도 인제 끝자락이나 보다. 사납게 울어대던 매미도 힘을 잃고 허물만을 벗겨두고 사라져 가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요동을 치고, 내 가슴의 희로애락이 아무리 요동을 쳐도 결국에는 지나간 과거로 쌓여간다. 과거가 모여 현재가 되었고, 또 미래가 만들어지겠지만 인제 지금을 잘 유지하는 것에만 집중하며 살아간다. 친구들과 전화하면서도 ‘그냥 그대로 별 일없이 잘 살고 있어’라는 대답을 듣는 것이 가장 좋은 인사말이 되었다. 나도 지금만큼만 잘 살아가길 기도하면서 지낸다.  


   

 요즘 나이 든 사람들은 다들 몇 가지 지병들을 껴안고 살아간다. 밥 먹고 나면 다들 약 찾아 먹기 바쁘다. 나도 매일 약을 먹으며 살아간다. 약도 먹고 영양제도 먹고 이것저것을 먹는다. 그래도 다리에 힘도 빠지고 기력도 빠져가는 기분이 든다. 저녁이면 아파트를 기둥 삼아 빙빙 돈다. 하늘에 떠있는 별도 찾아보고 달라진 달의 모습도 쳐다보며 걷는 그 시간은 온전한 내 시간이다. 나뭇잎에 살짝 쉬고 있다 다시금 살랑거려 주는 밤바람의 속삭임은  하루의 피로를 깨끗이 씻어 준다.


언젠가 tv 프로에서 맨발 걷기의 좋은 점이 나왔다고 한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맨발 걷기의 효능은 암도 치료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이 거짓일 수는 없는 경험담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매일 점심시간에 산책하던 산길을 누군가가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길이란 일부러 낼 수도 있지만 산길은 사람이 다니는 곳이 길이 된다. 더웠던 여름날 나뭇잎 그늘밑을 길을 만들며 한두 사람 걷다 보니 흙길이 되었다. 하나씩 굵은 돌이 치워지고 잔돌들은 빗자루로 쓸려나가며 제법 15분가량 걸을 수 있는 흙길이 만들어졌다. 우리가 발 딛는 곳은 흙이어야 하는데 문명과 함께 흙도 귀해져서 일부러 찾아다니며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을 보니 우리가 너무 멀리 왔나 보다. 지금은 옷이나 몸이 흙이 묻어있으면 질색을 하며 아이를 키우지만 정작 우리들은 흙도 먹고 마당에서 자라야지 건강하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던 것 같다.



시작점에 신발들을 가지런히 줄 세워두고 몇 바퀴를 돌다 보면 땀이 배어오기 시작한다. 떨어지는 상수리와 밤송이들이 자꾸만 가운데로 나오고 싶어 하지만 누군가의 손길에 멀리 던져지고 만다. 그리고 커다란 빗자루도 등장하였다. 그리고 정상의 그늘 밑에는 어디서 왔는지 의자 하나도 놓였다. 그렇게 하나씩 살림을 차리듯 흙길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땅이 말라가면 생수병 몇 개에 물을 담아와서 물을 뿌리며 촉촉한 산길을 만든다. 비 오는 날 밟은 흙길은 어린아이가 된 듯 다들 함박웃음을 띠며 흙장난을 하며 발은 진흙에 범벅이 된다. 우둑우둑 떨어지는 빗소리와 산길을 걷는 때는 최고의 힐링 타임이다. 가능하면 숲 속 산길을 걸을 때는 혼자 걷는다. 좋은 이 순간을 잡다한 얘기로 흘려보내는 것은 너무 아깝다.


이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다가  흙길을 걷고  다시 돌아오면  한 시간의 점심시간이 흘러간다.  최고의 시간이다. 혼자 긴 호흡을 해가며 세상 좋은 공기와 흙에서 오는 기운을 다 마셔 살이 찌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산책 가는 시간은 여름 뜨거운 낮시간이라 그리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요즘은 부쩍 늘었다. 구청에 흙길을 좀 더 다듬어 달라고 요청을 할까 하다가 그만뒀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길이라 사람이 많으면 불편하기 때문이다. 다들 나이 지긋한 분들이라서 서로 부딪치면 안 될 것 같고 시끄러워질까 가장 염려스럽기도 한다. 내 욕심이긴 하다. 주머니에 작은 라디오를 넣고 노래를 크게 틀고 다니는 아저씨들만 없다면 바람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자연과 호흡하며 걷는 최고의 길이 될 것 같다.


거친 돌들이 내 말랑한 발바닥을 이겨내지 못하고 서서히 땅속으로 숨어들고 있다.  순박한 나무뿌리들은 종일 발바닥에 뭉개지지만 아무 불만도 표하지 않는다. 밖으로 표현은 안 하지만 뭉글어져가는지 반질거려졌다. 잘 참아주는 나무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함을 매번 표현하며 걷는다. 우리들의 인생도 남에게 이처럼 밟히고 짓이겨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잠시 들기도 한다




맨발 걷기를 하면 혈압이 안정되고, 혈관 건강이 증진되고, 체온이 상승되고, 혈액순환이 촉진되고 등등에 좋다 한다.


피곤이 조금 줄고 불면증이 조금은 개선된 듯도 하다. 체력이 달려 이런저런 운동을 병행하고 있어서 뚜렷이 맨발 걷기만의 효과라고 하기는 아직 이르긴 하다.


지금 한 달여 됐으니 가능하면 쭉 해보려고 한다.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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