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은 끝이 없나 보다. 놀기 시작하자 그것도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 연휴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컴퓨터를 안 켜기로 했다. 하루 종일 날마다 컴퓨터에 붙어살고 있으니 이번 연휴 기간에는 머리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 명절이라 부엌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연휴 전날부터 아들도 오고 딸내미 식구들이 들이닥쳤다. 난 그 전날부터 이미 나물은 다 만들어둬야 했다. 그래야 연휴 시작 날에 전도 부치고 나머지 음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명절이 되면 3일 전부터 퇴근하면 다시 야근이 시작된다.
올해는 선물이 푸짐하게 들어왔다. 비싸다는 과일도 푸짐하고 고기세트도 있어 큰돈 들어갈 일은 없을 것 같아 그래도 다행이다. 가장 귀중한 선물은 아들과 결혼 날 받아둔 예비며느리가 보낸 참기름이다. 아들이 아버지가 깨와 참기름을 좋아한다고 말을 했나 보다. 일부터 재래시장에 가서 국산 깨를 사서 방앗간에 가서 참기름을 짰다고 한다. 물론 예비 며느리 엄마가 같이 가서 해줬다고 한다. 아들이 대구에 살고 있는데 대구 아가씨를 며느리로 보게 되어 다행이다. 대구에는 연고가 없어 고생하며 맨날 직장 옮기겠다고 했는데 인제 안착할지 모르겠다. 참기름이 4병이와 딸 한 병 주고, 옆에 사는 친구네 한 병 주고, 우리가 두 병 먹기로 했다. 친구는 이런 눈물 나는 기름을 어떻게 내가 먹냐고 한다.
연휴 첫날은 전을 부치고 생선도 찌고, 먹을 반찬도 만들다 보니 오후가 다 된다. 올해 심혈을 기울인 음식은 녹두전이다. 녹두 2kg를 담갔다가 믹서기로 갈았다. 돼지고기, 숙주나물, 고사리나물등을 넣었더니 큰 스텐통 가득 되었다. 음식을 안 하는 친구네도 주고, 좋아하신다고 해서 사돈네 집에 많이 보냈다. 딸래 집 제사 음식을 친정에서 해서 간다. 그 집 음식을 안 하면 우리 집 명절 음식이 줄겠는데 아직은 어쩔 수 없다. 혼자 계시는 사돈께서 제사를 꼭 지내고 싶다 해서 딸이 지내고 있으니 그냥 여기서 해서 오후에 간다. 일찍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다들 애틋하게 챙기시니 어쩔 수 없다. 며칠을 음식만 만들다 보니 밖에 나가 바람을 쐬고 싶어 집에서 가까운 영화관에 아들, 남편과 함께 갔다. 이것저것 고르다 고른 게 송강호가 나오니 괜찮겠지 하고 갔더니 세상에 그렇게 재미없는 영화는 처음 봤다. 팝콘만 먹고 온 것 같다.
명절날 아침, 차례상 가득 차려 차례를 지낸다. 시동생들이 있지만 명절에는 각자 집에서 지내기로 해서 오는 손님도 없다. 시부모, 조부모 4명의 밥그릇을 차린다. 그래봐야 아들과 세 명이 절을 한다.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이 다 와서 지냈는데 인제 우리 가족만 지내니 우리도 간소화하자고 하지만 그게 쉽지를 않다. 60% 이상이 차례상을 안 차린다고 한다. 투덜거리다가 그냥 포기한다.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만 하겠다고 했다. 며느리한테는 절대 안 물려주겠다고 남편에게 다짐을 받았다.
올 연휴 중 집에 있을 때는 tv만 보기로 했다. 한참 아세안게임 중계방송하는데 난 tv를 독차지하고 화면에 코가 곧 닿도록 앞에 앉아 보고 있다. 귀에 끼고 못 보는 난 크게 틀고 볼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다. 그것도 드라마와 영화만 보기로 했다. ‘무빙’이 너무 재밌다고 해서 그것을 다 보려고 했는데 난 도저히 끝까지 보지 못하고 12회까지에서 중단했다. 난 그냥 조용한 멜로드라마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왜 그리 학폭이 많은지 요즘은 허구한 날 학폭, 갑질, 폭력이 난무하다 보니 그런 것은 너무 머리가 아파진다. 스트레스만 더 쌓여 가능하면 보고 싶지 않다. 남궁민이 나오는 ‘연인’ 파트 1을 두 번 봤다. 그리고 ‘로운’이 나오는 드라마도 열심히 봤는데 왜 그렇게 잘 생겼는지. 정말 심쿵하다. 나한테 나잇값을 못한다고 남편은 나무라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일까? 요즘 나오는 탤런트 중에서 가장 잘 생긴 것 같다. 여주인공보다 더 멋진 로운이다. 뉘 집 아들인지 ‘키 크고, 잘 생기고, 노래 잘하고, 연기 잘하고 와 좋겠다’를 연발하며 쳐다봤다.
동숭동에 가서 연극 한 편 보고 오고, 사진 찍으러 하루 보내고, 맨발로 하루 등산하고, 하루는 친구들과 밥 먹고 수다 떨고, 그리고 저녁에는 드라마보고, 정말 책과 컴퓨터와는 담을 쌓고 살았더니 그런대로 재미있고 시간도 잘 갔다. 잠도 많이 잤더니 살도 쪘다. 그런데도 몸이 가벼워진 것 같다. 정부에서는 경제 살리기로 연휴를 만들어 준 모양인데 난 경제 살리기에 동참하지 않고 명절 연휴를 제대로 보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