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초향 Oct 09. 2023

새벽산책길에서 찾은

노린재


하나둘 바닥에 물든 낙엽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그들이 싹트며 따스한 공기를 나에게 감싸주던 지난날을 기억할까? 한 해가 저물어 가려는 것에 마음 쓰이는 나이가 됐다. 나이먹음에 대한 희망보다는 쓸쓸함이 내 미소에 담겨 있음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황량한 나뭇가지들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것 같은 날이다. 모두에게 일상이 아닌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 활기를 주는 삶이 되길 기대하는 맘이 절실하다. 매일이 그날인 지루한 삶이 아닌 새로운 생활이 나에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우리 집 강아지인 말티 토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무슨 일인지 모르고 횡재를 잡은 토리는 신바람이 나서 꼬리를 흔들며 천방지축 달린다. 항상 오후 늦게야 산책길에 나서는데 오늘은 새벽바람을 맞으니 감회가 남다르나 보다. 산책은 거의 남편이 시킨다. 항상 다니는 코스를 비슷하게 다니며 영역을 표시하고 냄새를 맡지만 언젠가 나하고 갈 때 집 옆에 있는 작은 산인 공원 쪽으로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 공원 쪽으로 가는 옆길로 자꾸만 빠지겠다고 버틴다. 전에 갔던 그 길을 기억 하나 보다. 산 쪽으로 한참 걷더니 산으로 오르는 계단 쪽에 도착하니 잽싸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토리는 오르고 내리는 것에 겁이 많아 소파에도 못 뛰어 올라가고 보조계단을 이용하고 있다. 나무계단을 오르더니 산길을 거침없이 오른다. 요래요래 자신만의 길을 만들며 올라가길래 난 뒤따라갔더니 정상이 나왔다. 근 10여 분이 걸린 산책길에 떨어진 도토리가 욕심 날 것도 같은데 오로지 길 따라 오르는 강아지를 보니 ‘맞아, 너도 새로운 것이 필요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산에서 내려와 길가 산책길을 선택했다. 차츰 물들어 가려는 작은 관목들이 길가에 도열해 서있다. 아직은 익지 않은 파란 열매를 달고 서 있는 화살나무, 사철나무, 쥐똥나무, 회양목들이 부지런히 햇살을 받아들이려고 준비하고 있다. 남천의 열매는 약간 붉은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며칠만 지나도 붉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가을을 자랑할 것이다. 나무 들 중에서 울타리 나무들의 고생이 가장 많다. 


난 인간보다 나무가 더 좋은 점을 말하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나뭇잎이 달린 것이라고 한다. 사람은 한번 태어나서 자라면 그 얼굴 그대로 늙어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지루하기 짝이 없다. 다들 동그랗게 쌍꺼풀도 예쁘던데 내 눈은 마음에 들지 않고, 계란형으로 잘생긴 얼굴로 피부도 곱던데 난 맘에 안 드는 얼굴 모습 그대로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게 불만일 때가 많다. 앙상한 가지에 새싹이 돋고 여름이면 울창한 커다란 나뭇잎을 만들어 가을이면 붉게 물든 단풍을 물들이는 나무들의 생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하루가 변화무쌍하게 올해 실패하면 다음 해를 다시 기약해도 되는 나무의 생이 어떨 땐 부럽기도 하다.  

   



요즘의 울타리 나무에는 친구이기도 하고 적이기도 한 곤충들이 많이 모여있다. 곤충들의 식사하는 모습을 사진 찍으려고 멈추자 토리도 따라 멈춘다. 산책길에 사진 찍는 것이 일상이라서 토리도 잘 이해해 준다. 나뭇가지에 고개를 가져가기 시작하면 가던 길을 멈춰 서서 기다려 주는 기특한 녀석이다. 곤충들은 낙엽이 지기 전에 부지런히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이른 새벽이라서 그런지 다들 바쁜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다. 화살나무 위에는 ’노랑배허리노린재‘와 ’갈색날개노린재‘가 신바람이 난 듯하다. 회양목 위에는 ’큰광대노린재‘가 한창 아침 식사 중인가 보다. 자동차 소리가 그렇게 시끄럽게 나지만 두렵지도 않나 보다.      


갈색날개노린재


노란배허리노린재


큰광대노린재


노린재는 손으로 잡으면 노린내 같은 악취를 풍기기 때문에 귀엽기는 하지만 가까이하기엔 불편하다. 사람에겐 피해를 안 주지만 나뭇잎의 즙을 빨아먹으니 해충임에는 틀림없다. 보통 머리는 넓고 삼각형에 가까운 방패 모양인데 입으로 찔러서 즙을 빨아먹는 곤충들이다. 종류가 엄청 많은데 다들 노린재과는 비슷한 모양인데 색상이 다양하다.   

  

요즘 노린재가 많아진 것은 온난화로 인하여 겨울에도 죽지 않고 늦은 봄에 나뭇잎에 알을 낳고 애벌레는 번데기 과정 없이 바로 성충이 되어 그대로 자라기 때문에 노린재 개체수가 많아졌다. 노린재의 뒷다리와 가운뎃다리 사이에서 노린내가 나는 구멍이 있는데 적이 나타나면 특유한 냄새를 풍긴다. 때문에 새들이나 곤충들이 잡아먹질 않아 천적이 없다. 천적이 없어 사람이 퇴치해야만 식물들을 보호할 수 있다. 일반 살충제로는 잘 죽지 않아 어려움이 많지만 은행잎에 알코올을 넣어 일주일 정도 숙성시켜 뿌려주면 잘 죽는다. 은행잎의 ’플라노보이드‘라는 천연 살균 성분으로 인하여 살충이 된다. 은행잎은 노린재뿐만 아니라 집안의 벌레 잡기에도 아주 좋은 재료이다. 가을에 노란 은행잎을 주워 싱크대 밑이나 구석진 곳에 두면 벌레가 안 생긴다는 사실은 요즘 많이 알려져 있다.     



바람이 제법 차가워졌다. 바닥을 뒹구는 나뭇잎들의 무표정한 모습이 조금은 쓸쓸하게 보이는 가을향기 나는 새벽 공기이지만 그래도 내일의 상큼한 향기를 위해 오늘을 기도한다.          

작가의 이전글 명절 연휴 보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