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첫째다.

나는 흔히 말하는 K-장녀다.

by 제이

나는 1남 1녀의 첫째로 태어났다.

첫째라 부모님의 사랑을 부모님의 사랑 방식대로 받았고,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첫째라 드는 실망도 크셨던 것 같다. 그런 부모님 기대치에 못 미쳤으니 말이다.


특히 나는 엄마한테 혼이 나면 '잘못했어요'라는 말을 잘 못했다.

괜한 자존심을 많이 부렸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엄마는 내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과 다르게 대했고, 그런 엄마가 미웠던 것 같다. 우리 엄만 거의 나를 혼 내며 키우셨다.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당시에 엄마가 많이 아팠고, 아픈 본인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내가 동생과 아빠를 책임져야 하니, 강하게 키울 생각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했다.

물론 내가 아주 어렸을 땐 칭찬을 해주신 적도 있었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순간들은 칭찬의 개념은 별로 없다.

그저 짜증과 혼을 많이 당했던 기억들이 많다. 엄만 친구들에게도 자식 자랑, 남편 자랑을 한 적이 없다. 그저 불평과 불만을 많이 늘어놓으셨다.


"너 때문에 그래"

"이렇게 왜 했니"

"왜 그랬니"


등등 '나 때문에' 비롯된 순간들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반항심은 다른 곳에서도 표출 아닌 표출이 됐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그 화를 밖으로 표출하진 않았다. 소리를 지르거나, 누구에게 화를 내거나 한 적은 없다.

아니, 생각해 보니 솔직히 말하면 있다.

친구에게 집착하고 내 사람, 내 편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고 친구가 그러지 않으면 그 서운함을 친구가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표현했던 것 같다. 뭐든 원인의 시작을 처음부터의 '이것이다'라고 하나로 정의할 순 없지만, 여러 가지가 연결된 것 중 그래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내가 이런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형성된 배경에는 부모님 고 자라온 환경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우연히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의 내 성향은 부모로부터 만들어지지만, 그 변화는 책을 통해 바꿀 수 있다'

정확한 문구는 너무 빨리 읽고 지나가서 기억은 안 나지만 이런 내용의 글이 맞긴 하다.


현재 내 인격의 원인을 부모님이라고 '탓'하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런 글을 보니 그 이유를 마냥 부모님에 한정해 생각할 필요가 없겠다.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첫째라 어려서부터 친척들에게도 이런 말을 자주 듣곤 했다.

아빠가 IMF로 실직을 하셨을 무렵, 친척 어른들은 나에게 "네가 빨리 돈 벌어서 가족들 먹여 살려야 해"

"네가 동생 챙겨야지", "네가 해야지", "네가 하는 게 맞지"라는 가스라이팅 아닌 말을은 너무나도 많이 듣고 자랐다.


이 말들이 나에게 좋은 조언이 되어 나를 자극시키고 더 성장하게끔 만드는 말이었음 더 빨리 내가 성장하고 우리 가족들을 내가 더 빨리 케어할 수 있었겠지만, 그 당시에 저런 말들은 나에게 1도 도움이 안 됐다. 그저 반항심 더 가중시키는 말들일 뿐이었다.


'도대체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거지..'

'내가 어떻게 가족을 먹여 살려..'


강남에 빌딩이 몇 채가 있고, 강남에 아파트가 몇 채가 있는 친척이 그런 소릴 하니 더 반항심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얘기 할바에 도움이나 주고 하던가'


나는 늘 어깨에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살아왔다.

나만 침대가 있고 동생은 바닥에 자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돈 벌면 꼭 동생 침대는 사줘야지 생각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사주질 못했다. 대신 다른 걸로 많이 지원해 주려고 생각은 하지만 생각만큼 여유가 없다 보니 실질적으로 크게 해 준 건 없다.


사실 꼭 첫째라기보다는 어쩌면 그게 내 성향이어서, 성격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나도 이런 내 성격을 바꾸고 싶지만 그게 이미 그렇게 생겨서 그런지 잘 안 바뀐다.


사실은 어제도 엄마랑 코스트코에 다녀왔다. 6시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7시에 같이 가서 장을 보고 엄마 장본 짐은 엄마 집에 내려드리고 집에 오니 9시가 됐다. 그때부터 아이를 씻기고 머리를 말려주고, 밀린 설거지하고 아이와 책을 읽고 재우니 벌써 10시 반이 됐다. 그때서야 난 씻고 잠시 누울 수 있었다.

코스트코에 가잔 엄마의 한마디를 듣고 평일에 못 가, 힘들어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모질게 할 수가 없었다. 왜일까. 그게 첫째여서 비단 그런 것일까.


힘든 날들이 많지만 멈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