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만두 찐빵

끼어들 수 없는

by 빨강




고속도로 진입로로 가는 길,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에는

사과

만두

찐빵

이라고 세로로 적혀있었다. 연관 없어 보이는 단어 셋이 어우러져 하나의 표지판을 만들고 있다.

지역의 특산품인 사과와 차 안에서 간편히 요기를 할 수 있는 만두, 찐빵. 고속도로 진입 전 샛길로 샐 수 있는 마지막 이정표다. 한 해가 막 지났으니 사과는 저장 사과일 테고, 만두와 찐빵은 가게 한편 냉동실에 보관되어 있다가 알루미늄 솥에 은근한 열기로 쪄지고 있었을 것이다.


사과, 만두, 찐빵이라는 글자만 보고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은 사실 모두 짐작이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어떤 단어를 만나면, 자동으로 재생되는 그림이 있다. 그래서 마음을 건드리는 단어는 정해져 있다. 오늘은 마음이 쉽게 건드려지는 날.


서울로 진입하는 마지막 휴게소 주차장에서 백구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냄새를 맡는다. 순한 얼굴의 백구는 까만 코 끝이 까져 있다. 하얗고 긴 네다리는 발을 동동 구른다. 이 냄새가 아니고, 이 냄새도 아니고, 찾던 냄새가 어디에도 없다는 뜻 킁킁거린다.

사람들에게서 1미터 멀어졌다가 1미터 가까워졌다가. 바람이 백구의 털을 오소소 일으킨다.


병원에서는 늘 길을 잃은 기분이다. 수십 번도 더 가본 그 길이 갈 때마다 낯설다. 주인을 잃은 백구가 된다.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을 애써 떨치며. 무작위로 나열된 단어 같은 어디에 끊어 읽어야 할지 모르는 마음이 된다.


답답한 복도에서 푸드코드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과 호흡기를 찬 아기나,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꽉 안은 엄마나, 여자 화장실에 따라 들어온 늙은 아들을 보면서, 어딘가 아픈 사람들이 채혈실 앞에 번호표를 뽑아 드는 마음이 간절한 기도로 이루어졌다는 걸.


오늘은 마음이 건드려지는 날.



해가 지는 데, 서울의 도로는 꽉 막히고, 끼어들려는 차와 끼어들 수 없게 바짝 붙는 차 간격에 갑갑한 마음에 붉은 등이 깜박거린다.


밥 할 시간이 없어 오늘은 김밥으로 저녁을 때운다. 지역 유명 김밥집의 주인은 정성으로 김밥을 마느라 손이 느리다. 천천히 만들어지는 김밥을 기다리며, 돌아갈 집이 있어 다행이라고, 집이라는 건 본래 인간의 근본적 불안감 때문에 생겨난 건 아닌가라고 추측해 본다.

자신의 집이 나인 두 번째 고양이가 기다리는 집이 목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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