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위로 눈이
호수가 얼었다. 언 물 위로 밤새 눈이 내렸다. 처음 온 눈은 얼음 위에서 녹고, 그다음 그다음으로 온 눈들은 서서히 호숫물 위로 차곡차곡 쌓였다. 호수가 새하얘졌다.
가로등 불빛을 받은 눈들이 주황색으로 빛났다. 겨울바람에 반으로 꺾인 갈대들의 머리가 언 강물에 잠겨 있다. 갈대의 씨앗은 천천히 진흙 바닥에 닿아 뿌리를 내리고 올 가을에 더 풍성하게 머리칼을 휘날릴 준비를 겨우내 하고 있다.
식물들은 뿌리의 형태나, 씨앗의 형태나, 나무의 형태로 겨울을 나야 봄을 맞이할 수 있다. 오롯이 어떤 형태로 겨울을 견뎌야 한다. 꺾어진 갈대는 호수 아래 잠겨 있는 많은 것들의 무덤을 떠올리게 한다. 10년 전만 해도 호수에는 시체 유기가 빈번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환하게 빛나는 호숫가는 과거를 잊은 채 어둠 속에서도 빛나고 있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얼음 위를 걸어간다. 오랫동안 호수를 터전 삼아 살아갔을 고양이들은 겨울이면 호수가 얼고, 살얼음이 낀 곳으로 물을 먹으러 가야 한다는 걸 안다. 죽은 자들의 호수일 때도 이곳을 지켰던 고양이들은 살아남는 법을 안다.
호수를 빙 돌아 심어져 있는 벚나무들과 가지가 치렁치렁한 수양버들이 꽃과 잎을 피우고 머지않아 사람들로 북적댈 것을 안다. 이 가혹한 계절이 끝날 것을 안다.
습도가 높은 호수 주변의 바람은 유난히 차다. 찬 바람에 볼이 발갛게 얼고, 발가락 끝의 감각이 둔해져 올 때,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일이 끝난다. 집으로 가면서 호숫가 여기저기 떨어진 상수리나무의 열매를 밟는다. 겨울바람에 바짝 바른 열매가 발아래서 바사삭 부서진다.
호숫가에서 돌아와 어묵탕을 끓일 준비를 한다. 무를 나박 썰고 다시마도 무와 비슷한 크기로 자른다. 잘게 썰으면 빨리 익고, 국물도 단시간에 우릴 수 있다. 몸이 얼면 어묵탕이 생각난다. 국물이 우러날 쯤에 물에 한번 씻은 어묵을 잘라 넣는다. 바닥에 가라앉았던 어묵이 떠올라 부풀어 오를 때까지 약불에 끓인다. 간은 멸치액젓과 굵은소금으로 한다. 파를 고명으로 얹는다.
봄이 오길 기다리며 국물을 마신다. 식도를 타고 위로 내려가는 뜨거운 국물이 피부를 맞댄 듯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호숫가 고양이처럼 겨울을 나려면 나름대로의 지혜가 필요하다. 살아내려면 때때로 따뜻한 국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