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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현실

불쑥 찾아오는

by 빨강



싱크대 앞에 서서 수세미로 그릇을 닦는다. 흰 거품이 그릇에 엉겨 붙는다. 수도를 틀고 세제를 씻어내는데 누가 내 오른쪽 날개뼈를 톡톡 두드린다. 흠칫 놀라 뒤돌아 본다. 아무도 없다.


의자에 앉아 티브이를 본다. 누가 옆구리를 쿡 찌른다. 옆구리에 느껴지는 손이 닿았던 선연한 감각.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다. 혼자 있는 집에서 누가 내 몸을 건드린다.


고개를 숙이고 머리에 샴푸칠을 한다. 거품이 일고 두피를 문지른다. 목덜미에 한기가 돈다. 고개도 들지 못하고 서둘러 샤워기로 거품을 씻어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화장실 천장을 올려다보면 그곳에는 텅 빈 공간이 예전처럼 오늘처럼 날마다 그랬던 것처럼 있다.


아무 날도 아닌 날 내 몸에 낯선 감각이 느껴질 때가 있다. 환상통처럼 찾아오는 고통스러운 감각.


악몽을 꾸다 눈을 번쩍 떴을 때 어둠 속 천장 모서리, 공중에서 날 노려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진다거나. 갑자기 바닥이 쿵하고 내려앉는 소리를 낸다거나. 12시가 지나 3층 집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난다거나. 불 꺼진 방 의자에 누가 앉아있는 것 같다던가. 내 몸에 느껴지는 감각이나 소리는 형체가 없다. 갑자기 찾아오고 갑자기 사라진다.


한낮 정오를 넘긴 토요일 오후.


쿵쿵쿵.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집에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잠자코 집에 없는 척을 한다. 연이어 쿵쿵쿵 다시 문을 두드린다.


누구세요?


미래에 대해 궁금하지 않으세요? 저희는 미래를 예견하러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얼굴 뵙고 말씀드리고 싶으니 문을 잠시만 열어주세요.


문 밖에서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뒷걸음쳐 문에서 멀어진다. 문 밖의 여자는 자신의 목소리에 대답하듯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선교집단의 포교는 한동안 들릴 듯 말 듯 계속된다.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누가 왔다간 흔적이 문밖에 남아있다.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내려앉는다.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처럼 혼자일 때,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들. 밤 골목길에서 뒤에서 누군가 나를 껴안을 것 같은 두려움. 갑자기 느껴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감각들. 아무도 없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그제야 줄어드는 두려움.


빈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눈을 감는다. 핸드폰에 부고 문자가 와 있다. 눈꺼풀 앞에 빛이 어른어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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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