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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돌멩이 하나가

물결무늬 세상에서

by 빨강



오른쪽으로 돌아 눕자. 눈앞에 세상이 핑그르르 돈다. 자다가 어지러워서 깬 건 처음은 아니다. 얕은 수면 중에 뒤척이다가 이불을 당겨 덮다가 베개를 고쳐 베다가 종종 깨곤 했다. 그러나 방안이 일렁이면서 머리가 도는 건 흔한 일은 아니었다. 쨍하게 어지럽던 머리가 잠잠해지고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세상이 물결무늬다. 저수지에 물수제비를 뜨는 것처럼 잔잔하던 세상에 파문이 인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누가 머리에 돌을 던진 것처럼 주저앉게 된다. 왼쪽으로 고개를 45도 기울이고 화장실에 간다. 고개를 숙이자 쨍한 어지러움이 뇌를 한 바퀴 돈다. 간신히 세수와 양치를 마치고 택시를 부른다.


10년 전에도 느껴봤던 어지러움에 이비인후과로 간다. 병원에는 열댓 명의 사람이 대기실에 앉아 있다. 젊은 사람들은 간호사들 뿐이다.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뉴스를 보고 있다. 푹 꺼진 소파는 여기저기 덧댄 흔적이 있다.


의사는 내 귀에 나팔 같은 것을 꽂고 간단한 검사를 했다. 눈에서 안진이 인다. 반고리관에 이석이 빠져나와 비정기적 어지럼증이 생기는 것이라며 이석증에 대해 빠르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같은 환자가 이미 검사실에 대기 중이라 오후에 다시 와서 이석증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일단 어지럼증에 도움이 되는 주사를 한 대 맞고 2시에 재방문하기로 했다.


병원을 나와 건물 밖 계단을 내려가는데 바닥이 일렁였다. 눈이 초점을 자꾸 놓쳤다.

고개가 조금만 삐뚤어져도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우리 몸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 이상이 생기면 심한 불편감이 찾아온다. 우리의 신체 중에 없으면 안 되는 부분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손톱을 짧게 자르면 손끝이 아려서 물건을 잘 잡지 못한다. 눈물이 돌지 않으면 눈이 잘 안 감기고 눈이 빠질듯이 아프다. 콧속이 촉촉하지 않으면 코피가 난다.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신체의 모든 사소하게 느껴지는 부위가 제 역할을 해낸다.


내 몸이 건강할 때는 건강하다는 걸 잘 느끼지 못한다. 그 상태가 가장 자연스럽고 평범하다. 그러다 갑자기 어느 한 곳이 불편해지면 그 부위에 온갖 신경이 쏠린다. 귓속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나의 평형기관을 좌우한다니. 평소에 신경 쓸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작은 돌멩이를 집어넣기 위해 애를 쓴다.


왼쪽 반고리관을 이탈한 이석에게 말을 건다. 왼쪽으로 누웠다가 천장을 보고 오른쪽으로 누웠다가 바닥을 본다. 세상이 휘청거리고 입에서 신음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 순간은 어지러운 세상에서 내가 제일 휘청거린다. 수초에서 수분에 이르는 어지러움이 끝나길 빌어본다.


푹 쉬세요. 쉬셔야 나아요.


집밖으로 나가지 못한 지 7일째. 아직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돌멩이를 달래며, 모로 눕지 못하고 천장을 바라보며. 자잘한 천장의 물결무늬를 손끝으로 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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