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는 삶과 삶아지는 삶
두 시간 전에 서리태 세 줌을 그릇에 넣고 씻어 불려놓았다. 그릇 위로 불은 서리태가 오름처럼 솟아오르고 말랑말랑해진 서리태를 엄지와 검지로 짓누른다. 껍질과 속살이 분리되고 삶을 시간이 되었음을 안다.
편수 냄비에 물을 서리태보다 많이 넣고 약한 불로 삶는다. 조금 오래 걸려 거품이 바글바글 인다. 검은 거품을 걷어내고 콩이 익기까지 기다린다.
삶아지는 것과 삶 사이에서 집안에 차오르는 콩의 비린내를 창문을 열어 환기시킨다.
봄비가 오고 있다. 부엌창을 그어내리는 빗줄기가 제법 굵다. 흰 티에 콩에서 우러난 검은 물이 흙탕물처럼 튀어 있다.
잘 익은 콩을 다시 뒤섞으면서 양념을 한다. 간장통 바닥에 남아 있는 간장을 다 넣는다. 설탕과 올리고당도 넣는다. 약불로 조려지길 기다린다.
비가 오는 날은 환기가 잘 되지 않는다. 탄 듯 만듯한 짭조름한 간장냄새가 집안에 찬다. 주말의 나른함처럼 느리게 벽지나 건조대에서 마르고 있는 빨래에 스민다.
콩장이 졸여지는 수증기 너머, 창밖 건너편 3층집 보일러 연통에 까치가 앉아있다. 비를 피하려고 날개를 접고 두 발로 연통을 꼭 쥐고 꼬리깃과 날개깃털에 묻은 빗방울을 훑어낸다. 한 마리가 더 날아와 옆집 연통에 앉는다. 이웃 사이가 된 까치 두 마리가 빗물을 털어낸다.
봄추위에 보일러가 돌아가고 연통에선 흰 연기가 울컥울컥 나온다. 연기에 가려진 검은 까치가 비를 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콩장이 졸여지는 내내 비를 피한 까치들이 해가 저물어가자 어쩔 수 없이 빗속으로 날아오른다. 밤이 오기 전 쉴 곳을 찾아 뒷산으로 날아간다. 빗길에 나선 보람도 없이 먹이하나 구하지 못하고 굶주린 배로 날아간다.
밥이 완성되었다고 밥솥에서 새가 요란하게 울고, 밥솥을 열자 흰쌀밥이 김을 내뿜으며 반질반질 윤이 나고, 냄비 안에 쫄아든 콩알도 반질반질 윤이 난다.
지난가을 새를 피해 잘 말려 둔 콩과 쌀이 우리 집 쌀통에 가득하다. 사람의 삶이 새의 삶과 엇갈려 봄비가 내리는 날, 오늘의 저녁 사냥에 실패한 까치를 떠올린다. 우거진 나무 가지 사이 날개를 펴고 굶주린 새끼들을 달래며, 쫙 편 날개밑으로 새끼들을 품을 까치를 떠올린다.
삶과 삶 사이를 그어내리는 봄비를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