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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혼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by 빨강




백화점 앞에서 남은 사람들이 내리고 한 구간을 버스에 혼자 남았다. 기사님은 노선대로 운전을 하고 나는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본다. 쨍한 햇볕이 옆자리에 앉아 있다. 버스가 덜컹거리는 대로 손잡이와 그림자가 흔들린다. 왼편으로 들어오는 빛에 그림자가 파도처럼 밀려나갔다 밀려온다.


엄마는 어느 날처럼 소파에 누워 있었다. 새로 이사 온 집은 낮은 층이라 햇볕이 잘 들지 않았다. 엄마가 사놓은 봄꽃대가 햇살이 들어오는 창을 향해 곡선으로 휘어 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야.


말끝마다 엄마는 이 말을 덧붙었다. 이상한 후렴구처럼. 집 곳곳에 놓인 엄마가 그린 꽃그림은 화사하게 영원히 그럴 것처럼 피어 있었다. 흰 백합이, 마거렛이, 해바라기가, 꽃잎을 활짝 펴고 생기 있게 다섯 송이가 오 남매처럼 피어 있었다. 엄마는 꽃을 사람 얼굴처럼 그렸다. 어떤 꽃은 고집이 세 보였고, 어떤 꽃은 연약해 보였다. 고개를 떨군 꽃은 나를 닮아 있었다.


엄마가 그림을 그리는 방에는 그리다 만 그림이 세워져 있었다. 작은 초가집 위로 꽃나무가 드리워진 그림이었다. 엄마의 김포 고향집이 떠오르기도 하고, 우리가 어릴 때 살던 광명시의 단독집이 떠오르기도 했다. 엄마는 어떤 집을 그리고 싶었을까. 엄마의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그리게 되는 집은 살았던 집인지 살고 싶은 집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엄마가 정형외과에 가야 한다며, 머리에 드라이를 한다. 뒤통수를 띄우고 옆머리에 스프레이로 힘을 준다. 그리고는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펴 바른다. 새로 사준 립스틱을 입술에 바른다. 눈썹을 쓱쓱 그린다. 화장을 하는 엄마 얼굴 위로 화장기가 없는 내 얼굴이 화장대 거울에 비친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엄마는 나이가 들어도 간단한 화장을 하고 밖을 나간다. 아주 어릴 적부터 보았던 젊은 엄마의 얼굴이 나이 든 엄마의 얼굴과 겹쳐져 가슴이 쪼그라든다.


엄마가 싸 준 오이소박이를 들고 오후에 횡단보도를 건넌다. 아파트 사이에 조경수로 심어 놓은 흰 철쭉꽃이 한아름이다.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엄마가 그려놓은 것 같은 희고, 분홍인 철쭉꽃이 흐드러지고, 울다 놓친 손수건처럼 꽃송이가 바닥에 거꾸로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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