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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망이와 대장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든 것들

by 빨강



밤산책을 마치고 빌라 입구로 들어서는데 나를 부르는 목소리. 정확히 나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 까망이가 자기를 보라고 발밑에 와서 종아리에 몸을 비빈다.


우리 동네에는 주차된 차 밑이나 낮은 담장 위에 두 마리 고양이가 있다. 내가 부르는 이름은 대장이와 까망이. 어디서든 서너 번만 부르면 나타나는 고양이들. 대장이는 먹는 걸, 까망이는 쓰다듬어 주는 걸 좋아한다. 나보다 먼저 이 동네에 살았던 애들이라 사람을 봐도 피하지 않는다. 외려 알아봐 주길 기다리며, 길게 또는 짧게 여러 번 운다. 동네 고양이는 아이들에게 유독 친근한데, 지나가던 초중고생에게는 모두 아는 척을 한다. 먹을 게 있을 때도 없을 때도 개의치 않고 몸을 부빈다.


오래된 동네에는 캣맘들이 많다. 골목 사이사이를 도는 사람. 산 아래를 도는 사람. 놀이터를 도는 사람. 캣맘들은 아침저녁으로 밥을 주고 아이들은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서 먹인다. 집 앞 쓰레기는 다음날 수거해갈 때까지 멀쩡하다.


까망이와 대장이 형제 고양이는 동네를 지키며, 다른 길고양이들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 어울려 살아가는 동네 고양이들. 부르는 사람에 따라 이름도 어려가지인 고양이들. 누가 불러도 찰떡같이 자기를 부르는지 아는 고양이들.


한낮에는 따끈따끈하게 달궈진 보닛에서 몸을 데우고, 저녁에는 차 밑에서 찬바람을 피하고, 밤에는 빌라 지하에서 몸을 꼭 붙이고 잠을 잔다.


사계절을 골목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 봄에는 아스팔트 사이에서 피는 들꽃 냄새를 맡고, 여름에는 나무둥치에 발톱을 갈고 가을에는 떨어지는 은행나무잎을 잡고 놀고, 겨울에는 담벼락 위에 쌓인 눈에 작은 발자국을 남기고, 밤에는 두 눈으로 어둠을 가르고, 낮에는 칼눈이 되어 오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본다. 자기를 아는 사람을 찾아내려고.


차가 오면 피하고, 비둘기 나는 곳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사랑하는 법을 알고, 사랑받는 법을 알며 집 앞 골목에서 수년을 살아낸 고양이 형제.


까맣고 반질반질한 털을 쓰다듬는다. 털 속에 모래알이 서걱서걱하다. 쪼그려 앉은 내 주위를 한 바퀴 돈다. 바짝 올라간 꼬리가 바르르 떨린다. 눈을 맞추고 노란 눈에게 깜박깜박 인사를 건넨다. 작년 겨울을 살아 낸 까망이의 머리를 쓸어준다.


고마워. 살아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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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