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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추억이 쌓인 얼굴

by 빨강




해는 지고 가로등은 아직 켜지지 않은 시간, 어두침침한 골목길에 할아버지 한 분이 허리를 수그리고 걸어간다. 왼쪽 가슴에 조화카네이션이 달려있다. 누가 달아주었을까. 어버이날이 며칠 지난 오늘, 할아버지의 가슴에 핀 시들지 않는 꽃 한 송이. 모두가 어버이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걸. 할아버지의 꽃이 어둠 속에서 홀로 환하다.


한 달에 한 번쯤 동생을 만난다. 딱히 용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신다. 아이 엄마인 동생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고, 주로 우리는 이른 점심때쯤 만나 늦은 점심때 헤어진다.


내 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예뻤다. 숱이 많고 새까만 머리와 크고 까만 눈동자 하얀 얼굴. 딸부잣집 셋째 딸답게 자매 중 가장 예뻤다. 작고 찢어진 눈, 낮은 코, 적은 숱인 나와는 참 다르게 생겼었다.

술래잡기를 할 때나 개천으로 놀러 갈 때나 방방을 타러 갈 때 나는 동생을 데리고 다녔다. 나는 동생이 참 좋았다. 언니라고 부를 때도,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할 때도 날 따라 할 때도 무조건 내 편인 동생이 좋았다.


아빠가 필름 카메라를 사 온 날부터 나는 동생을 모델로 사진을 찍었다. 포즈를 정해주면 동생은 군말 없이 내 말에 따라 사진을 찍혀주었다. 나는 사진작가가 된 것처럼 필름이 다하도록 이곳저곳에서 동생을 모델로 사진을 찍었다.


엄마가 된 동생은 어른인 것 같기도 여전히 어린아이인 것 같기도 하다. 내 눈에는 아기였을 때의 얼굴과 소녀였을 때의 얼굴과 청소년이었을 때, 어른이 막 되었을 때의 얼굴, 첫 조카를 낳았을 때의 얼굴이 모두 하나처럼 보인다. 사십 년의 세월이 한 사람의 얼굴을 만든 것처럼.


저기 멀리서 한걸음 한걸음 지팡이에 의지한 할머니가 동생 같기도 하고, 유치원 가방을 어깨에 메고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가 동생 같기도 하고, 놀이터 벤치에 앉아 아이들을 쳐다보는 여자가 동생 같기도 하다.


언니 잘 가.


헤어지는 공동출입문 앞에서 동생이 머리 위로 손을 흔든다. 나는 차창을 내리고 잘 들어가라고 손을 흔든다. 뒤돌아가는 동생의 뒷모습을 본다. 찰칵하고 눈으로 한 장 담아본다. 눈을 감자 30년 전 나무를 끌어안고 포즈를 취하는 동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세상에서 가장 환하게 웃던 내 동생. 그 얼굴이 어른어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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