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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사람과 사람 사이

by 빨강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는 버스정류장에서 여자는 내 옆에 살포시 앉았다. 봄이었고, 봄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연둣빛 이파리들이 손톱만 하게 돋아 있었다. 하루하루 강렬해지는 햇볕으로 하루가 다르게 플라타너스 이파리들은 커졌다.


여자의 얼굴은 여전히 거칠었고, 피부는 검붉었다. 아직 쌀쌀한데 칠부 소매 원피스를 입고 스타킹도 신지 않아 종아리가 빨갛게 갈라져 있었다. 여자의 계절은 어디쯤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수세미로 몸을 문지른 것처럼 살갗은 얼굴까지 모두 갈라지고 터져 있었다. 여자는 입을 앙 다물고 사람들과 반대방향을 보았다.

반백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지만 단발에서 조금도 길어지지 않았다. 여자의 머리칼은 늘 그 길이였다.


한대의 버스가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고 사람들이 차도로 내려가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차례차례 버스를 타고 떠나는 사람들과 다른 번호의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남았다. 나는 여자의 옆에서 곁눈길로 여자를 보았다. 여자에게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여자의 손과 팔에 주렁주렁 달린 검은 보따리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어깨에서 무릎에서 흘러내리는 보따리를 추어올리며 여자는 먼 곳을 쳐다보았다.


버스정류장 뒤쪽 통신사에서 내부에 틀어 놓은 최신 음악이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몇 년 전만 해도 가게마다 틀어져 있던 음악이 사라진 거리에는 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내는 소음만이 가득 찼다. 20대 여자와 체육복을 입은 고등학생 몇 명이 이어폰을 꽂고 휴대전화 화면을 뚫어지게 보다가 버스를 놓칠세라 알림 전광판을 힐끔힐끔 보았다. 모두 무언가에 열중이었다.


여자는 그들 사이에서 막 입을 뗀 아이같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웅얼거렸다. 여자의 눈에만 보이는 환각에 사로잡힌 듯.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온기가 있는 정류장 의자에 앉아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대상과 열심히 싸웠다.


여자의 싸움이 끝나기 전에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왔다. 나는 찻길로 내려가며 여자를 돌아보았다. 여자의 무거운 짐이 자꾸만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것을 보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혼잣말을 해석해 보려고 했다.



아직 따끈따끈한 여자의 옆자리에 할머니 한 분이 앉았다. 왠지 안도감이 들었다. 버스에 앉아 차창밖으로 여자가 멀어질 때까지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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