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랬듯이
이사 가는 날이 다가왔다. 이 동네에서의 마지막 밤산책을 나섰다. 익숙하고 너무나 익숙한 것들. 집을 나와 오른쪽으로 30미터만 가면 서 있는 아름드리 은행나무는 노란 잎을 발치에 펼쳐놓고 있었다. 좀 더 가면 있는 작은 놀이터에선 저녁을 드시고 나온 할머니 세 분이 벤치에 앉아 흘러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람에 그네가 살살 흔들렸다. 나뭇이파리들이 발치에 고였다. 일방통행로 양쪽에 주차장은 빈자리가 없었다. 삶의 흔적이 꽉꽉 골목에 차 있었다. 어느 집에서 새어나온 불빛이 차창에 부딪히고, 가로등불이 차천장을 하얗게 빛나게 했다.
원래 가던 코스대로 걸음을 옮겼다. 10년 만에 이사를 하려니 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서랍 하나를 정리하면 그 위의 서랍을 정리해야 했고, 다 정리했다고 생각한 서랍은 새로 서랍을 정리하다가 다시 정리해야 하는 일들이 반복됐다. 버리지 않기로 분류했던 물건들은 다시 버려야 하는 물건으로 분류됐다. 한 달 전부터 준비한 정리는 아직도 덜 끝난 것만 같았고, 정리가 되는 기미가 안 보이는 것 같았다. 하루에 하나씩 방을 옮겨 다니며, 중요한 걸 찾는 사람처럼 서랍 바닥부터 뒤졌다.
산책을 나오기 전에는 마지막으로 중요한 물건들을 케리어에 집어넣었다. 차곡차곡 모아놓았던 편지들과 나의 고양이 유골함과 액세서리들과 조카에게서 받은 생일 카드와 각종 서류들이 케리어를 채웠다. 짐을 싸보니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들이 내 삶에 중요한 것들이 많았다.
겨울의 초입에서 어떻게 살아보겠다고 애쓴 날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몇 달의 집을 구하는 과정, 집을 고치는 과정, 수 없이 달렸던 고속도로, 정체구간, 언덕까지 늘어서 있던 브레이크의 붉은 등들, 음악도 없는 차 안에서 혼자였던 시간들. 모든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사가 준비되었다. 이사 갈 집은 살던 집보다 넓고 높았다. 나의 두 번째 고양이가 살기 좋을 것 같았다. 고양이가 집안을 걸어 다니다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상상됐다.
서울에서의 삶은 모든 생각의 근간을 만들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학교도, 사회도. 서울깍쟁이로 살아온 이유없는 삶. 그게 당연해서 한 번도 벗어나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지방소도시에서 살아보는 것도 일종의 실험 같은 거였다. 살다가 안 되면 다시 오면 된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을까. 10년 전에 산간 마을로 내려간 언니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게 다라면 생각만 해보다 끝나는 문제였다. 명확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보고 싶은 욕심이었을지, 대책 없는 감정의 변덕 때문인지. 도망치고 싶었던 건지.
지금은 다만, 두 번째 고양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이사를 잘 가는 것만 생각했다. 새벽에 두 번째 고양이에게 안정제를 먹이고, 이삿짐센터가 오기 전에 케이지에 넣고, 놀라지 않게 차에 잘 실어놓고, 이삿짐을 빨리 싸서 새집으로 안전하게 가는 일. 당장 닥친 일만 생각하자. 그다음은 어떻게든 되겠지.
비행기가 희고, 붉은빛을 반짝거리며, 하늘을 가로질렀다. 오늘따라 밤 비행기가 많았다.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과 십 원짜리 동전 같은 달과 회색 구름이 상가건물 바로 위에 걸쳐져 있었다.
내일은 새집에서 뜬눈으로 날을 샐 것을 알지만,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새집에서의 삶도 익숙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