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겨울시장

할 일이 남아

by 빨강



상설시설 3개가 모여있는 시장에는 5일마다 5일장이 섰다. 시장에는 새벽차를 타고 나온 할머니들이 말린 나물이며, 푸성퀴를 이고 지고 나와 가게와 가게 기둥 사이에 가판을 부려놓았다. 일찍 장사가 끝난 할머니들이 오후 차를 타고 들어간 시각. 조금 늦게 시장으로 갔다. 지갑에 현금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했다.

시장에 가면 무엇을 사야 할지 알게 된다. 한주의 반찬이 결정된다. 뭐를 싸게 팔지 모르기 때문에 집에 떨어진 재료만 머릿속에 넣고 간다.


시장 입구부터 어떻게 해 먹을지 알 수 없는 재료들이 눈에 띈다. 사람얼굴만 한 뽕나무버섯, 상황버섯, 가을내내 산에서 캔 버섯이 대야 가득 물에 불려져 있었다. 잎이 노란 냉이잎의 뿌리는 길고 굵었다. 말린 대추가 붉은 망에 한가득 들어있다. 집에서 따온 듯한 진노랑 대봉에는 검은 상처가 죽 그어져 있다. 할아버지 한 분이 꽁초가 되도록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가로등 밑에 톱밭에 버무려진 꽃게 좌판이 부려져 있다. 뒤통수만 보이는 아줌마들이 꽃게를 집어 올린다. 다리가 한두 개씩은 잘린 꽃게들이 검은 비닐에 담긴다. 게딱지 끝이 비닐봉지를 찢고 나온다.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


탁탁탁 소리가 점점 커진다. 아줌마들을 비집고 고개를 내민다. 둥그런 나무 둥치 도마에서 동태가 잘려 나가고 있다. 두 마리에 오천 원. 재빨리 두 마리의 동태를 손가락으로 가르친다. 주인의 파란 비닐 앞치마는 동태 조각이 튄 자국이 나있다. 팔뚝만 한 동태는 서너 번 이상을 내려쳐야 머리가 잘려나가고 허리가 끊겼다. 한 마리는 암컷, 한 마리는 수컷이었다. 온몸의 조각이 섞여 봉지에 담겼다.



귤 한 박스를 사고, 배 한 봉지를 산다. 까 놓은 대파 한단이 3천 원. 시장 대파는 마트 대파보다 서너 대가 더 많다. 개미굴처럼 여기저기 뻗어 있는 길에는 오종종한 할머니들이 색색깔의 모자를 쓰고 앉아있다.


양손에든 비닐봉지가 생의 무게를 담아 손가락을 파고든다. 먹고사는 일은 늘 어려워서, 그런데도 안 먹고살 수가 없어서, 시장에 나와 장을 본다.

나의 두 번째 고양이가 중문을 열자 기지개를 켠다. 오늘의 할 일이 아직 남아있다.





keyword
이전 02화생선 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