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워보였던 사랑이 어려워지고 말았으니

하페즈의 서정시 제1편

by 작은 나무
역참과 대상(隊商, 캐러밴)


와인을 따르는 미인이여,

잔을 가득 채워 건네다오!

쉬워보였던 사랑이 어려워지고 말았으니.


솔바람이 그대의 머릿결에서 향기를 한 주머니 풀어헤칠 때

사향처럼 검은 그 곱슬머리여,

내 마음에 피가 어찌 쏟았었는지.


임과 함께하는 역참에서 내가 언제 쉴 시간이 있을까?

종 소리가 쉴새없이 울려댄다

"대상(隊商)은 낙타에 짐을 메시오!"


이교도 사제의 말을 듣고 예배당을 와인으로 물들여라!

우리가 걷는 길과 여정을 나그네는 모를 일이 없으니.


어두운 밤과 파도의 두려움,

마음을 뒤흔드는 소용돌이…….

육지의 홀가분한 사람들이 우리의 심정을 어떻게 알까.


나는 내 마음을 쫓고 말았고

모든 일은 치욕으로 끝났으나

모두가 말하는 그런 비밀이 어떻게 지켜질 수 있을까.


하페즈야,

임과 함께하기 바란다면 이곳을 떠나지 말아라.

만남이 성사되는 그 날에는 세상을 내던지고 잊어버려라.



페르시아어 원문


하페즈(1325년~1390년)는 이란의 국민 시인이자 페르시아의 시성(詩聖)으로 칭송받는 인물입니다. 이란인들은 여전히 하페즈의 시를 외고 다니며, 남부 도시 시라즈에 있는 그의 묘는 이란 최대의 관광지, 아니 순례지 중 하나입니다. 근래 들어 이란 밖에서 페르시아 문학의 위상이 누그러들었지만, 불과 200년 전만 해도 동유럽 보스니아부터 인도의 최남단까지 수백만 명의 지식인들이 모두 마음 속에 하페즈를 품고 살았습니다.


하페즈는 약 495수의 서정시(ghazal غزل)를 썼습니다. 한 서정시는 5~14행으로 이루어지나, 한 행이 통상 8음보이기 때문에 우리 기준으로는 2행 연구(聯句)에 가깝습니다.


페르시아 서정시의 기본 주제는 사랑, 무엇보다 짝사랑입니다. 임은 대게 무심하고 잔혹하며, 사랑이 이루어지는 작품은 몇 되지 않습니다. 이슬람의 율법은 음주를 금지하지만, 사랑에 지친 시인은 결국 술에 빠지고 맙니다. 그리하여 페르시아 시의 두번째 주제는 와인입니다.


사랑은 만국 공용의 언어이지만, 사랑을 말하는 방법은 문화와 개인마다 다르기 마련입니다. 한국어로 옮길 때 난해하지 않도록 부득이하게 의역을 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14세기 페르시아는 인간의 사랑과 신을 향한 사랑을 동일시하는 사회였습니다. 살아 숨쉬는 인간을 아끼고 사랑해보아야만 조물주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시대의 상식이었습니다. 그래서 하페즈가 사모하는 '임'이 인간인지 또는 신인지, 그가 마시는 '술'이 알코올인지 또는 영적 체험인지, 이 시에서 말하는 '비밀'이 불륜이 들통난 것인지, 또는 범인에게 말할 수 없는 하느님에 대한 비밀을 누설해버린 것인지, 늘 모호합니다.


중세 페르시아 시집은 날짜나 주제가 아닌, 압운자(라임, 각 행의 말미에서 반복되는 소리)의 순서에 따라 시를 수록합니다. 이 시는 영어 A에 해당하는 첫번째 글자 'ا'(알레프)로 끝나기 때문에 제1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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