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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란 Feb 24. 2023

둘이 아닌 넷

     

 둘이 결혼했는데, 넷이 살고 있다고?

내 안에, 남편 안에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있음을 심리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배우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것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어린 시절의 상처의 기억들을 심리학에서는 ‘내면아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든 어른의 자아와 아이의 자아를 모두 가지고 있다. 사랑, 인정, 존중받고 싶고, 가지고 있는 욕구들이 성장 단계에서 충족하지를 못했거나, 감정분출을 양육자에게 저지당하거나, 잘못된 양육방식으로 상처를 품고 자라난 경우 고스란히 무의식에 남게 된다.

성인이 되었음에도 무의식에 상처로 남아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누구나 행복을 꿈꾸며 결혼을 한다. 스물일곱에 언니의 소개로 만나 결혼을 했다. 언니네서 가까운 거리에 신혼집을 마련해서 남편이 출근하면 언니네 집으로 달려간다. 하루 종일 조카들과 재미있게 지내다 남편이 언니네 집으로 퇴근하는 일이 많다. 그러다 보니 남편과의 둘만의 시간보다 처갓집 식구와 함께 사는 듯 보인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언니네 집에서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런데 둘이만 사는데 깨가 쏟아져야 할 시기에 행복하지 않은 건 둘이 아닌 넷이 살고 있음을 3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6개월의 짧은 기간의 신혼은 끝이 났다. 그 후엔 매일 늦은 시간에 귀가 하니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싸움이 빈번했다. 역마살이 끼었다는 말이 있듯이 밖으로만 나도는 남편은 습관이 된 듯 보였다. 그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으니 늘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왔다. 남편의 늦은 귀가는 쉽게 고쳐지지 않으니 대화도 없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나의 대피처는 교회 가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나를 이기는 방법으로 한곳에 집중하는 취미를 찾았다. 서예 학원에 등록해서 하루 종일 붓글씨를 쓰다 남편이 퇴근할 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도 틈만 나면 먹을 갈고 붓글씨를 썼다. 그런데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속의 공허함을 어쩔 수가 없었다.

남편과의 갈등은 미움과 섭섭함으로 골이 깊어가고 말만 하면 싸움으로 번져나갔다. 그러나 교회에 가서는 아닌 척, 행복한 척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남편의 늦은 귀가와 못마땅함이 있다 보니 내 생각을 말하면 남편은 반대로 말한다고 다툼이 벌어진다.

 어떤 날은 도둑이 들어와 무섭다고 일찍 들어오라고 쇼를 한 적도 있었지만 별 반응이 없다.

아무래도 무엇에 씌었는지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별 방법을 다 써도 달라지지 않으니 바쁘게 사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남편이 늦게 오면 올수록 교회 봉사와 붓글씨에 전념하며 무관심과 몰입으로 신경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이럴 거면 왜 결혼을 했나 혼자 살 것이지 하며 가끔은 화가 치밀어 올라오는 감정 때문에 또 다툼이 일어난다. 거기에 아이도 생기지 않으니 앞이 캄캄하고 인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봐도 한 사람의 노력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외로움과 고독감은 어디 가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며 붓으로 마음을 달래며 굿굿하게 살아내고 있었다.


 결혼 5년 만에 드디어 임신과 출산으로 아들 키우는 재미에 빠져 바쁜 나날을 보냈다. 집안에 아이가 생기면 집으로 일찍 귀가할 줄 알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아들과 다정다감하게 놀아주고, 밖에 나가 농구놀이도 같이하기를 바랬지만 내 생각뿐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는 이해가 안 되고 못마땅함과 미움은 여전히 자리 잡고 있으니 결국은 내 마음만 괴롭다. 한 집에 살고 있지만 남편도 내가 어떤 심정인지 알 길이 없다. 그때는 그랬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둘째 딸이 태어나 나름 바쁘게 살아가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마음 밭은 여전히 그대로다.

 어떤 날엔가 서로 얼굴 붉히고 안 좋은 상황이 벌어져 속상해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어린 딸이 다가와 엄마를 위로해 준다.

 엄마를 바라보며 “마음을 넓게 가지세요.”

“이제 화 풀리셨어요? 하며 꼭 안아준다.

딸아이의 위로가 큰 힘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어른으로써 못볼꼴을 보여주는 나 자신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랑하고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하는데 걱정이 된다.


 결혼 후 남편과 자주 다툴 때마다 어른이 아닌 아이의 모습이 엿보일 때가 많았다.  

남편의 무의식에 있는 내면아이는 엄마한테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아내한테 해결하고자 자꾸 요구하지만 아내는 엄마가 될 수 없다.

 아내 또한 같은 입장으로 내면아이가 존재하기에 사랑, 인정, 존중받고 싶어 한다. 이렇게 몸은 성인이지만 어릴 적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계속 어리광을 부리며 칭얼거린다.


 이제는 뭔가 가닥이 잡히는 것 같다.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남편이 보기에 나의 고집과 철없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을 것이 분명하다. 나를 모르니 상대가 안보이듯 바로 눈앞에 문제에만 매몰되던 시야에서 벗어나 상황을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나 자신을 알아야 타인이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의 성장과정을 알고 보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서로 채움 받기 원하는 내면에 신경전은 결혼 생활을 힘들게 만들었음을 알게 되니 평정을 찾아갔다. 그저 공부하며 깨달았을 뿐인데 내 마음에 찌꺼기들 남편을 바라보는 못마땅함과 미운 마음이 사라지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내면에 존재하는 실체를 알게 되니 해결방법이 쉬워졌다. 이제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내면아이가 철이들고 어른다워진 거 같다.

여유 있는 모습은 남편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편안해졌다.


  아는 것만으로 치유의 시작이라고 했다. 즉 안다는 것은 이해가 되고 배려한다는 의미이다.

 마음의 창을 열고 보니 넓게 멀리 보인다. 그렇다고 남편이 모든 게 맘에 쏙 드는 건 아니다.

가끔은 못마땅한 면도 보이지만 내 마음이 그전처럼 요동치지 않으며 평안한 건  확실한 배움의 결과이다.

드디어 우리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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