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비유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창세기 47장 9절)
* 이 글은 직장생활 28년을 돌아보며,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 그림과 그 메시지를 통해 제 삶을 성찰하고자 하는 기록입니다.
헨리 나우웬이란 작가는 렘브란트가 그린 "탕자의 귀환"이라는 이 그림을 오랫동안 주시하면서 받은 영감으로, 동명의 책을 서술하였습니다. 한 번쯤 읽어 볼만한 귀중한 책입니다만, 이 책의 저자와는 달리 우리는 이 그림을 얼마동안만이라도 주목하여 보기 힘들어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두 종류의 아들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탕자와 큰아들이죠.
만약 당신이 그 중 탕자에 해당한다면, 현재 세상의 쾌락에 빠져 즐기느라 이 그림 속에서 맨발에 헌 옷을 입고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은 탕자의 모습은 외면하고 싶은 먼 미래의 상황일 것입니다.
그럼 큰 아들이라면요?
큰아들은 그림의 중앙의 구도에서 한참 옆으로 벗어나 돌아온 동생과 그것을 한없이 안아주고 있는 아버지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네요.
더 이상 주인공도 아니고, 그렇다고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 그 모습에 공감이 되사나요?
예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 그림 어디에도 우리의 감정을 이입하여 동질화할 수 있는 등장인물들이 없습니다. 나의 아바타가 없는 셈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 그림을 보는 동안 불편한 감정이 생겨서 이내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친근하다고 생각해 온 탕자의 비유가 주는 실제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왜 저는 하필 이 글의 주제로 이 불편해 보이는 탕자의 비유를 들었을까요?
저는 IMF가 터진 1997년에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직장생활도 28년 차를 지나가고 있네요.
핑계 없는 무덤 없고 사연 없는 신주 없다는 말이 있듯이 직장인 누구라고 나름 할 얘기가 없을까?
특히 인터넷으로 말미암아, 문자의 홍수가 되어버린 시대에 평범한 월급쟁이의 직장생활을 글로 더하여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문득 인생의 끄트막에서 총리가 된 요셉을 찾아 애굽으로 간 야곱이, 바로의 면전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언급한 이 성경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 족장의 시대에 나그네로서 누군들 험하게 살지 않았을까 싶지만 야곱은 바로에게 자신이야 말로 가히 험악한 세월을 살아왔었다고 말 할 수 있다 합니다.
저 또한 아홉 번 직장을 옮기고 아홉 군데의 직장을 다녔고 (예? 아홉 번 직장을 옮겼으면 열 군데 직장을 다닌 것이 아니냐고요?), IMF 이후 하나의 트렌드가 된 회사의 구조조정의 파도들을 몇 번이나 넘었습니다.
(잘 타고 넘어 기기도 하였지만, 몇 번은 이 파도에 휘둘러 넘어졌죠.)
동서양문화의 중심지인 중국과 이탈리아에서 수개월동안 출장 가서 딱히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며 먹방을 위한 여행을 하였고, 국내회사와 외국계회사를 전세살이 이사 가듯 몇 번 넘나들었으며, 적대적 M&A 에 맞서 회사를 구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비상대책위원장까지 하였습니다.
이렇듯 평범한 직장인들은 경험하기 힘든 특별한 사건들만으로도 웬만한 드라마 못지않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였습니다.
거기에다 저는 10년 이상을 탕자처럼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고, 세상의 쾌락을 즐기고, 성공하기 위하여 발버둥 쳐 보았습니다. 이때 나름 재미도 있었고, 소소한 성과도 있었지만 직장생활 10여 년 쯤에 저는 큰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전형적인 스토리처럼 이제 정신을 차리고 탕자의 생활을 청산하였습니다.
내 힘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없으니, 직장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였습니다. 그 당연한 결과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큰 성과를 거두었지요.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직장생활에서 필연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구요.
오히려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로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냉대하고, 멸시하며, 핍박하였고, 구조적인 직장 내 괴롭힘의 대상으로 삼아 결국 저를 쫓아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간 동안 저 자신은 큰 아들처럼 교만해지고, 세상을 정죄하고, 비판하며 세상의 (돈)잔치에 초청받지 못한 것으로 인해 불평하며 지냈습니다.
결국 이 그림 안에서처럼 세상에는 크리스천 직장인으로서 제가 편하게 자리잡을 수 있는 공간이 없었고, 저는 세상(직장) 안에서 갈 바를 잃고 외톨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 세상 안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 얼마나 고달프고 불편한 인생입니까?
그러다 중년을 넘어 직장의 마지막 고지를 넘어가는 시점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그림의 구도(등장인물들)에서 벗어나, 이 그림을 그리신 화가이자, 탕자의 비유를 들려주시는 예수님 그분과 마주 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크리스천 직장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파란만장했던 저의 실패와 성공담들이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크리스천이든 비기독교인들이든)에게 미로 같은 직장생활을 헤쳐나가는 타산지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빛으로서 소금으로서 살겠다는 의욕이 이제는 거의 사라져 버린 중년의 크리스천 직장인들에게도 다시 한번 그 불씨를 일으키는 조그마한 숨(공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일반사람들이 살아가는 실제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능이 대세입니다.
이런 예능을 보면 어느 부분이 실화인지, 아니면 각본이 있어 각색된 것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제 이야기도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지만, 재미를 위하여 어느 정도 가공을 하였습니다.
사건 속의 등장인물들도 다 가공의 이니셜로 하여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몄으니 이사람이 누구냐 하는 탐정의 호기심은 접어 두시고, 그저 꽁트를 보듯 재미로 읽으셨으면 합니다.
따라서 이 글은 마치 주말에 예능 프로그램을 보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매주 들르시거나, 아니면 연휴 때, 생각나서 작정하고 보는 OTT의 드라마처럼 한 번에 몰아보기를 하셔도 됩니다.
그럼 이글과 함께 긴 여행을 떠나고자 하시는 분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