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귀환 그 이후, 나의 직장생활 28년 (2)

밤새도록 수고를 하였지만(2)

by 리본안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누가복음 5장 6절)


“R팀장님, 이번 테스트 결과도 똑같습니다. 불합격입니다."

늘 싹싹했던 품질 O과장의 얼굴은 웃음기가 사라지고, 비장한 결심을 한 듯 굳어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와시코트를 가지고 벌써 세 번째 테스트를 시켰으니 열이 단단히 받은 것이죠.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두 번은 ICP(와시코트의 귀금속함량을 액체상태로 분석하는 실험기기)로 분석하였고, 이번에는 XRF(와시코트의 귀금속함량을 고체상태로 분석하는 실험기기)로 분석하였습니다. 세 번의 결과가 똑같이 스펙(규격)에서 12%가량 함량을 초과하였다고 나왔습니다."

ICP나 XRF자체의 분석방법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방법으로 분석했으나 결과가 같이 나왔으니 자신들의 품질 분석결과는 정확한 것이니 팀장님도 이젠 이것을 인정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생산에서 잘못 만든 것 아닙니까? 원인을 아직도 못 찾았나요?"

"응 생산기록서 엑셀시트 수식 다 뒤져봐도 틀린 것이 없고, 실제 투입량도 확인해 보니, 계산대로 정확하게 넣었는데... 혹시나 해서 Y과장을 불러 이번엔 계산기로 각자 따로 계산해 봤는데... 틀린 것이 없었어...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어쨌든 이제는 더 이상 생산 진행 못합니다."

눈을 부릅뜬 O과장은 몸으로라도 막을 태도였습니다.

"야 O과장, 이거 생산 못하면 고객 라인 세워야 된다는 거 알잖아? 내일 아침 8시 조업시작까지 공장에 입고시키라고 엄포를 놨다는데... 영업도 신신당부를 했고..."

"그래도 fail 난 것을 만들 수 없잖아요?"

"혹시나 말이야... 생산 완료하고 최종제품 분석에서 +10% 이내로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분석오차가 있으니..."

"XRF 분석오차가 보통 2~3%이니 그렇게 나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제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자 품질 O과장이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불쑥 내뱉었습니다.

"R팀장님이 생산을 강행하실 것 같아서 우리 팀장님에게 보고했습니다. 우리 팀장님 당장 달려오신다고, 생산을 홀딩하라고 하셨습니다."

품질 H팀장이 달려왔을 때는 이미 저녁 12시가 다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현장 작업자들은 다시 모두 휴게실에서 쉬며, 이제나 저제나 언제 지시가 내려올지 몰라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H팀장은 당장 생산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와시코트를 다시 만들고 분석하여 합격하면 생산을 진행해야 한다는 원리적인 이야기를 되풀이하였습니다.

"와시코트를 지금 당장 다시 만들어도 최소한 이틀은 걸립니다. 문제는 fail난 원인을 현재 알 수 없으니 이 생산기록서 대로 만드는 한 다시 fail 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요. 자동차 라인 끊으면 우리가 어떻게 되는지 팀장님도 아시잖아요?"

자동차업계의 품질업무를 오랫동안 해왔던 H팀장 역시 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를 리 없어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일단 C사장에게 보고를 합시다."

C사장은 여름휴가를 본국에서 보내고자 오늘 출국하였고, 마침 도쿄에서 transfer 하려고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 막간 사이 겨우 우리 전화를 받을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C사장의 지시는 명확했습니다. '라인을 세워라.'

제가 '그럼 내일 오전에 납품하기로 한 약속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다음 대책을 알려달라'라고 질문을 하였는데, C사장은 애매모호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원칙대로 해라"

'응? 원칙대로 해라?'

전화를 끊고 잠시 그 의미가 뭘까 생각해 보니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자신은 여차하면 책임에서 빠져나가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H팀장님, 그렇다고 고객 라인을 세울 수 없지 않겠습니까? 제가 다 책임을 질 테니 생산 진행합니다. 혹시나 압니까? 나중에 최종제품 분석에서 스펙 안에 들어올지"

그러자 결국 H팀장도 마지못해 물러섰습니다. 벌써 새벽 1시가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휴게소에 들어가 있던 현장의 작업자들을 라인에 배치해서 생산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제품이 나오자마자 품질팀은 분석에 들어갔고, 분석결과를 기다릴 수 없어서 일단 제품을 카고차량에 싣고 대구로 내려보내었습니다. 공장에 막상 입고시킬지는 그때 테스트 결과가 나오는 걸 봐서 결정해 줄 테니 고객사 공장 입구에서 대기하라고 지시였습니다.


"팀장님 분석결과가 나왔습니다. 역시 fail입니다."

품질 O과장의 목소리에 저는 퍼뜩 잠이 깨었습니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그리고 밤까지 새워 나도 모르게 책상에 엎드려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이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게 되어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내가 왜 굳이 이 책임을 지려고 무모하게 달려들었지?' 하는 후회가 물밀듯이 들어왔습니다.

오전 5시 C사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내가 당신의 지시를 어기고 생산을 진행했고, 결과도 역시 fail로 나왔다. 이 잘못에 대하여 어떠한 처벌도 받겠다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보고하자 C사장은 "You did your best."라는 말로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순간 울컥했습니다.


C사장의 말에 어느 정도 안심은 되었지만, 이 사건을 통하여 앞으로 어떤 질책을 당하게 될까 두려움이 엄습하였습니다.

그때 평소에 알고 지내던 권사님이 떠올랐습니다. 권사님은 평소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은사를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아내를 통하여 들었을 뿐, 직접적으로 대화를 한 적은 없는 분이셨습니다.

워낙 다급하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는 그간 밤새 회사에서 일어난 일을 간략하게 말씀드렸고, 아마 회사에 사표를 제출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순간에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사실 연로하신 권사님이 저의 회사일에 대하여 얼마나 이해를 하셨을까요?

"오늘 아침 새벽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OO아빠를 위하여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OO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나 보다고 기도를 했지.

그리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나오는 데 갑자기 누가복음 5장 베드로가 밤새워 낚시하는 구절이 떠올라서 무슨 일인가 일단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이게 아마도 OO아빠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이 드네... 누가복음 5장 한번 찾아서 읽어보세요."

저는 전화를 끊고, 책상에 있는 성경책을 펼쳐서 누가복음 5장을 읽어보았습니다.

제 생애 처음으로 직장생활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자 어부로서 경험이 많던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허탕 친 상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장면은 밤새도록 일을 하였지만 결국 성과를 얻지 못하고 실패를 한 저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드로처럼 저도 직장생활 11년 동안 제 힘과 지식만 믿고 나름대로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해왔다고 자부하였는데, 한순간에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처럼 그동안 자신과 동떨어진 선생에 불과하였던 예수님을 제 직장생활의 로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마침내 왔음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요?

저도 이제 직장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대로 행하겠다는 기특한 결심을 했으니, 베드로가 예수님 말씀대로 그물을 내려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물고기를 낚았듯이 저에게도 이제는 큰 성공을 거두는 성공스토리가 펼쳐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잠시 들 긴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참 냉정하였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채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우리의 고객인 G사는 백여 개가 넘는 claim(불만) list를 우리의 영국 본사 CEO에게 보내는데 이 fail 한 사건이 그 리스트 중 가장 심각한 하이라이트로 부각되었습니다.


젊은 남녀의 로맨스는 결혼이라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곤 하죠.

성경의 탕자스토리도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왔고, 성대한 잔치를 여는 엔딩으로 흥겹게 끝납니다.

귀환 이후, 탕자가 속세에서 묻은 때를 벗겨내고 참 아들로 변화하기 위하여 겪어야 하는 뼈를 깎는 연단의 과정은 생략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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