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수고를 하였지만(1)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 (누가복음 5장 5절)
“네? 이번 납기를 맞추지 못하겠다고요? 우리 같은 자동차부품 업체에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평소에 너털웃음을 잘 짓던 영업 K팀장의 어투에 평소에는 억눌러 놓았던 경상도 억양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게 아직 담체가 들어오지 못해서….”
구매 L팀장의 목소리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니 담체가 없어서 생산을 못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미리미리 재고를 확보했었어야죠"
K팀장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사실 영업에서 준 매출계획이 또 변하는 바람에... 그렇게 갑자기 매출이 증가하면 담체 발주하고 수입해서, 입고하는데 통상 3개월이 걸리는 데... 매출계획 그렇게 변해놓고, 2주 안에 내놓으라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 장사 한두 번 합니까? 우리는 신제품이라 매출을 예측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미리미리 안정적으로 발주를 넣었어야지요? "
"그럼 사장님께 직접 말씀해 보시죠? 제가 아무리 말씀드려도 사장님은 불가하다고 말씀하시니... 아시다시피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공장들은 재고 수준을 매월 본사에 보고해야 합니다. 재고를 적절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바로 경고 사인이 뜨는걸요?"
"그야 다른 공장들은 대부분 기존 자동차라인에 납품하니까 그렇죠. 우리는 모든 부품이 신차용인데..."
흥분하였던 K팀장의 목소리도 어느덧 잦아들고 있었습니다. 결국 외국인인 C사장이 키를 쥐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한국의 자동차업계 사정을 이야기해도 C사장은 회사의 내부 규율을 들어 난처하다는 제스처를 취하곤 했습니다.
결국 영업총괄 책임자인 P상무가 나서야 했으나 회사 설립 초기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P상무는 그러한 일에 참견하는 것을 상당히 꺼려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화살이 실무자인 우리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우리 선에서 풀어야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럼 언제쯤 가능합니까?"
결국 K팀장은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해결책으로 모두의 시선을 돌렸습니다. PM (product manager)를 오랫동안 하면서 베인 특유의 습관(장점)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긴급적으로 일본 우리 자회사 공장에서 빌리기로 한 담체가 이번 주 토요일 부산에 도착합니다. 아는 관세사에게 준비시켜서 최대한 빨리 통관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면 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공장에 도착될 겁니다."
모두의 시선이 생산팀장이던 저에게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 와시코트(Washcoat)를 미리 준비시켜 놓으면 월요일 1차, 2차 코팅하고, 품질에서 분석하면 저녁쯤에는 출고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밤차로 대구까지 실어 보내면, 화요일 오전 8시에는 고객의 작업개시 시간에 맞출 수 있을 듯합니다."
L팀장의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K팀장의 시선은 자신의 밑에 있는 영업 S대리에게로 향했고, 당연히 회의실의 모든 사람들의 눈도 S대리에게 향하였습니다.
"이번 스케줄도 겨우 사정해서 1주일 연기한 거 아시죠? "
S대리는 양손을 들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어쩔 수 없죠. 다시 한번 미인계를 써야겠네요? 오늘 다시 대구로 내려가야죠"
재미교포인 S대리의 '미인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 회사 모든 남직원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시민권자인 S대리는 누구보다도 한국의 직장 문화 특히 술문화에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주량이 엄청 세었죠.
그래서 보수적인 자동차업계 특히 공장의 실무자들은 가뜩이나 업계에 귀한 영업직 여성의 장부다운 모습에 한국영업맨보다 오히려 더욱 친근감을 갖고 어려운 부탁도 선뜻 들어주곤 했습니다.
결국 K팀장은 '이번이 정말 마지노선이다.' '이번 납기를 못 맞추면 우리도 결국 자동차조립라인을 세울 수밖에 없고, 결국 그 책임은 너희가 져야 한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는 업체 생산부장의 말을 저에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제발 납기를 맞추어달라는 신신당부를 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설상가상 안 좋은 일들은 연이어 온다더니 요즘 뉴스에서는 화물연대파업이 커져서 사상 유례없는 물류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떠들고 있었습니다.
C사장은 매일 팀장회의를 소집해 이번 담체 이송에는 차질이 없는 것인지 거듭 확인해 보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경험이 많은 C사장은 일주일 전 L팀장이 담체의 재고문제를 들고 보고하러 오자, 원료업체에 발주해서 받으면 3개월이 소요되니, 일본이나 중국의 우리 회사 공장에 같은 종류의 담체 재고가 있는지 문의해 보라고 충고하였습니다.
다행히 일본에서 우리가 쓰는 것과 동일한 담체가 있다고 연락이 와, 그것을 빌리는 것으로 하고, L팀장은 일본으로부터의 직접 수송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기한이 없는 파업의 영향을 예측할 수 없어, 평소 거래를 하고 있던 물류회사가 아니라, 자신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자영업 사장님에게 이송을 부탁하였고, 통관 즉시 월요일 새벽에 그 사장님이 직접 개인 카고 차량을 운전해 담체를 싣고 오기로 하였습니다.
드디어 월요일 아침이 되었고, 저는 현장에 담체를 코팅할 만반의 준비를 시켜놓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담체는 공장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초조한 마음으로 수소문해 보니. 통관은 예정대로 되었는데, 담채가 실려있는 우리 컨테이너가 하필이면 컨테이너가 적재되어 있는 제일 밑단에 있었던 것입니다. 통상적인 절차대로 한다면 순서대로 컨테이너를 뺄 수 있지만, 이 컨테이너만 긴급하게 통관시켰기 때문에, 그 컨테이너만을 꺼내느라 곱절의 시간이 걸렸던 것이었습니다.
컨테이너는 정오가 다 되어서야 겨우 꺼내어져서 차량에 실렸고, 지금 고속도로를 타고 있으니 오후 늦게쯤에는 도착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할 수 없이 현장 작업자들을 휴게실에서 종일토록 쉬게끔 헐 수밖에 없었는데 이게 또 웬일입니까?
퇴근시간이 다 되도록 담체는 공장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또 무슨 불길한 일이 발생한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는데, L팀장의 전화가 왔습니다. 하필이면 그 사장님이 운송하는 차량이 평택 근처 고속도로에서 퍼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L팀장은 다급한 마음에 지금 자신의 SUV차량을 몰고 나가고 있고, 그 사장님은 따로 1톤 트럭을 수소문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었습니다.
결국 L팀장은 고속도로에서 자신의 SUV차량에 1시간 분량 정도의 담체를 싣고 공장으로 먼저 달려왔습니다.
우리는 일단 그것으로 생산을 시작하였고, 나머지 분량을 실은 1톤 차량이 때마침 도착하여 우리는 연이어 라인을 돌려 1차 코팅을 밤 11시경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이 생명과도 같은 납기를 맞추고자 자신의 모든 역량을 쥐어짰고 그 결과 이제야 납기를 맞출 수 있겠다는 안도감으로 모두 퇴근을 했습니다.
저의 생산팀과 제품을 분석해야 하는 품질팀 일부가 2차 코팅을 하기 위하여 밤 새울 각오로 남아 있었는데 누가 알았겠습니까?
결정적으로 이 모든 노력들을 물거품으로 만들 실수를 내가 하게 될 줄을...
또한 이 실수가 결국 이 회사의 운명을 흔들어 버리는 전대미문의 태풍을 몰고 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줄을...
그러고 보니 저도 밤새워 일을 할 때가 있었네요?
제가 스타트업의 CTO로 근무하였을 때, S사 출신의 사장님은 직원들을 계속 야근시키고, 주말에도 근무시키게 해야 한다는 지시를 저에게 수시로 내렸습니다.
세계적으로 AI반도체가 각광을 받고,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의 주가가 사상 최초로 맥을 못 추고 있을 때, 그에 대한 해결책의 하나로 법정노동시간을 적용하는 것을 반도체업계에는 예외로 하는 법안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시대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밤을 새워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어처구니 없이 실패를 하였고, 그렇게 워라밸을 잘 지켰던 스타트업 조직은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내곤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일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일하느냐 하는 것인데...
그래서 참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직장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