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귀환 그 이후, 나의 직장생활 28년 (3)

밤새도록 수고를 하였지만(3)

by 리본안

시몬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누가복음 5장 40절)


그건 그렇고 도대체 왜 이 불량(fail)이 일어났을까요?

이것은 당시 우리 회사 내부 인원뿐만 아니라, 나중에 이 문제를 이슈화한 고객의 SQE (Supplier Quality Engineer)도 궁금해했었습니다.

그땐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맹세했었는데 이젠 오래전 일이 되었으니 그 전말을 공개해도 될 듯합니다.

"어 Y과장, 애들 다 어디 있어?"

저는 그날 꼬박 밤을 새운 직원들과 아침을 먹으러 가려고 생산과장인 Y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 예 팀장님, 모두 대회의실에 있습니다."

" 뭐? 대회의실에? 아니 왜?"

Y과장은 답변을 못하고 잠시 주저하다가

"저.. F이사가 모두 집합하라고 해서요..."

"F이사가?"

"예 우리뿐만 아니라 품질, 영업 모두 있습니다."

"영업까지?"

전화를 끊고 저는 이게 또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느라 머리를 굴려야 했습니다. 공장뿐만 아니라 영업까지 소집할 수 있는 사람은 C사장이 유일한데 지금은 휴가차 해외에 있는 상태고...


F이사는 저희 자동차촉매를 엔진에 걸어 테스트하는 테스트센터장입니다. 우리의 경쟁사에서 최대자동차업체인 H사 영업을 전담했었는데, 영업 총괄 P상무가 향후 H사 영업을 위하여 영입하자고 C사장에게 소개하여 채용된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그때는 영업에 자리가 다 차서 C사장은 자동차촉매와 관련하여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F를 일단 테스트센터의 총책임자로 입사시켰습니다.

회사 초창기에는 자동차업계 쪽에 경험이 없었던 저를 포함한 공장 쪽 팀장들에게 관련 기술을 가르치겠다고 특강을 열기도 하였고, 자동차 업계에 영업하는 처세술에 대하여 자주 훈계를 하곤 했는데, 이제는 저희들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교류가 뜸해져 요즘은 공장 쪽 일에는 소원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태가 발생하자 얼씨구나 하고 다시 어른 노릇을 하고 싶어 하던 본성이 다시 나타난 모양입니다.

'그래도 C사장이 부재한 상태에서 우리 회사 넘버 2는 P상무인데?'

회의실에 들어가는 마음이 처음부터 영 마뜩잖았습니다.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회의실은 역시나 초상집 분위기였습니다.

"아니 그거 하나 제대로 못 만들고 불량품을 납품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 따위로 일해서는 H사 공급은커녕 공장 문 닫아야 해요."

F이사는 죄를 지은 주범(?)이 들어오자 목소리를 더 높이는 듯하였습니다.

평소 말이 씨가 된다고, 부정적인 말은 되도록 삼가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는데, 제가 지은 이 공장문을 닫아야 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는 것에 발끈하였습니다. 더구나 공장이 납기를 맞추지 못하여 전전긍긍할 때 강 건너 불구경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가 총책임자인양 질책을 하고 있고, 납기를 맞추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사람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죽을 상을 짓고 있으니, 가만히 참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F이사님, 공장문을 닫아야 한다니요? 함부로 그런 이야기하는 것 아닙니다."

제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가자 F이사는 예상치 못했는지 멈칫하였습니다.

"사태를 바로 인식해야죠. 우리가 납품한 제품은 기준을 over 했지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불량품은 아닙니다. 자동차 성능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나마 고객의 라인을 세우지 않아서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잠시 뜸을 들이자 모두의 시선이 저에게로 쏠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태는 전적으로 저의 잘못입니다. 여러분들은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여러분들은 라인을 끊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회의실에 있는 멤버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영업팀에 감사드립니다. 영업팀은 한번 납기를 연기해 준 것도 어려웠을 텐데, 공장을 위하여 고객을 설득하여 한 번 더 납기를 연기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L팀장에게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L팀장은 화물연대 파업 등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담체를 이송하느라 최선을 다했고, 자신이 직접 차를 몰고 싣고 와서 한시라도 빨리 라인을 돌릴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약속한 오늘 아침 8시 업체의 조업 전까지 제품을 무사히 납품할 수 있었습니다."

"품질팀은 결국 생산팀이 잘못한 것이라는 것이 드러났지만, 몇 번을 양보해서 와시코트를 세 번이나 다시 분석해 주었고 함께 밤을 새워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애들은 어제 아침부터 나와서 지금까지 밤을 새워 제품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결국 납기를 맞추었습니다."

"이 사태의 문제는 저 혼자의 잘못입니다. 따라서 제가 책임지면 되는 것이고, C사장에게도 이렇게 보고하였습니다."


회의는 이제 파장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모두들 당장이라도 답답한 회의실을 나가고 싶어 하는 듯했습니다.

" 오늘 다음 물량마저 생산해야 합니다. 우리 애들 지금 밥 먹어야 해요."

대장인 제가 일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생산팀 현장직원들이 모두 일어섰고, 함께 밤을 새운 품질팀 직원들도 따라 우르르 일어났습니다.

해장국을 먹으러 나가기 위하여 주차장으로 다들 몰려가는데 Y과장이 저에게 바짝 붙어 따라 나오며 물었습니다.

"팀장님, 도대체 어디에 계셨어요? 계속 전화를 했는데 통화 불능이라고 나오던데요?"

"응? 계속 전화했었어? 어 그게..."

그러나 저는 이내 말을 얼버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어디에 누구와 있었는지는 이미 비밀로 해두기로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R팀장님, 제품이 fail 났다면서요?"

L팀장은 아침 일찍 출근하자마자 바로 저에게 달려왔습니다.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근데 사실 저도 그 이유를 모르겠네요? 아무리 봐도 제대로 계산하고, 또 제대로 원료를 투입했는데..."

저의 눈치를 보던 L팀장은 마침내 다짐했는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었습니다.

" 저 팀장님 사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항상 여유가 있던 L팀장의 얼굴은 심각한 듯 굳어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좀 그렇고... 금고로 함께 갈까요?"


저희는 자동차 촉매로 귀금속(파라듐, 플라튬 로듐)을 사용하는데, 특히 로듐은 금보다도 몇 배나 비싼 물질이고 와시코트의 2차 코팅 때 사용되는 물질입니다.

귀금속 물질들이 워낙 비싸다 보니, 우리는 이 귀금속만을 보관하는 창고(금고)를 지었는데, 여기는 드릴로 뚫기도 어려운 두꺼운 콘크리트 벽으로 되어 있습니다.

L팀장과 저는 이 금고에서 얘기를 하고 있었으니 Y과장이 전화했을 때 핸드폰이 터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R팀장님, 사실 이번에 분출한 로듐은 상해공장에서 수입한 제품이 아니라, 우리 파이롯트설비에서 만든 시제품이 조금 섞여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우리 제품이 fail 났다는 것을 듣고, 체크해 보니, 우리 파이롯트 시제품의 로듐함량이 상해제품보다 높더라구요?"

저는 그제야 비로소 저를 둘러싸고 있던 짙은 의문의 안개가 걷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구매팀에서 받은 로듐원재료의 성분을 계산할 때, 100% 상해제품의 성분으로 계산하여 와시코트에 투입한 것입니다. 당연히 성분이 높은 공장 내 파이롯트 제품이 혼입 된 만큼 로듐의 실제 투입량은 기준보다 많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 로듐을 분출하는데, 로듐도 재고가 바닥이 나 버렸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우리 시제품이 있다는 것이 생각나서 그만..."

L팀장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게 드러날 거라고는..."


이 말을 듣자 문제의 원인을 알았다는 안도감은 잠시, 저는 우리의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동차업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절차가 있는데 그것은 '변경관리'입니다.

자동차는 개발할 때, 모든 부품들의 성능을 테스트하고 개발단계에서 합격한 부품들만 양산에 사용하게끔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양산단계에서는 개발단계에서 합격한 제품들을 공급하여야 합니다.

필드에서 발생하는 불량은 거의 대부분 개발단계에서 검증된 공정으로 만든 부품들을 변경(원재료나, 함량이나, 제조조건이나, 납품업체나)하였기 때문에 발생하더라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있기에, 이러한 변경과정은 모두 신고되어야 하고,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웬만한 경우에는 변경허가를 잘 내주지 않는 것이 자동차업계의 관례입니다.


저희 공장에서 사용하는 귀금속은 순도 100%의 금속을 질산이라는 용액에 녹여서 사용합니다. 저의 자회사인 상해공장에서 이렇게 금속을 수입하여 질산용액으로 만들어 20리터짜리 말통 형태로 아시아의 각 공장에 공급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정작 필요로 하는 금속의 성분은 전체 말통의 10~15%밖에 없는 꼴이라 우리는 이 말통을 수입하느라 상당한 물류비를 지불하여야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비용을 줄이고자 최근 한국공장 내부에 이 귀금속을 질산용액에 녹이는 파이롯트 설비를 설치하고, 시생산하여 샘플을 영국 본사에 보낸 상태였습니다.

영국본사에서 성능에 이상이 없다는 성적서를 보내오면, 이것을 고객인 자동차 SQE에게 신고하여 변경허가서를 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통상 3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L팀장은 당장 재고가 부족하자 이 승인과정에 있던 우리 귀금속 시제품을 생산팀에게 분출해 버린 것입니다.

말 그대로 자동차부품업계의 가장 민감한 사항을 어긴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L팀장님, 이 사실은 팀장님과 저 사이만 알고 있는 것으로 하고, 무덤까지 갖고 갑시다."

저의 입에서 순간적으로 이런 말이 나와버렸습니다.

"어차피 와시코트 fail 난 것을 제가 임의로 사용한 것이 외부에 드러난 명백한 fact입니다. 그리고 이 책임은 제가 다 지고 가는 것으로 얘기가 된 상태입니다. 여기에 L팀장님까지 이 짐을 지고 갈 필요는 없잖아요?"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L팀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자리로 돌아와 아침을 먹으러 가려고 환복을 하고 있었고, L팀장은 대회의실로 호출을 받아 간 것입니다.


"만약 이 사태가 재발한다면, 똑같은 결정을 할 것이냐?"

몇 년 후 이직을 하기 위해 먼 거리를 달려간 면접에서 당시 면접관이던 외국인 사장이 당신의 경력 중에 가장 큰 실수나 실패의 사례를 들어보라는 질문을 하기에 저는 이 사건을 언급했습니다.

그러자 위와 같은 질문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럴 것이라고 답을 했습니다.

스펙이 벗어나더라도 불량품이 아닌 이상 라인을 끊지 않는 것이 고객을 진정 고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럼 과연 저는 이 면접에서 합격했을까요?

예 합격했습니다.

(돌이켜보면 C사장도 나중에 이 사건으로 인하여 큰 곤경을 치르게 되었지만, 한 번도 저의 이 결정 자체를 질책한 적은 없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다 많은 경험이 쌓인 지금, 이 사건에 대해 보다 나은 접근 방법이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사건은 일단은 일개 생산팀장인 제가 책임질 수도 책임질 일도 아닌 일이었습니다.

일단은 스펙이 벗어난 불량품인 것이 판정 났으니 고객사 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는 기사에게 제품을 입고시키지 말라고 명령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품질팀장에게 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고객의 라인이 끊어지게 되니, 그것을 고객에게 통보하고, 그나마 성능상 문제가 없으니 특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고객에게 요청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은 영업팀에게 있고요.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책임을 지고 이 문제를 오픈하고 정면으로 돌파했다면, 나중에 이 스펙아웃 제품을 몰래 납품하고, 그것이 발각되어서 받게 된 후폭풍은 막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 우리 모두는 이것을 정면돌파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 사건은 유야무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잠시 덮어두었고 그때는 그렇게 들키지 않고 넘어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나란 인간은 팀장 주제에 이걸 다 짊어지고 가겠다는 무모하고 치기 어린 모습이 있었네요.

그것은 아마도 저의 평범하지 않았던(?) 초기의 직장생활의 영향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편에 잠시 그때로 돌아갔다 올게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지만, 아마도 예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지는 았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물이 찢어지는 예상치 못한 성과를 보고 비로소 예수님이 주(하나님)이심을 깨닫고 무릎을 꿇습니 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이러한 투박한 순종을 받아들이시고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어가는 기반으로 사용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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