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 일본 출장을 가다.
"야 너 이번에 일본출장 가게 되었다."
평소에 저를 아끼시던 L과장님이 저의 어깨를 툭 치셨습니다.
"야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우리 같은 신입과장들도 해외출장 가는 게 하늘에 별따기인데. 신입사원이 해외출장이라니? 네가 우리 회사 최연소 해외출장 기록을 세웠다."
흔히 해외출장은 회사원에게는 직장생활의 꽃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저 같은 연구소 소속의 연구원일 경우는 해외출장은 언감생심 먼 나라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해외출장이라니요?
여러분들에게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경작되는 곡물이 무엇일까요?
언뜻 밀이나 쌀이 떠오를 것입니다. 사실 세계 곡물 수확량 넘버 원은 옥수수입니다.
뜻밖이라구요?
그것은 우리가 옥수수라 하면 대부분 쪄 먹는 식용 옥수수를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옥수수는 대부분 식용이 아니라 산업용으로 사용됩니다. 옥수수에는 탄수화물인 전분이 있는데, 이 전분은 식품의 원재료가 되거나 종이를 만드는 데, 필수적으로 사용되지요. 일종의 풀 먹임 재료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 전분을 효소로 분해하여 물엿이나 포도당을 만들어 식품에 광범위하게 사용됩니다. 옥수수의 단백질인 글루텐은 사료용으로 사용되고, 옥수수 눈은 식용유의 재료입니다.
그리고 한 때 오일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옥수수 열매나 줄기는 발효시켜 에탄올을 만들어 대체에너지인 자동차 연료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니 옥수수는 산업용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그 수요만큼이나 생산량이 많은 셈이죠.
제가 다닌 첫 번째 회사는 세계 최대 옥수수 생산지인 미국에서 옥수수를 수입하여 전분을 만들거나, 분해하여 물엿, 포도당을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였습니다.
(그럼 옥수수의 제2 생산지는 어디일까요? 중국입니다. 다음 회에서 중국에 유래없는 장기출장을 가게 된 것도 이 옥수수와의 인연 때문이죠.)
저희 회사의 사업은 정유회사처럼 장치산업이라 진입장벽이 커서 서너 개의 회사가 카르텔 비슷한 것을 형성해서 시장을 나눠 먹는 매우 안정적인 사업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식품공장이나 제지회사에 주요 원료로 사용되는 필수품이라, 원유처럼 시장곡물가격이 변동하면(특히 가격이 올라가면) 제품 가격도 일정 정도 올리곤 하여 일정한 정도의 수익이 항상 확보되는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저희 회사는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이런 회사의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정말 태평하고 편한 회사생활이었습니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우리의 입안에서는 아밀라아제라고 하는 효소가 나와 전분(탄수화물)을 분해합니다. 우리 회사는 역시 동일한 원리로 옥수수전분을 산업화된 대량효소를 사용하여 물엿이나 포도당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이 산업적 용도의 효소들은 역시 산업원료의 강대국인 일본에서 개발되어 대량으로 생산하여 공급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입사한 그 해에 일본의 한 회사에서 특수한 성질을 가진 물엿을 만드는 특수한 효소를 개발하여 우리에게 공급하는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술적인 관점으로는 그 효소를 만드는 과정(새로운 균을 개발하고 효소를 만들어 정제하는 것)이 신기술일 뿐, 그 효소를 사용하는 공정은 똑같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특별히 연구해야 할 새로운 기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입연구원인 제가 그 신제품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 일본회사가 담당 기술자를 일본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한 것입니다.
(그 업체가 개발한 효소를 사용하여 제조한 물엿은 일반적인 물엿과 그 구성물(다당류)이 좀 다는데, 이 물엿을 사용하여 사탕을 만들 경우, 이 사탕은 깨물면 바삭 깨어지고, 치아에 끈적거려 달라붙지 않는 성질을 지니게 됩니다. 그리고 찹쌀떡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면 전분의 노화를 방지하여, 며칠 보관해도, 딱딱해지지 않고 부드러운 식감을 가지게 되는 차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회사는 한국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계약 초기단계부터 관련 기술자를 일본에 초청하여, 관계를 돈독히 하는 등으로, 향후 한국시장에 수출을 확대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출장 기회가 담당자인 저에게 오게 된 것인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제가 일본어를 도통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통역을 위하여 일본어에 능통한 10년 경력의 연구소 L과장이 동행하게 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습니다.
보통 우리 같은 기술자들이 해외기술 연수를 가게 되면, 숙련된 선임기술자가 짬밥 예우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가고, 언어가 문제가 될 경우, 외국어를 할 줄 아는 (보통 젊은) 해외영업 등의 통역자가 따라붙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완전히 반대가 되어버렸습니다.
"R San, are you OK?"
그 회사에서 머무는 기간은 5일이었는데, 접대를 끝낸 다음날 아침 일본회사의 해외영업담당자는 아침에 만날 때마다 영어로 저에게 물어보곤 했습니다.
매일 저녁 1차 가벼운 반주가 곁들인 식사가 끝나면 꼭 가라오케나 룸이 있는 노래주점으로 데리고 가서 술을 마셨습니다.
통역(?)으로 따라나섰던 L과장님은 술을 드시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당연히 술상무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 방문에 호스트역할을 했던 그 친구 역시 매일 참석해야 했기에, 매일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하여 일종의 동료애를 가지고 아침마다 서로의 안부를 물었던 것입니다.
"Yes, No problem"
아직 젊은 때였고, 한국의 주류문화에 비하면 일본은 비교적 가벼운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뜨거운 물을 받아 놓고 30분가량 땀을 흘리는 것으로 다시 원래의 컨디션으로 쉽게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Oh!, you are so strong"
저희들은 매일 다른 곳으로 번갈아가며 나름 그 지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식당으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고독한 미식가'와는 달리 떠들썩한 접대형 맛집 여행을 경험하였습니다. 생전 처음 접하는 일본음식은 자극적이지 않고, 달지도 않으면서 아주 담백한 맛이 나면서 은근히 입맛을 당기게 하는 음식들이었습니다.
통역으로 따라갔던 L과장님은 선임 대리가 될 무렵 회사에서 일본에 파견하여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받았기에 일본문화에 익숙했고, 일본 출장도 몇 번 다녔었다고 합니다만, 이런 접대성 출장은 없었다고 하면서 '너는 참 복 받은 놈인 줄 알라'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해외여행이 대중화되고, 한참 먹방이 유행하여, 일본의 유명한 식당을 찾아가, 음식을 체험하고 전달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여행을 다니는 것이 다반사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러한 음식탐방 문화가 거의 대중화되어 있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눈여겨본 것은 접대의 주요 호스트인 해외영업 담당자는 매번 참석하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매일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해외영업팀원들이 참석하였고, 그다음 날은 연구소 인원들, 하루는 제조 관련 인원들이 교대로 참석하여 음식과 함께 가무를 즐기는 것입니다.
저희들을 예우하는 차원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것처럼 각 팀들이 저희를 핑계로 평소 가지 못하던 장소에 가서 회식을 즐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로서는 이 신제품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있었기에 저희에게 파는 그들의 초기 매출액이 크지 않았고, 앞으로의 예상 매출액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기에, 너무 과분한 대접을 받는다는 인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것이 일본기업의 서비스정신이구나!'
하지만 이 회사에서 제가 진정 인상 깊게 본 것은 다른 면의 서비스정신이었습니다.
이 회사는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사탕을 특별하게 만드는 물엿을 만드는 효소를 개발하여 공급하는 효소회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사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탕 전문가가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구원은 자신이 7년간 연구한 사탕 연구결과를 저에게 전수하여 주었습니다.
이 업체는 자신의 고객(물엿 제조회사)의 고객(사탕 제조회사)의 제품을 개발(개선) 하기 위하여 연구하는 사람이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수천억의 매출을 일으키는 우리 회사에 비해, 이 업체의 매출이 수백억에 불과한 조그마한 중소기업임을 감안할 때, 이 조그마한 business 생태계에서도 이런 심층적인 고객 지원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는 일본의 인프라에 대하여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제가 알게 된 어떤 분은 일본에서 원료를 수입하여 대기업에 납품하는 수입상을 오랫동안 하셨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자수성가하서 성공하였을 때, 오랜 숙원이었던 원재료를 만드는 사업에 투자하였습니다.
수소문한 끝에 해외에서 제조기술을 들여와 어렵게 원자재를 생산하는 데 성공하였는데, 막상 판매를 하려고 보니 큰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잠재적 고객인 대기업의 연구원들이 자신의 제품(화장품)에 이 원자재를 적용한 사례에 대한 충분한 데이터를 가져오라고 한 것입니다.
결국 고객을 위한 데이터를 개발할 수 있는 화장품 개발 인프라를 갖추어 놓고 보니 차라리 이참에 직접 고객의 시장에 뛰어들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겨버렸습니다.
결국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고, 당연히 그때는 이 시도는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여기서 한국과 일본의 비즈니스 세계의 인프라의 깊이의 차이를 깨닫게 됩니다.
몇 년 전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로 인하여 악화된 한일관계 때문에 우리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일본에서 핵심원료의 수출통제로 인하여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새삼 신입시절 일본출장을 통해 느꼈던 그 심층적인 산업 구조가 현재도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과거에서 배운 교훈들이 현재의 보다 나아짐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이졘 유례없었던 방대한 중국 여행기로 화제를 옮기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