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대리 중국을 누비다(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마가복음 8장 1절)
"북경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마도 이사님은 중국이 처음이시지요?"
저희 회사는 식품회사라 중국이 시장을 개방한 초기부터 일치감치 북경에 사무소를 설치하였고, 북경사무소의 지사장님은 대국이라는 나라에 적응하시려는 듯 대인배다운 면모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어이 H대리, 인사하지? H대리는 조선족인데, 이 사무소에서 가장 경력이 오래된 베테랑입니다. 이번 출장에 통역원으로 두 분을 24시간 내내 보필할 것입니다."
우리는 중국 출장 전반기를 따라다닌 유난히 축구(그중 베르캄프)를 좋아했던 누님뻘의 여장부 H대리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언젠가 중국 출장 중 중국과 한국의 축구 경기가 중계된 적이 있습니다.
근데 새삼 놀라왔던 것은 H대리는 한국이 아니라 중국을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H대리가 현재 중국의 아나운서들이 어떻게 경기를 해설하고 있는지 통역해 주었습니다.
"아 이번에도 역시 한국에 지겠죠?"
" 예, 그럴 것입니다. 이번에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지 한번 지켜보죠"
그런 해설을 들으면서 우리들이 강팀을 대하는 정서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 환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R대리, 전무님께 우리 출장의 목적에 대하여 좀 설명드리지?"
저는 중국에 첫 출장 오기 한 달 전쯤 대리로 진급하였습니다.
남들보다 1년 먼저 진급하였는데 대리급을 붙여줘야 한다는 중국출장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예 저희들 출장의 목적은 우리 전분당 사업본부의 주 수입원인 옥수수의 중국 생산량을 조사하고, 수입을 위한 곡물 유통업체, 유통구조, 가격, 수출항 등을 조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대략적으로 파악한 것은 중국의 옥수수 주 생산지역은 동북 3성(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 북쪽지역이고, 옥수수 생산지의 남방 한계선은 산동성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통계자료가 인터넷상으로는 자세하지 않고, 빈약하여 일단은 산지의 통계국, 옥수수를 다루는 대형 곡물회사가 있는 도시, 수출하는 천진이나 대련 등 대형 항구도시들을 방문해 볼 생각입니다."
브리핑을 들으시던 지사장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리고 중국 지역 일부에서는 물엿을 만드는 원료로 쌀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절강성 등은 쌀을 이모작을 하고, 그로 인하여 공업용 쌀이 저렴하여 그런 듯한데, 이 지역도 한번 조사해 볼 생각입니다."
그러자 옆에서 잠잠히 듣고 있던 H대리의 눈이 점차 믿기지 않는다는 듯 휘둥그레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이어서 브리핑하였습니다.
"또한 저희 사업본부에서는 중국에 옥수수가공공장을 세워서 중국시장을 공략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분당 제품의 주요 시장인 북경, 청도, 상해, 광동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공장이 들어설 수 있는 항구 근처의 공업단지들을 들러보고 투자혜택, 입지 조건 등을 알아볼 생각입니다."
저의 여행지도는 중국의 북경 위쪽을 거의 샅샅이 홅었고 대도시와 항구가 발달한 중국동쪽 해안으로 확장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본부장님이 나머지 중국 동쪽의 나머지를 얹었고, 향료의 중심지인 중국 내륙의 사천성까지 더하셨습니다.
"이사님 본사로부터 오더가 왔는데, 우리가 종합식품회사다 보니 식품재료의 수입원으로서 중국이 아주 중요해졌습니다. 따라서 고추, 향료, 설탕 등 농산물 전반에 대하여도 이참에 한번 철저히 조사해 보라고 합니다."
고추는 산동성일대가 주요 산지이고,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는 중국 최남단 강소성일대가 주요 산지입니다.
결국 우리의 출장은 중국 북쪽 끝에서 대련, 북경, 천진을 지나, 청도, 상해, 광둥시에 이르는 중국의 개발이 집중된 동쪽 해안을 가롲질러 남쪽까지 이르는 거대한 여정이었고, 내륙의 중심지인 사천성까지 아우르게 되었습니다.
장작 6개월이 걸리는 여행이었고, 사무소의 자신의 업무가 있었던 H대리는 급한 상황에 당장 투입되었지만 전반부 이상을 책임지기 어려웠고, 이 출장을 위하여 전문 통역인(S대리)을 중간에 고용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별의별 사건들을 겪었지만, 이 글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행기가 아니고, 또 지금은 많은 중국 관련 여행담이 영상으로 잘 나와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 당시 중국의 사회상황, 유적지와 문화, 인상적인 사건, 그리고 중국여행에 빠질 수 없는 음식에 관한 것 등 되도록 최소한의 엑기스만 추려내어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로 시장을 개방하면서 여러 가지 거부가 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겼습니다.
국가가 가지고 있던 기업에 대한 소유권이 민간기업으로 전환하면서 당연히 공무원이었던 공산당원들에게 경영권이 이전되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외국자본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필요했기에, 투자 조사를 왔다는 저희 일행은 어디서든지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투자유치소의 통역원들 중에는 대학교의 교수 출신들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수도, 의사도 결국 공무원이었기에, 임금이 높지 않아 투자사무소의 통역원이나, 외국회사의 직원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투자를 받으면 정부로부터 인센티브가 나왔고, 또 투자를 받은 회사를 설립하는 과정에 온갖 이권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온갖 부정, 부패가 발생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어느 도시에서는 저희들이 투자조사를 위하여 중국에 왔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시장이 직접 나와 맞이하곤 했는데, 공단을 실사하러 가는 도중 경찰차 2대가 호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큰 원형테이블에 음식이 2층, 3층 접시채 쌓여 적지 않은 음식에 젓가락도 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가 산동성의 어느 한 도시를 갔는데, 그 도시는 인근에 대형 유전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던 도시였습니다.
문제는 유전이 발견된 땅은 국가 소유인데, 그 유전을 개발하는 권한을 누구에게 사유화해야 하는가였습니다.
역시 공산당원이 그 권리를 독점하였고, 그 도시는 밤마다 사적으로 기름을 얻어가는 유조차들이 줄을 섰다고 합니다.
그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에 갔는데, 식사를 하는 도중 벽의 장식이 이상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종업원에게 물었더니 그것은 벽이 아니라 단추를 누르면 내려오는 침대였습니다.
한 식당에서 밥을 같이 먹어 주는 종업원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 벽침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먼 훗날 시진핑이 정권의 핵심부에서 밀려나 오랜 생활을 와신상담한 후 여 마침내 정권을 잡았을 때, 이 시절 만연해있던 비리 고위공무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으로 인민들의 열열한 지지를 얻고 장기집권의 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이것은 또한 정적이었던 기존 기득권세력들을 일시에 소탕하여 몰아내는 전략이기도 하였습니다.)
반면에 일반 서민들은 그 극변의 세월을 몸으로 부딪쳐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안정적인 공기업에서 사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해고되어 쫓겨난 노동자들이 관공서 앞에서 데모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였고, 구조조정으로 말미암아 치솟은 실업률 때문에, 식당에서는 많은 종업원들을 저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어 어느 곳에선 각 테이블마다 종업원들이 한 명씩 붙어서 서빙하곤 했습니다.
당연히 도시로 몰려든 수많은 여성들이 음지에서 몸을 파는 경우가 많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산간벽지의 옥수수산지부터 대도시까지 발품을 팔았기에, 여전히 앞이 트인 공중화장실이 빈번해 있던 시골과 일찍부터 해외자본을 끌어들여 선진국 어느 도시 못지않게 개발된 대련과 청도, 그리고 상해의 고층건물들을 오고 가며 농촌과 도시의 심각한 빈부격차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 편에는 제가 경험한 중국에 대한 여러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들 중에서, 제가 만난 한 여성 농민의 이야기를 첫 번째 에피소드로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