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귀환 그 이후, 나의 직장생활 28년 (7)

신입대리 중국을 누비다(3)

by 리본안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마가복음 8장 3절)


"厕所在哪(儿)? 처스이 자이 나아?"

중국 여행은 중국지사의 H대리가 통역이자 가이드를 맡아 상대방에게 전화로 연락을 하여 약속이 정해지면 이동하여 방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택시로 이동하는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세 번째 여행 여정의 주요 방문지인 산동성은 중국에서도 음식과 사람들의 성향면에서 한국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고, 산동인들은 정직하고 성실하여 중국 내에서도 신뢰를 얻는 사람들입니다.

(그도 그럴 듯이 여기서는 어떤 택시기사를 불러도 그들은 동일한 요금을 불렀는데 이 지역 외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가격이 달라 타기 전 항상 협상을 해야 했고, 어떤 지역에서는 가는 도중 가격을 올리는 바람에 중간에 내리겠다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 약속 장소에 도착하였지만, 아직 약속시간이 남아서 저는 할 일이 없어 중국어 교재를 꺼내어 소리 내어 읽으며 중국어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같이 기다리고 있던 택시기사가 갑자기 제가 하는 발음이 틀렸다며 (중국의 성조는 듣지 않으면 따라 하기 참 어렵지요) 자신을 따라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발음에 잔뜩 신경 쓰며 따라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H대리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득키득 웃는 겁니다.

"왜요? 제 발음이 이상한가요?"

"아니에요. 요즘 중국에서는 '처스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요. 그건 한국말로 '측간'이라는 말인데, 한국에서도 노인들이나 쓰지 요즘 사람들은 쓰지 않잖아요? 거기에다가 이 아저씨가 산동사투리가 아주 심한데, 그 사투리까지 대리님이 따라 하시니 너무 웃겨서..."

(우리로 치자면 종로 한복판에서 외국인이 "여기 측간이 어디 있는교?" 라고 물어보는 격이었습니다.)


이렇듯 사람 좋은 산동성의 시골마을에서 겪은 일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의 조사 품목에는 식품원재료에 관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가장 생산량이 많고 대량으로 유통되는 옥수수와는 달리 다른 작물들은 통계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산지 마을로 직접 가서 동사무소나, 통계사무소에 들러 통계자료를 얻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H대기가 겨우 묻고 물어서 방문한 지역 통계청에는 우리가 원하는 자료가 없다고 하고 오히려 우리가 오는 도중 머물렀던 대도시의 통계사무소로 다시 가라고 하는 바람에 우리 모두는 김이 새 버려 터덜터덜 사무소를 나오고 있었습니다.

사무소를 막 나서는 데, 행색이 누추한 한 삼십 대 가량의 젊은 여성이 뒤따라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H대리는 그 여성과 잠시 이야기하더니 이 여성이 우리가 구하는 자료를 찾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을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여성과 함께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로 가는 데, 가는 1시간 동안 동행한 이 여성이 차멀미를 하는 바람에 우리는 차를 번이나 세워야 했습니다.

(나중에 차멀미를 하는 주된 원인이 적당한 영양을 섭취 못한 영양부족 때문이라는 통역의 말을 듣고 멀미를 감수하고까지 차로 안내하는 이 여성의 절실함을 더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결국 택시는 어느 조그마한 건물 앞에 멈추었습니다.

거기에는 한 사십대로 보이는 검소한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나와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정확한 직함은 기억나지 않으나 아마도 농촌 계몽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즘과 같이 막 자본주의체제로 전환하가 시작하는 중국에서 특히 소득이 높은 작물 트렌드를 소개해주고, 농민들에게 그 작물을 기르는 방법도 직접 가르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정을 자세히 듣더니, 자신이 그 대도시의 통계청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고는 전화를 걸어 한참 통화를 하더니, 마침내 우리가 원하는 자료를 확보했으니 내일 오후에 그 통계사무소로 오면, 자신이 먼저 가서 그 자료를 받았다가 직접 건네주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그 도시가 여기에서 차로 2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렇게 수고할 필요는 없고 우리가 가서 직접 받으면 되니 미리 연락만 해줘도 감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외국인이 그 통계사무소에 가서 업무를 보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불편해할 수 있고, 거기에서 막상 자료를 얻으려고 하면 번거로운 절차가 있을 수도 있어 예기치 못한 장애물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자신이 직접 가서 자료를 챙겨서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읍내에서 가장 큰 식당으로 데리고 가더니 음식을 잔뜩 차려서 대접을 하였습니다.

그 큰 원형테이블에 음식이 놓을 데가 없어 2층, 3층 쌓이다 보니, 어느 음식은 손도 대지 못할 정도로 배가 불렀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유명한 자라탕이 나왔는데, 저희들이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더니, H대리에게 은근히 한마디 하였습니다.

그러자 H대리가 웃으며 이 음식은 지금까지 나온 음식 모두를 합친 것보다 비싼 것이고 특히 남자들의 정력에 좋으니 꼭 드셔야 한다라고 통역해 주었습니다.


때아닌 호의에 저의가 감사해하며, 근처 호텔로 돌아오고 있는데, H대리가 택시를 타고 오는 동안 그 젊은 여성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들른 동사무소에 있는 농촌지도소에 와서 앞으로 어떤 작물이 수익이 있을 것인지 문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편에서 외국인들이 공무원들과 뭐라 말하고는 낙담한 듯이 돌아가자 그 담당자들에게 우리가 왜 왔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를 자신의 마을에 있는 그 농촌지도자에게 연결을 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나와서 돌아가는 저희들을 붙잡았고, 멀미를 하면서까지 자신의 마을로 이끌어 간 것입니다.

H대리가 그 정성에 감동하여, 왜 이렇게까지 우리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가라고 물어보았더니 그 여성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답니다.

“ 이분들이 우리나라에 투자를 하기 위하여 왔으니 도와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나라에 투자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러다 혹시 우리 마을에게도 인연이 미쳐 일자리가 생길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나에게도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겠습니까?”


다음날 아침 택시를 타고 그 대도시로 갔을 때, 그 농촌지도사는 통계사무소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약속한 것처럼 우리가 필요하는 통계자료 복사본을 건네주었습니다.

그 당시 중국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서민은 서민대로, 그리고 특히 권력에 상층부에 있지 않은 일선 공무원들은 공무원대로 잘 살기 위해, 그리고 자신에게도 돌아올지 모르는 돈 버는 기회를 붙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가 먹을 것에 있지 않다고 하셨지만,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든 자들을 고치신 후 굶주린 군중들을 차마 보지 못하시고 무언가를 준비하십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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