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대리 중국을 누비다(5)- 명분을 중시하는 우리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요한복음 6장 12절)
산동성 이 업체를 방문한 때, 우리는 옥수수의 주산지인 동북 3성 (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을 다 돌았고, 우리 여행은 어느덧 중반부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중국여행 첫머리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옥수수 산지의 남방한계선인 산동성에서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산동성에는 옥수수를 가공하여 전분과 물엿을 만드는 회사 중 가장 활발한 매출을 하고 있는 회사가 있었고, 그 회사의 매출라인에는 비교적 선진기술을 필요로 하는 제품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만약에 중국에 합자회사를 세워야 한다면 이 진취적인 회사를 파트너 1순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산동성에 들렀을 때 바로 이 회사에 연락을 했는데, 우리는 이 회사 사장님으로부터 친구라고 불리며 열렬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미팅자리에서 H대리가 우리들의 출장목적이 단순히 옥수수 산지를 조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중국에 옥수수 가공공장을 지을 경우 어디에 짓는 것이 가장 경제적으로 유리할까, 입지 조사도 하려 왔다고 하자 그 사장은 '이거야 말로 정말 광대한 과제다'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는 잠시 뜸을 들인 다음 넌지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 그래 그럼 친구여, 그대들이 생각하기에 옥수수를 가공하는 공장의 최적의 입지를 갖춘 지역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바로...."
상대방이 한껏 추켜세우니 평소 차분하셨던 이사님의 얼굴은 상기되었고, 이사님이 그간의 조사내용의 결론을 막 오픈하시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귀사가 있는 이 산동성이 가장 적임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급한 마음에 무례를 무릅쓰고 얼른 이사님의 말을 끊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이사님도 아차 싶으셨는지 바로 입을 다무셨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렸습니다.
그 사장은 이내 껄껄 웃으며 H대리에게 한마디 하고는 '자 성대한 저녁식사가 준비되었으니 이제 자리를 옮기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소지품을 챙기고 그 사장의 인도를 따라 회사 옆에 있는 별관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때 H대리가 이사님을 앞에 세워 가시도록 하고는 뒤에서 저에게로 다가오면서 그 사장님이 무엇이라 말했는지 들려주었습니다.
"젊은 사람이 명민(明敏)하다."
(그 말을 듣고 우쭐할 수 없었던 것은 그래봐야 우리는 대여섯 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 그는 자수성가한 사장이고 나는 월급쟁이에 불과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잠깐,
여러분들은 중국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이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힌트를 드리면 그 인물은 삼국지 속의 인물입니다.
유비라고요?
아니면 조조일까요?
아닙니다.
정답은 관우입니다.
관우는 역사 속 실제 인물이지만 많은 중국인들로부터 추앙을 받아 신으로 격상되어 모셔지고 있었습니다.
중국을 다니면서 고찰이나 유적지 혹은 조그만 사당이나 민가에서 신으로 모시는 관우상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관우일까요? 그 용맹 때문에?
그러나 삼국지를 좀 읽어보신 분들은 여포가 관우, 장비, 유비와 함께 대응하게 싸웠으니 용맹으로 치면 관우보다 한 수 위고, 상산의 조자룡 또한 무예가 출중하며, 관우가 어이없는 죽음으로 생을 일찍 마감한 것에 비하면 조자룡은 말년까지 용맹스러운 무장으로서 더욱 큰 명성을 떨쳤기에 무용에서는 한 수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비즈니스를 하지 말라'
삼국지 속의 인물들은 승리를 위하여 서로를 속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며, 제갈량은 죽어서까지 산 사마중달을 속여서 중국 역사상 최고의 책략가로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현재에서도 중국 최고의 술 중에 하나인 마오타이는 공항에서 사는 것도 믿을 수 없고, 오직 공산당 간부가 뇌물로 바치는 술만 믿을 수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게 당연시되는 게 그 당시 제가 들은 중국의 문화였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유비와 맺었던 도원결의를 일편단심 실행하며, 당대의 최고 실세였던 조조의 애달픈 사모곡에도 불구하고 다섯 관문을 통과하며 여섯 장수의 목을 베며 유비를 찾아가는 관우의 모습은 비장함을 넘어 고결하기까지 합니다.
그 당시 유비는 입신출세하지 못하여 변방의 촌놈에 불과하였기에, 관우의 이러한 행동들은 당시 대세였던 조조를 섬겼던 장수들과 모사들에게 낯선 이질감을 느끼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남는 것이 더 큰 상책이라 생각하여 아들을 사지에 두고 홀로 도망치기도 했었던 실리의 대명사 조조가 자신의 장수들을 베어가며 자신에게서 멀어져 간 관우를 여전히 감싸고 도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결핍함을 채워주는 존재에 대한 조조의 찐한 갈급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오랜 역사기간 동안 중국인들은 이익만 탐하는 자신들의 속세의 삶을 돌아보면서, 평생 의를 위하여 살아간 관우에게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신성을 발견하고 신으로서 숭상하여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그들의 실익 우선주의에 비해 우리는 어떠한가요?
한참 중국을 들락날락거릴 때 즈음 저의 절친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의 장례식이 있었던 곳은 경북 안동이었습니다.
안동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 보니 유서 깊어 보이는 한옥지붕들이 보였습니다.
장례식이 있는 집은 초롱이 밝혀져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귀에 익은 찬송소리가 들려 나오는 것입니다!
상주였던 제 친구가 기독교인이라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집으로 들어가 보니, 한옥의 마루 위에서 예닐곱명의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목사님의 주도로 찬송을 부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내 내 눈에 확 들어온 것은 마당에 깔린 멍석 위와 사랑방 부엌 등에서 유교식 베옷을 입거나 한복에 갓을 쓰신 어르신들이 부산히 움직이고 손님맞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베옷을 입은 친구와 역시 베옷을 입은 나의 멘토이었던 교회 선배(그 친구의 여동생과 결혼한 형)가 저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저는 장소가 멀기도 하였고, 또 가장 친한 친구였기에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발인하는 모든 과정을 함께 하였습니다.
본의 아니게 전통 양반가문의 집성촌에서 기독교인 상주가 있는 장례식을 지켜보게 된 것입니다.
관이 들려지고 집을 떠나 묘로 향하고, 묫자리에 놓이고, 묻히는 모든 과정들에 엄격한 유교적 절차가 지켜졌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과정에 역시 질세라 목사님을 위시한 기독교인들의 찬송과 기도의 순서가 별도로 꼬박꼬박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문중의 어르신들은 상주를 위하여 뒤로 물러나 기독교예식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상주의 손님들의 예배가 끝나면 다시 관을 둘러싸고 유교식 절차를 수행하니, 매 단계마다 두 번의 예식이 번갈아 교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장례식은 제가 본 가장 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사회에 이익을 주는 경제활동도 아닌, 망자를 보내는 예식에 이처럼 비효율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장례식에서 저는 우리가 얼마나 형식(명분)을 중요시하는 민족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례식 절차를 끝까지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서로 싫은 내색 없이 관대한 마음으로 서로의 명분을 존중해 주는 두 종교들의 배려심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명분을 중요시하는 우리의 민족성이 유교를 창시한 나라였지만 유교의 흔적조차 사라져 버린 중국에 비해 유교적 사고와 문화가 여전히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현대의 한국을 있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뿐입니까?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 비해 우리는 여전히 불교를 숭상하며 휘황찬란한 많은 불교문화유산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세계에 파견하는 기독교 강국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세 가지 종교의 강국이면서도 우리는 서로의 다른 종교로 인하여 전쟁은커녕 사소한 주먹다짐도 사회화적으로 이슈화되지 않는 서로에 대한 배려심이 남다른 민족입니다.
다만 방대한 중국 여행을 경험하면서 상대적으로 이러한 명분을 중요시하는 우리의 민족성이 대비되면서, 우리나라에 실용주의가 보다 많이 퍼져가 명분과 실리가 균형이 잘 잡혔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굶주린 자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사 많은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찬사에 취한 제자들에게 남은 떡과 물고기를 챙기라고 하셨습니다.
명분(하나님 나라)을 위해 사셨지만 현실(빵)을 알뜰히 챙기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새삼 눈에 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