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더 나은 삶을 위해

by 투싼박


높은 곳에서 본다는 것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식민지 시절을 보내다 독립하여 정지 발전과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다. 기초적인 물적 토대 없이 이 정도로 발전을 이룬다는 것은 자부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어딘가 표류 중이다.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은 채 방황 중이다.


일본제국주의에 의하여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통치를 35년간을 당했다. 연합군에 대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통해 우리는 해방의 기쁨을 맞이하는 것도 잠시 이념 갈등에 의해 분리된 나라는 다시 전쟁에 의한 큰 혼란에 휩쓸린다. 전란 후 우리나라 민족 특유의 성실함과 단합력으로 산업화를 이루었으며 여기에 정치적 큰 도약인 민주화까지 이룰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주로 택했던 방법은 '따라 하기'였다. 물론 이 방법은 우리나라 특유의 민족성과 함께 결부되어 굉장한 속도와 효율성을 만들어 냈고 지금까지 이룬 번영과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선도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 일류가 되어야 하는 데 그다음 과정을 생각해 내지 못하고 있다. 일등이 되기 위해 따라 하고 외우고 대답하는 것에만 집중해 왔기 때문에 질문하고 생각해 내지 못하고 있다. 일류가 되는 방법을 모른다.


이 책에서는 선도하는 나라를 되기 위해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기'를 말한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사용되는 '무시하다'라는 의미의 '내려다본다'가 아니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인 데 '높은 곳'이라는 것은 시선의 높이를 말한다. 시선의 높이를 지적차원의 개념으로 설명하며 더 높은 차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아야 우리의 본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고 그에 맞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절대 자신의 높이 이상의 것을 할 수가 없는데 국가의 일 역시도 대개 권력을 가진 자들의 시선의 높이에 따라 결정된다. 때문에 더 나은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면 나라를 운영하는 자들이 시선의 높이를 계속해서 올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하는 데, 그렇다면 현재 작가가 생각하는 현재 우리나라의 시선의 높이는 어디일까? 또 시선의 높이가 있다는 것은 아래와 위가 있다는 것인데 무엇이 그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일까?



4801197434908.jpg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북루덴스, 2021년 06월 21일 출간


선진국이란?

인간이 건설하는 문명의 세계는 세 층으로 되어 있다. 첫째 층은 구제적이고 현상적인 것들 즉 물건이나 상품에 해당된다. 대포, 군함, 휴대전화, 컴퓨터, 자동차 등이 해당된다. 한 단계 더 높은 둘째 층은 시스템이며 공화제, 민주제, 시장, 학교, 도시 같은 것들이다. 가장 높은 셋째 층은 추상적인 형식으로 존재하며, 문화, 신뢰, 배려, 철학, 예술 등이 여기에 속한다.


나라를 관리하는 중심적인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대강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층에 해당하면 후진국, 둘째 층에 해당하면 중진국, 그리고 셋째 층에 둔다면 선진국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건국 후 산업화-민주화를 거치며 둘째 층까지 올라서는 데에 성공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농사 밖에 모르던 국민들과 함께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산업화를 이루어냈다. 그 후 군부 권위주의를 밀어내고 민주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하지만 그 시선이 그다음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산업화를 통해 첫째 층의 물건과 제품으로 기반을 쌓았으며 민주화를 통해 둘째 층의 시스템을 갖추는 데 성공하였지 셋째 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다음 단계를 밟지 못하고 있다.


작가는 정치의 신뢰하락에 대해 우려한다. 신뢰는 셋째 층에 있는 것으로 가장 중요하고 강하다. 공자가 그의 제자 자공이 정치의 요체를 물을 때 '신뢰'를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뽑았다. 정치는 말로 피우는 꽃이다. 말이 곧 정치라고 할 수 있다. 거짓으로 나라를 망칠 수 있다. 화폐 역시 신뢰를 기반으로 하며 신뢰가 없는 화폐는 유통이 되지 않아 경제가 죽는다. 이는 교육이나 행정도 같다. 신뢰의 '신(信)' 자가 사람(人)과 말(言)의 일치로 되어 있는 것에 깊은 함축이 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믿을 수 없고, 믿음을 상실한 정책이 효과를 내기 어렵다. 때문에 가장 먼저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을 말한다.


또한 종속성을 버리고 나아가자고 제시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는 과거에 이룬 것들을 중심으로 파가 나뉘어 서로 본인들의 주장을 하는 중이다. 과거를 들고 와 서로 견주어 보며 서로 '맞다, '틀리다'를 결정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런 과거에서 오는 종속성에서 나와야 한다. 종속성에서 오는 특성은 사유나 생각을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외부의 것을 그대로 수용하여 외부의 것을 그대로 집행한 후, 스스로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 사는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외부의 결정에 의해 행동하는 것을 스스로는 주체적인 판단으로 행동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지식을 생산해 내기보다는 생산된 지식을 수입해서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으로 착각한다. 이제는 종속성에서 빠져나와 진화와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불편함이 동반된다. 이미 이룬 과거에 누어 편안함을 느끼기보다는 이 불편함과 함께 당장 일어나 미래를 향해 길을 나서야 한다. 이때 우리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진화는 용기로 빚어진다. 용기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감행하는 행위로 따라서 곰곰이 생각을 할 수 있어야만 가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는 매우 지적인 활동이다.



그리고 나

나라를 분류했던 개념을 역시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현재 본인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따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속에서는 우리나라가 더 나아가기 위해 셋째 층의 철학적인 가치에 대해 집중을 많이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첫째와 둘째 층을 이루는 것들이 절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나라에도 그리고 개인에게도 최소한의 경제력과 시스템들이 뒷받침이 되어야 그다음의 단계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바는 개인에게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기반 위에 자신만의 철학이자 방향성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먹고 살기만으로도 힘이 드는 데 언제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불가의 용어 중에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는 말이 있다. 위로는 지혜인 보리 즉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이다. 위와 아래를 나누어 말하지만 먼저 깨달음을 구하고 그다음으로 아래 중생을 구제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깨달음을 구하는 것과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양쪽의 날개와 같은 것으로 이 둘 중 한쪽으로만 정진한다면 날 수 없다. 진리의 길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본인만의 철학을 세워 함께 실천하는 것도 역시나 당장의 먹을 것만큼이나 중요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 제자 아난다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어 제자들이 가르침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을 염려하여 이에 대해 묻자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하셨다고 한다. 이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제자들이 부처님의 말과 행적을 절대적으로 여기며 제자들이 수행을 그르칠 수 있기에 하신 말씀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끝없는 유혹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마치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라고 말했던 산티아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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