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도 무거운 인생
우리의 인생은 반복되지 않으며 한 번의 기회만이 주어진다. 따라서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옳았는지 혹은 틀렸는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우리의 인생이 반복이 된다면 후생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사건에 대해 전생에 했던 결정에 의한 결과를 생각해 보며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선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다음이 기약이 되어 있지 않은 직선적인 인생을 살면서 단 한 번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것은 단 한번 무대에 올라 최선의 연극을 펼치는 연기자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만 할 수 있다는 것은 없었던 것과 같다. 우리는 단지 주어진 사건들에서 선택하며 나아갈 뿐이다.
이런 삶에서 가볍다는 것과 무겁다는 것의 차이가 있을까?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주인공들은 각자의 인생을 가볍게 혹은 무겁게 살아간다. 본인의 연애관에서 육체적 정사를 가볍게 스포츠 정도로 여기며 사랑을 하는 토마시, 그런 토마시를 사랑하여 무거운 정조를 지키며 살아가는 테레사, 토마시의 애인 중 한 명으로 어딘가에 얽히는 것을 싫어하며 가벼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비나 그리고 자신의 무거운 철학을 가지고 이행하기 위해 전쟁터에 가기도 했던 프란츠까지 각기 다른 삶을 그려낸 소설이다. 이 책이 쓰이던 시기에는 전체주의가 만연하던 시기로 실제 체코 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운동으로 알려진 프라하의 봄이 이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 속에서 주인공들은 본인들의 생각을 가지고 가볍게 혹은 무겁게 행동하지만 시대적 배경과 인간관계에 의해 이러한 행동들이 다시 무겁게 혹은 가볍게 변하거나 평가받는다.
가볍다는 것과 무겁다는 것이 무엇일까? 이 둘은 무게라는 기준을 가지고 태어난 개념임으로 태생적으로 함께 할 수밖에 없다. 비유를 하자면 밝음과 어둠과 비슷하다. 이 둘 역시 태생적으로 함께 한다. 빛의 양을 두고 많아질수록 밝다고 말할 수 있고 반대로 적어질수록 어둡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절대적으로 밝다 혹은 어둡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밝은 낮에 촛불 하나는 눈에 띄지 않지만 어두운 밤에 촛불 하나는 환하게 우리 눈에 인식되는 것처럼 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빛을 빛으로 보는 것 어둠을 어둠으로 보는 것, 어둠은 빛이 닿지 않아 그늘이 졌을 뿐 존재 자체에 사악함이나 무서움 없이 어두울 뿐이며 빛은 존재 자체에 선함이 없고 밝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 인생을 가볍게 혹은 무겁게 살 수 있을까? 다시 살아볼 수 없는 우리 인생을 돌아보며 가벼웠는지 혹은 무거웠는지 판단 수 없을 것이다. 가볍게 했던 행동이 무거운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고 무거운 행동이 가벼운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무겁게 산다고 한들 무거울 수도 없다. 가볍게 산다고 한들 가벼울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상(相)을 지지 말라'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의 생각에 매몰되면 그 좁은 틀로만 세상을 볼 때 세상의 한 면만 보게 되기 때문에 생각을 열라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내 인생을 가볍게 혹은 무겁게 산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생각에 우리가 갇히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 인생을 제대로 볼 수 없고 즐길 수 없게 된다. 그보다 우리의 인생을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나의 생각이 가벼웠구나 무거웠구나 되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인생이 가벼워지고 다시 무거워지고 하는 것을 파도가 치는 바다를 보는 것처럼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가볍지만은 않은 삶 혹은 무겁지만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