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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와 잘 살기...

제23편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

by 이and왕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


어린 시절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몰랐다.

집은 너무너무 가난하였고 부모는 지긋지긋한 가난 속에서도 하루에 한 번 또는 두 번은 싸웠다. 아니 싸운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일방적인 화풀이 장소였고 가족은 화풀이의 대상이었다.

특히 아버지의 화풀이 대상은 어머니와 나에게 집중되었었다.

나는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어머니는 어머니를 닮은 나를 낳았다는 죄로 거의 매일 살림살이가 엎어지고 손에 잡히는 갖가지의 도구로 매를 맞았다.

우리 형제는 2남 2녀 4형제다.

그중에서 나는 누나가 있는 장남이다.

나를 제외한 누나나 동생들은 공부를 잘한다.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엄청 잘했다.

그에 비해 나는 중상 정도로 어중간했다.

나는 누나나 동생들과는 다르게 예체능에 소질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4년간 육상선수 생활을 하였고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도 입상을 하였지만 아버지는 나의 이러한 재능은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를 하고 학교 성적으로 나를 대했다.

매일 저녁 노동으로 찌든 몸을 막걸리로 달래고 들어오시면 나를 부르신다.

더하기 빼기를 배울 때는 더하기 빼기 문제를 내고, 구구단을 배울 때는 구구단 외우는 것을 물어보고, 곱하기 나누기를 물어보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영어단어를 물어보셨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원하는 답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어린 나는 모르는 것도 물론 있었지만 아버지가 나를 쳐다보는 눈매가 무서웠고 잠시 후 매를 맞을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두려움에 덜덜 떠는 나를 보면 공부도 못하는 것이 무서움도 많다며 매를 찾아 때리기 시작하신다.

당연하게 온 집안이 난리가 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감히 도망갈 생각도 못하고 단지 아버지의 감정에 호소하는 애절한 눈빛을 하며 빌고만 있을 뿐이다.

매를 맞고 흐느끼는 내 울음소리, 자식이 맞는 것을 보고 미여지는 마음에 “00이 아빠 좀만 참지“ 하며 어머니가 말리면 그때부터 살림은 날아다니고 어머니에게로 한풀이가 넘어간다.

나만 맞을 때면 보통은 저녁 11시면 끝났지만 어머니까지 화풀이가 넘어가게 되면 새벽 3시쯤은 되어야 끝이 난다.

참 신기한 것은 새벽 3시까지 고함을 치시고 난리를 치셨지만 6시에 어김없이 일어나서 어머니가 차려주신 아침밥을 드시고는 노동일을 하러 나가신다.

우리한테는 엄하고 호랑이 같은 아버지였지만 약속이나 해야 될 일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하고 책임감도 무척 강하셨던 분이셨다.

그래서였던가 술주정뱅이 아버지였지만 술을 빼면 모든 것이 철저했던 아버지가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들은 무척이나 엄하고 두려우며 한편으로는 존경의 마음도 가지는 존재이셨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잘 나가시던 공무원이셨다가 한순간의 욕심으로 모든 것을 날리고 서울 미아리 산동네로 상경하셨고 시골에 사실 때 농사일도 안 했던 분이 먹고살기 위해 막노동을 하게 되니 자신의 처지나 인생의 서글픔으로 술만 드시면 술주정뱅이로 변하신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보시며 ”옛날에는 화도 안 내셨는데 저런 신세가 되니 저러 신다 “ 하시며 불쌍한 마음으로 이해하며 아버지의 온갖 술주정과 폭력을 참으셨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 지으며 이해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으며 가정의 희로애락을 쥐락펴락하는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두렵고 무섭기만 하였다.

해 질 녘 아버지가 오실 때쯤이 되면 두려움으로 어린 내 가슴은 마구 두근거렸고 온 신경은 아버지가 집수리하며 주워온 철대문 소리에 집중되었다.

”꽝“ 자전거가 철문에 부딪히는 소리... 나는 바로 뛰어나가서 대문을 열어주고 ”아버지 다녀오셨어요 “ 하며 인사를 한다.

”.......“ 간혹 대답이 없다. 그러면 얼굴을 들어 아버지의 상태를 슬쩍 살펴본다. 예사롭지 않은 눈초리다. 아마도 돈을 주고 일을 시킨 주인 네가 잔소리를 많이 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날은 평상시에도 입을 꾹 다물고 계셨지만 더욱 힘을 주어 입을 다물고 눈을 부릅뜬 모습이었다.

<아... 마음속으로 탄성이 나온다> 오늘 또 맞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어렸을 적 즐거움은 있었지만 행복이라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남편이 되었고 아버지가 되었다.

우리 집은 항상 행복하고 아들과 딸은 나를 보면 웃으며 좋아한다.

아내는 내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며 지금은 아들과 딸이 독립하여 생활하지만 언제든 집에 오고 싶어 한다. 특히 힘들 때 힐링하러 집에 오려고 한다.

행복한 집... 오고 싶은 집.. 내 아내가 웃고 있는 집

이러한 집이 내가 어렸을 적부터 꿈꾸어 오던 그런 행복한 집이다.

이런 행복한 집이 나의 집이 되었다.


나는 술을 좋아하고 무진장 많이 마셨다.(몇년전부터 소주는 끊고 간간히 와인만 마신다)

하지만 술로 인한 난폭함과 이기성, 잡스러움을 알기에 술에 취해도 평상심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아내는 이러한 나를 좋아하고 함께 술 한잔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어렸을 적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가정의 불행“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랐다.

책이나 방송의 교양 프로그램에서 가정 상담을 하는 것을 보면 아버지의 ”주정뱅이“와 ”가정의 폭력성“은 대물림이 된다고 하는 무시무시한 내용을 종종 보고 읽었었다.

그때마다 나는 무척 두려웠다.

혹시 내가?......

다행스럽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에게는 대물림이 없었다.

젊었을 적 나의 술 마시는 모습을 보며 ”부모님으로부터 술을 잘 배웠네 “하는 말을 어디서나 들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후배들이나 아랫 직원들 그리고 내 아내와 아들, 딸로부터 ”당신은 술을 같이 마시고 싶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나는 행복하고 싶다. 그리고 내 아내도 행복한 것을 좋아한다.

나는 어릴 적 아버지의 과오를 보았고 몸으로 느꼈다.

아버지의 감정에 따라 집의 분위기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모든 아버지는 가정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나는 그러한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고 나의 위치가 어디에 있어야 되는지를 또한 알고 있다.

나의 위치는 ”행복“의 위치이다.

그리고 옆에는 행복해하는 아내와 아들, 딸이 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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