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봄날이 오면 나는 종종 쑥을 캐러 갔었다.
나는 어릴 때 왈패끼가 다분하여 몸으로 움직이며 노는 것을 좋아했으면서도 이상하게 쑥이라던가 나물 등을 채집하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특히 쑥을 캐는 것을 좋아했었다.
주로 같이 가는 대상은 우리 윗집에 사는 숙자 누나하고 숙자 누나네 옆집에 사는 혜경이 누나랑 다녔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두 누나가 쑥을 캐러 간다고 하면 나도 캐러 간다고 졸라서 따라가는 입장이었다.
친구들은 바구니를 들고 누나들을 졸졸 쫓아다니는 나를 보고 “얼레리 꼴 래리 남자가 고추 떨어진데요” 하며 놀려대지만 언제나 그들을 쥐어박는 싸움 대장이었던 나는 그다지 부끄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어머니는 전라도 분답게 음식 솜씨가 무척 좋으셨다.
특히 쌀뜨물을 이용해서 쑥국을 끓여 주시면 향긋한 쑥 내음과 쌀뜨물의 고소함이 어울려진 맛에 이끌려 앉은자리에서 두어 그릇은 먹어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고는 하였다.
그리고 쑥과 밀가루를 버무려서 쑥 범벅을 만들어 설탕이나 간장에 찍어 먹으면 쫀득한 밀가루와 질겅 씹히는 쑥이 어울려지는 식감은 어쩌면 그리 좋은지 그리고 쑥에서 나오는 향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가지게 하였다.
어릴 적 무엇이든 넉넉지 못했던 생활 특히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 쑥을 절구로 곱게 찌어서 밀가루와 버무려 개떡을 만들던가 시나당 가루를 휘휘 뿌리고 곱게 빤 쑥을 넣어서 버무린 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서 발효를 시켜 들통에 찌면 정말 맛있는 쑥 술빵이 만들어졌다.
이런 고급스러운 식재료를 얻기 위해 행하는 쑥을 캐는 일은 나에게는 조금 있으면 벌어질 향연을 느낄 수 있는 중간 단계의 과정처럼 여겨지며 언제나 즐거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쑥을 뜯으러 간다고 하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무척 혼이 났었던 기억이다.
그래서 쑥을 뜯으러 갈 때는 어머니 몰래 갔었고 내가 뜯은 쑥은 숙자 누나가 혹은 혜경이 누나가 주었다며 어머니에게 내밀고는 했었다.
쑥을 뜯으러 가는 곳은 나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즐거운 행복감을 준다.
쑥을 뜯으러 가는 곳은 보통 동네 어귀보다는 좀 더 멀리 떨어진 정릉 근방의 청수장 쪽으로 갔었다.
청수장은 지금도 맑은 시냇물이 흐르지만 그때만 해도 수량이 제법 풍부하게 흘러서 미아리나 정릉에 사는 사람들의 여름 피서지 역할을 톡톡히 했던 곳이다.
어린 쑥이 나올 때쯤 벚나무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게 되는데 때마침 건듯건듯 부는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하얀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그 밑을 지나다가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면 파란 하늘과 어울려진 무수히 많은 힌 꽃망울들로 꽉 차게 보였었다.
벚나무 밑으로 작은 오솔길이 있고 길옆의 개천을 통통거리며 지나면 작은 둔덕이 나오는 데 이곳이 쑥이 지천으로 자라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쑥밭이다.
한참 쑥을 캐다가 다리가 저려서 살짝 일어서면 온 세상은 마치 꿈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풍경이 펼쳐진다.
봄 보따리를 슬쩍 풀어놓아 따스해진 햇빛이 온몸을 감싸고 연녹색의 새순들이 가지마다 올라와서 흔들거리며 앞쪽 산에는 벚나무들이 힌 꽃잎을 바람에 실어 날리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을 마주하게 된다.
어린 마음에도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에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행복한 느낌 속에 눈물을 찔끔이고는 하였던 기억이다.
문득 내가 쑥 내음을 좋아하게 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 속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어릴 적 쑥을 도루코 칼로 밑동을 쓱 – 잘라서 탈탈 털면 흙 내음을 살짝 밀치며 맡아지던 쑥 내음... 그리고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포개어지며 쑥의 내음이 행복한 내음으로 향으로 자리를 잡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런가 지금도 쑥을 뚝 – 뜯어서 코에 가져다 되면 아스라한 기억의 쑥 내음이 맡아지며 연녹색의 새순과 하얀 벚나무 꽃, 따스한 햇살이 눈앞에 펼쳐지며 한없는 행복함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