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분들의 은퇴에 대한 연구를 하며, 학회에 발표를 하러 갔을 때, 다른 교수님들께 받았던 질문을 기억합니다.
“아니 선수들은 현역 때 누구보다 돈을 잘 벌고 꿈을 이뤘는데, 도대체 은퇴 후에 무슨 문제가 있길래, 그렇게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영어로 발표하는 게 너무나 긴장되는 시절이기도 하고 (지금도 여전히 긴장되지만), 다른 학자분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다소 두려워 쫄았던 시기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략 그런 질문내용이었습니다.
아니, 스포츠분야에 고민해야 할 문제가 이렇게나 많은데 성공한 선수들의 제2의 삶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저를 공격하려고 하셨던 질문은 분명히 아니었고, 정말 궁금해하시는 눈치셨습니다. 그때 당황한 저의 대답도,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으나,
“선수시절 유명했고, 사회적 성공을 거둔 선수분들이 시든, 그렇지 못하신 분들이 시든, 분명 인생의 큰 변화 앞에서 역경을 겪는 건, 피할 수 없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선수’라는 정체성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분명하게 저의 의사가 잘 전달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모든 선수가 메시, 호날두는 아니에요. 그리고 메시, 호날두도 <축구선수>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었을 때, 그분들은 그분들의 명성만큼이나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어요!’
라고. 특히나 그분들께서 선수분들의 부와 성공에 초첨을 맞추셨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내가 지금 그때처럼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 ‘
하고 가끔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지금도, 제 대답은 비슷할 것 같습니다.
나의 정. 체. 성.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늘 나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힐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몇 년 생이세요?’
‘그럼 뭐 하세요?’
나이부터 직업까지, 한 큐에 싹 밝혀야 하는 게 당연한 듯 느껴집니다. 그래서 물어보시는 분들의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줄 수 없는 입장에 처했을 때 때론 참담한 순간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유학을 오기 전, 여권을 받으러 가는 길에 탄 택시 안에서, 택시기사님께서 아주 자연스럽게 하셨던 질문과 말씀이 생각납니다.
“아가씨, 시청에는 왜 가요?”
“아, 네, 여권을 찾으러 가는 길이에요.”
“어디 여행 가나 봐요?”
“아니요, 좀 있다가 유학을 가서요.”
“유학이요? 몇 살이신데?”
“서른 살 됐어요.”
“결혼은 했고?”
“아니요.”
“아이고, 결혼부터 해야지. 유학 가기엔 좀 늦지 않았나”
“좀 늦었죠. 하하하”
“부모님께서 걱정이 많으시겠네….”
기사님께서는 진심으로 저희 부모님을 걱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다행이었던 건, 저희 부모님은 그런 걱정은 전혀 안 하시는 분들이셨습니다. ‘그래 가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잘해보렴’, 이라고 격려해 주셨지요. 그래서인지, 기사님의 압박질문세례에도 타격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에 사신다면 선수분들께서도 이런 질문들을 피하실 수는 없겠지요.
‘운동선수예요.’
‘우와 어쩐지 피지컬이 남다르시더라.’
현역생활을 하시면서 선수분들께서는 자신을 운동선수라고 정의하십니다. 사실이 그러하니까요. 그런데, 선수생활을 끝마치셨을 때, 그런 질문을 받게 된다면 – 물론 모든 분들이 그러실 거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 멈칫하시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이제 뭐라고 해야 하지?’
‘(전) 수영선수라고 해야 하나?’
‘취준생이라고 해야 하나?’
‘그냥 운동한 건 말하지 말자.’
‘그럼 이 나이까지 뭐 했다고 하지?’
한국 선수분들 뿐만 아니라 다른 국적의 많은 현역 선수분들, 은퇴한 선수분들을 인터뷰하면서 관찰한 내용을 다소 짧게 요약해서 표현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어쩌면, 정말 원론적인 질문에, 콱, 막히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