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터카 유리창은 박살, 마음엔 구멍/23년8월24일(목

by 강민수

어제저녁부터 그렇게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히 사라진 화창한 아침이 밝았다.

시장 몇 곳과 한국식품점 그리고 시내를 한번 둘러볼 생각으로 출발했다.

재래시장이라고 소개한 곳으로 갔는데 예전에 공장으로 사용하던 장소 같은 데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입구에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아프리카 작고 네모난 그네였다.

좀 딱딱했지만 앉으니 온몸을 감싸는 느낌이 해먹 같았다.

1인용인 듯한데 벼리와 같이 끼어 앉아 앞 뒤로 왔다 갔다 빙글빙글 회전하는 그네를 탔다.

"깔깔 낄낄.. 재밌다."

벼리는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많아 동심의 세계를 좋아하고 재미있어한다.

나와 다른 점이지만 벼리가 좋아하니 덩달아 좋다.

많이 타고 싶어 하지만 내려야 하느니라.

액세서리, 의류, 공예품 파는 가게 등이 있었고 나머지는 식당들이었다.

우리나라보다 대체적으로 비싼 편이었다.

여러 상품들을 실컷 보니 아프리카에 온 게 실감 났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던 중 대형 마트가 보여 들어가 보았다.

다른 마트에 비해 저렴하여 사과, 당근, 레몬, 양파 등 몇 가지를 사고 다시 한국식품점으로 갔다.

한국식품점은 또 다른 대형마트가 있는 상가 2층에 있었다.

여러 가지 우리나라 식품들이 진열되어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쭉 둘러본 뒤 몇 가지 살 거리를 정해놓고 바로 옆에 있는 한국음식점이 운영 중이라 먹으러 갔다.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으려고 메뉴판을 달라고 하니 지금은 아니란다.

예쁘장한 한국 아가씨가 낮에는 카페로, 저녁에는 메뉴판 대로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된장과 깍두기 김치, 파와 간장을 사가지고 나왔다.

오늘 저녁 메뉴는 밥에 된장국과 여러 가지다.

시내에 있는 캐슬오브굿호프라는 성으로 갔다.

성의 위치는 중앙역 부근에 있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려고 들어서니 입구에서 주차비를 받았다.

현지 돈이 없어 카드를 내미니 현금만 받는다고 해서 차를 돌렸다.

성에서 조금 떨어진 길가의 주차라인에 주차를 했다.

10여 대가량의 승용차와 버스 두 대가 있었는데 우리는 끝머리쯤 자가용 뒤 버스 앞에 세웠다.

주차한 곳의 인도 옆에 그리고 성 바로 뒤에 비닐 움막에 살고 있는 빈민촌 같은 공동체가 있었다.

약 여덟 채 정도였지 싶다.

눈 뜨고 못 볼 정도의 가난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빈민촌은 사거리 모퉁이에 있었는데 맞은편에는 버스정류장, 대각선에는 중앙역인데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로의 반대쪽은 말 그대로 번화가다.

빈민가를 지나는데 너무 불쌍했다.

텐트도 아니고 다 떨어져서 너덜거리는 비닐을 지붕 삼아 기어 들어가고 나왔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사는 형편이 달라도 너무 다르니...

양극화가 너무 심하여 남아공이 범죄율이 높다고 했다.

남아공의 성으로 들어가는 데는 입장료가 있었다.

비싸지는 않았는데 옷 속에 둔 지갑을 차에 두고 와서 못 들어갔다.

지갑을 가지러 차에 갈까 말까 망설이다 성에 들어가지 않기로 하고 그냥 지나쳤다.

성 입구 부근을 구경하다가 버스터미널과 중앙역이 있어 그쪽으로 건너가 현지인들의 생활도 보고 캐리어 가방 가격도 알아보았다.

이곳저곳 여러 곳을 활보하고 다녔다.

1시간 조금 지난 뒤에 차로 돌아갔는데 아뿔싸!!!

차량 유리창이 산산조각으로 박살 나고 차 안에 있던 나의 패딩과 어깨에 메고 다니며 애지중지하던 벼리의 가방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지갑이 없어져 버렸다.

차 안은 깨어진 유리창 조각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망연자실. 간이 덜컥. 콩닥콩닥...

사태 수습이 급선무인데 멍하니 있었다.

정신 차려 생각해 보니 지갑 속에는 신용카드 3장, 국내운전면허증, 주민등록증, 국내유심카드, 트레블 월렛카드 1장 그리고 유럽에서 사용하고 남은 유로화와 이집트 화폐가 있었던 것 같다.

약 100유로 정도일까?

외국에서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눈에 보이게 차 안에 짐을 두고 내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철저하게 지켰다.

근데 오늘은 잠시 깜박했던 것 같다.

우리의 불찰이고 실수이며 방심한 탓에 일어난 일이다.

지갑을 차에서 안 가지고 온 사실을 성 입구에서 알고서도 우리 둘은 무심했다.

다른 때 같으면 "차에 지갑을 두면 어떡해요?" 벼리가 난리를 치고도 남았을 텐데 아무 말도 없었다.

나 역시 차에 두는 법이 없는데 말이다.

남의 일인 양 예사로 생각했다.

뭔가에 씌었나 보다.

분실카드를 즉시 한국에 있는 큰 딸에게 연락해서 정지를 시켰다.

우리가 오기 전부터 두 사람이 차를 쳐다보며 안타까워하고 서 있었다.

경찰서에 신고를 하라는데 전화도 안 되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우왕좌왕하니 옆에 있던 현지인이 경찰서까지 에스코트해 주었다.

경찰서에 가서 사고접수를 했다.

신고 물품을 꼼꼼하게 묻고 적으며 사고경위를 자세히 적었다.

접수하는데 약 두 시간이 흘렀는데 아프리카를 떠나가기 전에 찾을지, 시일이 걸려도 메일로 연락이 올 지도 모르는 미지수만 안고 경찰서를 나왔다.

어떠한 조치를 해줄 것 같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숙소 열쇠도 가져가 버려서 집주인에게 연락해서 예비용 숙소열쇠를 배달 우버오토바이를 통해서 다시 받기로 했다.

렌터카회사로 찾아가서 경찰서에서 발급해 준 사고접수증으로 새로운 자동차를 받았다.

보험으로 처리가 된다고 했다.

일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신용카드와 트레블 월렛으로 현금 인출을 몇 번 시도하는 메시지가 나의 휴대폰으로 왔다.

삼성카드사로 46달러의 물품을 구매했다는 메시지도 왔다.

즉시 삼성카드사에서 외국에서 썼는지 연락 달라는 문자도 왔다.

혼이 나갔는지 카드사의 메시지도 예사로 생각했고 답도 안 했으며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었다.

다음날 큰 딸이 카톡을 보냈다.

"삼성카드도 정지시킬까요?"

"그래."

'아차, 삼성카드가 있는 줄도 몰랐네.'

'이런 일을 당하니 당황스러웠구나.'

다른 큰 일에 비하기로 했다.

강도나 총기사고도 많다는데...

빈민가 주변이었으니 아마 그들 중 한 사람이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사람인지라...

가난한 사람이거나 배고픈 사람이라면 잘 썼으면 좋겠다.

도움이 된다면 우리는 괜찮다.

우린 많이 놀랐지만 시간이 지나면 안정될 테니까...

아무튼 이번 사고를 계기로 좀 더 정신을 차리고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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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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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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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된장과 깍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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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에서 통밀빵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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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오브굿호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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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주변 노숙자들 주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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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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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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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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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경찰의 사건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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