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는 올해로 44살 전업주부다. 반도체 학과 대학원까지 졸업한 나름 고학력자이다. 그녀의 인생은 직업군인인 남편을 만나면서 경단녀의 길로 들어섰다. 결혼 17년 동안 평균 2년에 한번 꼴로 이사를 해야만 했고, 그 사이 아이도 셋이나 낳았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시간 여유가 생긴 그녀는 다시 일을 시작하고 싶다.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예나 지금이나 다섯 식구가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돈은 점점 더 많이 들고 남편의 월급은 점점 적게만 느껴진다.
현주는 일하기로 결심한다. 사춘기의 자녀들은 엄마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고, 남편도 은근 일하라는 눈치다. 이곳저곳 이력서를 넣어보지만,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은 없다. 몇 달 동안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력서를 넣어보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이제 그만하자. 나를 누가 뽑아주겠어. 식당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식당? 밥하고, 설거지하고?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난다. 17년 동안 다섯 식구의 끼니를 챙기느라 여느 식당 주인 못지않게 밥을 해댔다. 밖에서도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건 너무 끔찍했다.
구직을 체념을 했을 때쯤, 작은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경리직으로 넣은 곳이다. 다음날 오전 10시에 면접을 오라고 한다. 현주는 면접 프리패스상이다. 175㎝의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이쁘장한 얼굴이다. 거기에 나긋하고 신뢰감 넘치는 목소리까지 장착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대학원까지 나왔지만, 남편을 따라 경기도와 강원도, 서울 등지를 다니며 사투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느새 멀끔한 표준어 구사자가 되었다.
허름하고 오래된 건물의 문을 조심스레 열고 고개를 들이민다. 한눈에 들어오는 좁은 사무실에 다닥다닥 붙은 책상들. 각자 책상에 코를 박고 서류를 뒤지고 있는 다섯 명의 직원들.
“저~ ”
“누구? 아~ 면접 보러 오셨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내 목소리에 고개를 든 나이가 있어 보이는 여직원이 말한다.
작은 쇼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현주는 긴장감에 심장은 쿵쾅거리고 손바닥은 축축하다. 1시간 같은 10분이 흐른 뒤 사장실로 들어가 면접을 본다. 태양광 제품을 파는 작은 회사. 반도체 학과를 나온 현주는 사장과의 대화를 물 흐르듯 이어나가고, 인상 좋고, 멘탈도 강한 것 같다는 칭찬을 듣는다. 기분 좋게 면접을 마치고 나오니, 마치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확답이라도 들은 것처럼 기분이 날아갈 듯 좋다. 부푼 마음 한 구석에 경리 일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비집고 들어왔지만 곧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털어내 버린다. 그러고는 ‘아니야. 내가 애를 셋이나 낳았는데, 뭔들 못하겠어. 배우면 다 할 수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