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 지나도 작은 회사에서는 연락이 안 온다. 으흠…. 떨어졌나 보다.
‘에이, 이럴 줄 알았어. 날 뭘 믿고 뽑아주겠어.’
요 며칠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기분이 들쭉날쭉, 설렘과 희망에 가득 찼다가 실망으로 비워지기를 수차례…. 현주의 마음은 종잡을 수가 없다.
051-***-****
핸드폰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가 찍혀있다.
“여보세요~ 여기는 작은 회사입니다. 며칠 전에 면접을 보고 가셨죠? 혹시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3시간 파트타임 해보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아~ 네. 무슨 일은 하는 건가요?”
“어려운 일은 아니고, 전화 업무에요. 영업은 아니니까 부담가지실 필요 없어요. 내일 나오시면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그리고 시급 만 원입니다.”
‘할까? 말까? 어쩌지? 그래 하루 3만 원이 어디야.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야? 하자!’
현주는 마음을 굳히고
“네. 해볼게요. 내일 1시에 사무실로 가면 되나요?”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뚜뚜뚜뚜….
원하던 자리는 아니었지만, 출근이란 생각에 현주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냥 내가 필요한 존재 같고, 쓸모 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함마저 생긴다.
다시 찾은 사무실. 이제 내 회사라는 생각에 다닥다닥 붙은 책상들이 옹기종기 귀엽다고 느껴진다. 나이가 있는 여직원이 맞이해준다. 특별한 사담 없이 사무실 구석 자리로 현주를 안내하고는 아주 두꺼운 책자와 휴대폰을 가져다준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고 이 책자에 나와 있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여기 적힌 대로 이야기하고 이메일 주소만 받으면 돼요. 그리고 여기 업무일지에 회사명, 이메일 주소, 담당자, 회사 전화번호 적으면 돼요. 간단하죠? 그리고 혹시나 그냥 확 끊어버리면 넘어가고, 필요 없다고 하면 그냥 전화 끊어요. 우리 회사는 제품 사달라고 애원하지 않아요. 필요한 곳에만 팔면 되니깐.”
(안녕하세요. 태양광업체 ****입니다. 태양광 제품이 필요하시면 참고하시라고 이메일로 견적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메일 주소를 불러주세요. 담당자분 성함도 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현주는 이건 영업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음…. 만만치 않겠는걸.’
평소에 자주 카드회사나 보험회사 등으로부터 성가신 영업 전화를 많이 받았던 터라, 본인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조금 답답해졌다.
고3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 칸막이가 되어있는 책상에 앉아 책자를 펴고 전화를 건다.
“안녕하세요. 태양광업체”
뚜뚜뚜뚜. (상대방이 끊음)
“안녕하세요. 태양”
“그래서요? 뭐요?”
뚜뚜뚜뚜. (놀래서 현주가 끊음)
거절이 계속될수록 겨드랑이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마음에서는 겨드랑이 땀만큼 눈물도 흐르는 것 같다. 여긴 어디? 난 누구? 현타가 오는 순간이지만, 어느새 또 다른 회사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는 현주.
“안녕하세요. 태양광업체 ****입니다. 태양광 제품이 필요하시면 참고하시라고 이메일로 견적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메일 주소를 불러주세요. 담당자분 성함도 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드디어 첫 성공!
현주는 꽤 성취감을 느낀다.
‘드디어 해냈다! 내가 해냈어!’
3시간 동안 현주는 24곳의 이메일을 받았다.
여직원에게 업무일지와 핸드폰을 전해주고, 17년 만에 쏟아지는 칭찬들을 듣는 현주.
“우와~ 현주씨 정말 퍼펙트해요. 목소리도 너~무 좋고, 멘트도 딱 잘하네요. 메일주소도 24곳이나 받고~~. 이런 알바생 처음이야. 다들 5곳도 못 받고, 땡땡이치고 그랬거든. 현주씨는 누가 보든 안 보든 성실히 잘하네요. 정말 짱이에요. 짱!”
“아~ 그런가요? 도움이 되었다니 제가 더 기뻐요. 그런데 여쭤볼 게 있어요. 이 알바는 언제까지 하나요? 저 책자가 끝나면 저도 알바 끝인가요?”
“아니에요. 계속할 거예요. 걱정하지 말고, 내일 봐요.”
다음날 현주는 기분 좋게 사무실로 향한다. 오랜만에 일을 하니 생동감이 넘치는 현주다.
고작 3시간이지만 현주는 정말 열심히 전화를 돌리고, 친절히 답한다.
그리고 일 끝나고 듣는 칭찬이 너무 좋다. 여직원의 칭찬 한마디가 현주를 춤추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