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ly

도락산을 사랑한 그녀

by 한스푼

Sally는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을 했다. 그 시절 여자들은 모두 그랬다.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남자 형제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초등학교 졸업 후 바로 공장으로 취업했다. 결혼을 하고 자식들을 다 키워놓고, 손자 손녀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하자 Sally는 손자들에게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마을 복지관에서 하는 영어 수업을 등록하고 첫 수업을 했다. A, B, C, D... 를 처음 접한 순간 머리에 지진이 나는 것 같았다. 한국사람처럼 생긴 선생님이었는데 혀는 꼬부라져 있었고,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게 아닌가. 2번 수업을 듣고 나서 Sally는 재빠를게 배움을 포기했다. 주말마다 오는 손주들은 여전히 영어동화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달라고 성화였다.


아들에게 어려움을 전하니, 아들은 노인들이 다닐 수 있는 중학교를 등록해 주었다. 중학교에 가니 Sally와 비슷한 노인들이 많았다.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눌 동무들이 생겨 Sally는 즐겁게 학교를 다녔다. 영어도 이제는 곧잘 말하곤 했다. 드디어 손주들에게 영어 동화책을 읽어 줄 수 있어 정말 기뻤다. 그리고 손주들의 엄지 척 칭찬을 들을 때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마음이었다.


중학교 졸업 후 Sally는 다시 마을 복지관 영어 수업을 등록했다. 영어회화 선생님은 한국말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는 선생님으로 바뀌어 있었다. 2년 동안 복지관 수업을 들으며 영어에 자신감 한껏 오를 Sally. 3월에 새로운 신입 학생들이 많이 들어올 때 Sally는 지수를 만났다. 본인의 며느리를 닮은 지수가 마음에 쏙 들었다. Sally는 지수의 손을 이끌며 자기와 짝꿍을 하자고 제안하고 옆자리에 지수를 앉혔다. 반 강제로.


지수는 부끄러움이 많았지만, 영어로 제법 말을 잘했다. 역시 젊은 사람과 짝꿍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Sally. 지수와 점점 친해질수록 둘은 서툰 영어로 쉬는 시간까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도 그런 지수와 Sally가 귀여웠는지 둘에게 팀과제도 내주고 발표도 시켜주었다.


Sally와 지수는 수업이 없는 날에도 전화를 걸어 서툰 영어로 하루일과를 묻고 답하기를 했다. Sally의 하루 일과 주제는 도락산이었다. 집 뒤에 있는 도락산을 매일 산책한다고 했다. 자기가 살아 숨 쉬는 한 '내 사랑 도락산'을 함께 할 거라고 했다. 지수는 그때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Sally가 왜 매일같이 산에 가는지를.


수업 때마다 Sally는 지수에게 텃밭에서 수확한 고구마, 상추, 토마토 등 이것저것들을 챙겨다 주었다. 지수는 그런 Sally가 친정엄마 같았고, 삶에 힘듦이 있을 때마다 조언을 구하곤 했다.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보다 연륜이 있는 Sally의 조언들이 더 현명했고 자비로웠다. 지수는 그때부터 나이가 많은 어른들과 마음이 더 잘 통함을 알게 되었다. Sally와 친해진 이후로 나이가 많은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1년 반동안 Sally와 지수는 영어 수업을 함께 들으며 삶의 많은 것들을 공유했다. 지수가 이사를 떠나는 날 Sally는 눈물을 보였고, 영어로 적은 이별 편지도 주었다. 한동안 둘은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영어로 물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연락은 뜸해졌다.




상철이는 어렵게 Sally의 연락처와 주소를 알아냈다. 직접 찾아가 지수의 장례식에 대해 설명을 드렸다. Sally는 연세가 많았지만 거동에는 불편함이 없으셨고, 장례식에 아들과 함께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상철이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지수가 쓴 편지를 전달했다.


Hi, Sally.
Long time no see.
I always missing you.

Sally보다 먼저 떠나서 미안해요.
Sally가 늘 이야기했죠?
오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고.

살아오면서 Sally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어요.
내가 어른들을 존경하고 배울 수 있다고 느끼게 해 준 첫 어른이에요.
언제나 지혜로운 말씀을 해주시고,
산이 얼마나 좋은지 몸소 알려주셨어요.

Sally 덕분에 저도 '내 사랑 소요산'이 생겼답니다.
매일 시시각각 변하는 소요산과 함께한 시간을 보낼 때면
늘 Sally를 생각했어요.
Sally가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하며.
자연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어요.

저의 장례식에는
내 인생의 감사함과 의미가 있는 분들을 모시고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Sally의 건강이 허락한다면
저의 장례식에 와주세요.

우리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추억해 주세요.

Thank you for being my friend.




Sally는 마음속으로 언제나 지수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연락이 끊어졌을 때도 바쁘게 잘 살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지수는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으니.


내일은 지수의 장례식에 가는 날이다. 지수에게 먹여주고 싶은 음식들을 며칠 전부터 만들고 있었다. 마지막 겉절이를 통에 담아 놓고, Sally는 잠자리에 든다.

keyword
이전 10화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