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분이

한양과 김양의 맞춤 코드

by 한스푼

지수는 대학원 졸업 후, 반도제 장비 업체에 취업을 했다. 중소기업이지만 규모가 꽤 컸고, 여직원들의 복지가 마음에 들어 지원을 하게 된 회사였다. 회사 근처 아파트에 여직원 4명이 함께 살 수 있었고, 월급도 생각보다 많이 주었다. 지수는 장비 연구 1팀 엔지니어, 종분이는 설계팀 엔지니어였다. 동갑인 둘은 같은 아파트 같은 회사를 다니며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 함께 지냈다.


서로는 성만 따서 한양, 김양이라는 애칭을 불렀다. 종분이는 지수와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엉뚱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다. 여행을 가는 것도. 코드가 어쩜 이렇게 맞춘 듯 딱 맞는지 서로 신기해했다.


대학교 때 같은 학과 지수의 친구 성기는 일본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성기는 일본으로 놀러 오라고 메신저로 연락을 했고, 예쁜 여자도 같이 오면 좋겠다고 했다. 성격도 좋고 어여쁜 종분이를 성기에게 소개해주기로 하고 종분이를 데리고 일본으로 갔다. 성기는 한국 선배 한 명과 자취를 하고 있었고, 네 명은 5일 동안 온천도 다녀오고 일본 여기저기 맛집 탐방도 했다. 일본 여행 후 성기가 종분이를 만나러 한국을 자주 오고 갔지만, 종분이는 여자처럼 섬세하고 말이 많은 성기가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종분이는 주말이면 지하철을 타고 홍대에 그림을 배우러 다녔고,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회도 나갔다. 미술을 좋아하는 종분이 덕분에 지수는 종분이와 미술관을 자주 다녔다. 그림을 멀리서 보고 제목 맞추기도 하고, 미술관에 있는 그림을 한 점 사준다면 무엇을 고를 것인지 고심하기도 했다. 물론 사지는 못했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거웠고 그 그림을 가진 것 같았다.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오면 종분이에게 다른 부서의 남자 직원들이 종종 러브콜을 했다. 혼자 나가기 싫다며 종분이는 늘 지수를 데리고 나갔다. 덕분에 지수는 맛있는 저녁과 야식으로 치맥을 자주 먹었다. 종분이는 남자직원들에게 늘 선을 긋지만, 여자인 지수가 보기에도 예쁘고 매력이 넘치는 종분이를 다들 좋아했다.


회사를 다니는 2년 동안 종분이와 지수의 버킷리스트인 결혼식 축가도 함께 부르고, 여행도 함께 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 지수.


지수는 결혼 후 상철이를 따라 경기도 포천으로 이사를 가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겨울이면 포천으로 놀러 와 스키를 타고 갔던 종분이. 고향인 삼천포에서 결혼을 하게 된 종분이의 결혼식을 가기 위해 7시간을 달려가 1박을 하고 결혼식을 참석한 지수. 서로 함께 했던 시간들의 그리움이 컸지만, 지수의 잦은 이사로 종분이와 지수는 연락이 점점 뜸해졌다.




종분이는 하나뿐인 딸을 결혼시키고, 남편과 함께 고향인 삼천포로 내려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지수 남편 상철이가 문자를 보내왔다. 지수의 장례식에 초대를 한다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워킹맘으로 일하느라 정신없이 살다 보니 지수와 연락이 거의 닿지 않았고, 갑작스럽게 전해받은 장례식 초대장을 본 종분이는 당황스러웠지만 역시 지수답다고 생각했다.


종분이는 지수에게 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배운 실력으로 정성껏 삼천포 바닷가 시골마을을 그렸다. 그리고 둘이 기숙사 방에서 교환해서 읽던 책도 준비하고,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즐겁고 황당하고 행복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이별편지로 적어 내려갔다.


마지막 사랑의 말을 적고 나니, 그동안 참고 있었던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한다.




김양!
나 한양이야.
이렇게 갑자기 죽기 있기야?
나한테 허락도 안 맡고.

우리 그때 기억나?
일본에서 온천 갔을 때,
바다 위 절벽 야외 온천에서 지나가는 배를 보고
가위바위보 진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손흔들기 한 거.
우린 참 대책이 없었지.
물론 거리가 멀긴 했지만, 알몸으로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다니.

미술관에서 못 사준 그림
내가 그려왔어.
서로 미술관에서 작품 보며 제목을 맞출 때가 항상 그리웠어.
나랑 그런 놀이해 준 사람 너밖에 없는 거 알지?
추상화는 제목이 '무제'가 제일 많았잖아. 그지?

너랑 별 보러 갔을 때도 생각이 나.
추울 때 별이 잘 보이니까.
엄청 추운 겨울날 나의 작은 모닝을 타고
시골 산속으로 올라가 별을 봤었지.
얼어 죽을 뻔했지만,
그 별보다 빛나는 별은 아직 못 본 것 같아.

김양!
바람이 되든 별이 되는 딱 기다려.
나도 죽으면 너 근처로 갈게.
우리 저세상에서도 신나게 놀아보자꾸나.

사랑한다. 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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