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걸
같은 과 선배인 진영이와 결혼을 했고, 결혼 6년 차에 지수를 만났다. 홈플러스 문화센터에서 파스텔화 강좌를 함께 들으며 그림을 그렸다. 지수는 효서니와 동갑이었고, 둘은 고향도 같아서 더 빠르게 친해졌다. 쌍둥이를 임신한 지수의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효서니가 짐도 들어주고, 집에 초대를 해서 맛있는 음식도 해주었다. 효서니는 결혼 6년 차이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인공수정도 매번 실패를 해서 시험관을 할까 말까 하는 고민이 가득했다. 쌍둥이를 품고 있는 지수가 부러웠고, 지수의 첫째 딸을 함께 만날 때면 귀여워서 어찌할 줄을 몰랐던 효서니.
효서니는 주말에도 남편과 함께 지수집으로 놀러를 갔다. 지수 딸이 눈에 아른거려 계속 보고 싶기도 했고, 남편 진영이도 지수네 가족들을 좋아했다. 왕래가 잦아질수록 두 가족은 점점 더 가까워졌고, 서로의 고민도 들어주는 이웃사촌이 되었다. 효서니의 고민이 불임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수는 팬티 두 장을 포장해서 효서니에게 건네주었다.
"효서나, 이거 입어. 내 거랑 남편 건데, 내가 깨끗하게 삶았어. 그래도 혹시 찜찜하면 다시 빨아."
"뭐야. 이거 다 미신이야!"
"야! 그래도 해볼 건 다 해봐야지. 나 다산의 여왕이야. 내 기운 팍팍 받으라고!"
"너의 성의를 봐서 받기는 하겠지만, 민망하네."
지수는 효서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 언니 말 들어. 사람일은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거야. 꼭 입어라."
지수가 쌍둥이를 낳은 지 한 달 즈음되었을 때, 효서니에게 전화가 왔다. 울먹이는 지수의 목소리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간 효서니. 상철이가 훈련을 가서 일주일째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혼자서 아이 세명을 돌보는 게 너무 힘들다고. 큰딸은 어린이집에 가서 집에 없었다. 효서니는 엉망이 된 집을 대충 치우고 나서 쌍둥이 목욕시키는 걸 도와주고, 지수가 먹을 미역국도 끓였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야 지수와 효선이는 밥을 한술 뜰 수 있었다.
밥을 먹으니 지수의 젖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떡진 머리에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온 지수가 유축기로 모유를 유축하는 걸 보니 효서니는 부러움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컸다. 갑자기 유축을 마친 지수가 모유를 컵에 따르더니,
"효서나, 오늘 와줘서 고마워. 내가 너에게 줄 게 이것밖에 없네."
하며 건네주는 게 아닌가.
"얘가 미쳤나 봐. 네가 내 엄마도 아니고. 내가 왜 네 젖을 먹어?"
효서니는 팔짝 뛰며 거절했다.
"야! 초유가 얼마나 귀한 건데 안 먹어? 너 이거 돈주고도 못 산다. 쌍둥이들 양식 나눠주는 거야. 네가 쌍둥이들이 뱃속에 있을 때 밥을 얼마나 많이 해줬니? 이 정도는 나눠먹어도 돼."
지수는 지지 않고 끝까지 권유를 했다.
"그리고 내 젖을 먹어야 네가 더 건강해져서 아기가 생기지. 나도 우리 효서니 미니미 보고 싶어."
효서니는 망설이다가 몸에 좋다고 생각하니 먹을 용기가 생겼다.
"나의 미래 아기를 위해서 먹는 거야. 그런데 이건 좀..."
망설여지긴 했지만 살면서 언제 또 초유를 맛보게 될지 모르니, 그냥 들이켰다. 약간 밍밍하고 비리긴 했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효서니 내외는 부부관계를 할 때 지수가 선물해 준 팬티를 입었다. 그래도 아기 소식은 없었다. 그런데 지수의 초유를 먹고 난 후 두 달이 지났을 즈음 감기 기운이 있어 병원을 갔다. 의사 선생님은 감기 증상은 없다며 혹시 임신가능성이 있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달에 생리일이 2주나 지나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 임신테스트기를 사서 다음날 아침 첫 소변으로 검사를 했다. 어머나 세상에 두줄!! 드디어 아기가 생겼다. 효서니는 남편보다 먼저 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수야! 나 임신했어! 나 아기가 생겼다고! 너 모유가 효과가 있었나 봐."
"정말 잘됐다. 축하해. 나 눈물 나려고 해. 내가 이렇게 기쁜데 넌 얼마나 좋을까. 너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우리 효서니 장하다!"
효서니와 진영이를 닮은 건강한 딸이 태어났다. 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지수가 효서니 집으로 찾아와 미역국을 한솥 끓여주었다. 아기도 재워주고, 산모 몸관리에 대한 리스트도 뽑아서 벽에 딱! 붙여주었다. 지수는 효서니가 본인의 아이들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렸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효서니에게 꼭 아기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지수가 해줄 수 있는 건 모두 해주고 싶었다. 그 결실이 이루어져 얼마나 기쁜지. 효서니의 건강하고 어여쁜 딸을 보니 벅찬 마음에 눈물이 고였다.
두 가족은 멀리 떨어져 살아도 2~3년에 한 번은 만남을 가졌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흐뭇하고, 행복했다.
상철이에게서 지수의 부고문자가 왔다. 지수가 일 년 동안 아팠었다고. 떠난 지는 한 달이 지났으며 장례식에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효서니는 너무나도 깜짝 놀랐다. 가끔 전화 통화를 할 때도 늘 유쾌했었던 지수였다.
'지지배, 아프면서 아픈 티도 안 내고. 뭐야..'
효서니는 지수가 1년 동안 얼마나 아팠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너졌다. 흐르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내 사랑하는 친구 효서나
너의 유쾌함이 나는 정말 좋았어.
아플 때도 너와 통화를 한 날은 통증이 거의 없었거든.
너의 딸 규리의 결혼식을 못 보고 눈을 감는 게 좀 억울할 뿐이야.
규리는 내 딸 같기도 한 아이잖아.
진영이 오빠와 규리와 즐겁게 지내다가 다시 만나자
너의 목소리, 너의 음식들이 그리울 거야.
나의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사랑한다 친구야.
드디어 내일이 지수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효서니는 이별 편지와 책, 옷가지들을 챙겨 가방에 담는다.
'김지수 딱 기다려! 내가 제대로 이별인사 할 거니까! 보고 싶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