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음에서 위로를 받다
강이와 민지와 지수는 모두 직업군인 가족이다. 아이들이 올망졸망하던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이웃사촌.
민지가 넷째를 임신하고 있을 때, 셋은 군인아파트 놀이터에서 서로 알게 되었다. 민지는 아이 셋을 2살 터울로 낳고 셋째가 2살이 되던 해에 넷째를 임신했다. 강이는 첫째 아이를 시험관으로 어렵게 얻었고, 둘째 셋째 넷째를 세 쌍둥이로 낳은 대단한 다둥이 맘. 지수도 아이가 셋이라 많다고 생각했지만, 강이와 민지를 만나고 나서는 꼬리를 내렸다.
지수 주변 이웃들은 자녀가 한 명인 경우가 많았고, 둘 이상인 자녀를 둔 가족은 드물었다. 외동의 자녀를 가진 가족들과 식사를 하거나 같이 여행을 갈 때는 지수네 아이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닐 때마다 민폐라고 생각했다. 그 이웃들은 한번 만남을 가진 후 다시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강이과 민지도 똑같은 일들을 반복했다고 했다. 세 가족은 다자녀로 뭉쳐 함께 공원도 가고, 물놀이도, 여행도 함께 하며 시끌벅적한 일상들을 같이 했다.
서로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다 한 명씩 아픔을 드러냈다.
강이가 먼저 썰을 풀었다.
"언니들, 저는요. 아빠를 피해 동생들을 데리고 21살에 독립했어요. 막내가 고등학교 1학년때요. 아빠가 술고래였거든요. 술만 먹으면 엄마를 때리고 욕하고. 자고 있는 저와 동생들을 깨워서 새벽 6시까지 무릎 꿇여 앉혀놓고 일장연설을 했어요. 우리들은 졸면서 듣다가 6시에 아빠가 잠들면 한두 시간 쪽잠을 자고 학교에 지각하기 일쑤였죠. 막냇동생은 잠이 덜 깨어 신발을 서로 다르게 짝짝이로 신고 가서 친구들에게 놀림도 많이 당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땄어요. 성형외과에 취업을 해서 1년 동안 죽어라 일하며 돈을 모았어요. 원룸 보증금이 모이자마자 동생들을 데리고 아빠 몰래 도망쳤지요. 엄마는 맞으면서도 우리의 거쳐를 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아빠 싫어해요. 술 먹고 주정하는 사람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답니다."
지수도 아빠 이야기라면 자신이 있었다.
"음.. 우리 아빠는 저를 때렸어요. 약한 언니와 저를요. 지금 생각해 봐도 이해가 안 돼요. 그냥 본인 화풀이용이었던 것 같아요. 전요, 비가 오는 날이 싫었어요. 집 마당이 시멘트였는데 비가 오고 나면 초록색의 이끼가 늘 끼었거든요. 아빠는 집을 나가기 전에 솔을 던져주면서 언니와 저한테 이끼를 모두 닦아내라고 했어요. 5~7살의 유치부 애들이 어떻게 이끼를 닦아내겠어요. 나름 열심히 했지만 이끼는 쉽게 닦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또 맞았죠. 2살 터울인 언니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어 교과서를 받아왔어요. 그날부터 지옥이 시작됐어요. 아빠는 책의 맨 앞에 있는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것을 외우게 했어요. 저녁마다 검사를 했는데, 한글도 간신히 읽는 우리는 한 페이지 가득한 글을 외우지 못해 매일밤 맞았어요. 이렇게 매일 맞다가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기를 쓰고 외웠어요. 그리고 한 달이 지나 우리는 맞지 않게 되었죠. 늘 그런 식이였어요. 우리가 해내지 못할 일들을 주면서 구타를 하는..."
민지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저는요. 아빠가 최근까지도 돈 내놓으라고 연락이 와요. 내가 빚쟁이도 아닌데... 내가 아는 아빠는 월급을 모두 술 먹고 노느라 탕진하고, 엄마에게 생활비를 단 한 번도 준 적이 없어요. 그래서 늘 엄마가 밤늦게까지 일하셨어요. 지금도 일하시고. 막내가 20살이 되자 엄마는 아빠와 이혼을 했어요. 속이 시원했죠. 저도 그때부터 아빠랑 연락을 끊었어요. 그런데 제가 선생님이 되고 난 후 어떻게 알았는지 술 먹고 학교로 찾아와서 돈 내놓으라고 깽판을 치는 거예요. 얼마나 부끄럽던지. 지금 생각해도 눈앞이 아찔해요. 아빠가 맨 정신일 때 찾아가서 말했어요. 한 번만 더 날 찾아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그 후로는 안 오더라고요. 결혼 후에 아이를 낳고 제가 가끔 찾아갔어요. 그때마다 아빠는 매번 저에게 손을 내밀죠. 돈 달라고."
셋은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공통분모의 것들이 많았다.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며 2년여의 시간을 함께 했다. 군인 가족이라 일정 시간이 지나면 헤어져 다른 지역에서 살게 되었지만,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지속적인 만남을 해왔다. 휴가 기간이 겹치면 함께 휴가를 보내며 그동안의 삶들을 이야기하며 회포를 풀었다. 아이들도 밤늦게까지 속닥속닥.
그녀들은 삶을 살아오면서 늘 '아빠'라는 단어에서 걸려 넘어졌다. 아픔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운 어린 나이에 같은 상처가 반복이 되면서 그 안이 곪아터져 아물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녀들은 만날 때마다 서로의 아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곪아터진 부분을 들추어내어 고름을 닦아내고, 소독을 하고 서로 반창고를 붙어주었다. 그녀들의 나이가 40대 후반까지 이 작업을 매번 했다. 그때마다 쓰리고 아팠지만, 함께 견뎌냈다.
50살이 되자 그녀들의 삶에서 '아빠'라는 단어는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게 되었다. 상처는 아물어 아름답게 흉이 져서 빛나는 상처자국이 되었다. 아픔이 지혜로움으로 승화가 되었다. 삶의 가치에서 부모의 역할에 대해 도움이 많이 되었던 흉터다.
강이와 민지는 지수의 부고를 듣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강이는 지수와 함께 걸었던 남한산성에서, 민지는 교회에서 기도를 하며 지수를 떠나보냈다.
그녀들은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지수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한 자 한 자 편지를 적는다. 내 인생 최고의 책을 옆에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