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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Aug 29. 2022

사직동이 사라져간다.

재개발 답사 보고서.Zip




종묘사직이라는 말을 역사 드라마에서 자주 들었던 나.


어릴적 이성계 관련 드라마를 보고 사직단을 알게 되었고, 그 역사적 소재가 뒷받침되는 사직동으로 이동해보았다. 그전에 사직동은 나에게 있어서 꽤나 재미있는 동네였다.


전에 언급했던 후암동처럼 대략 30도를 유지하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번갈아가면서 지속된 동네였기 때문이다. 문득 나는 이 동네를 탐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나저나 사직동의 풍경은 마치 일제강점기 이후 지어진 근대 건축물이 참으로 많았다. 아니면 그런 느낌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본 사직동 마을을 한번 그려보았다.


깍두기 같은 빨간색 2층 구조의 단독주택, 그리고 목조주택을 연상케하는 짙은 갈색의 조합


절대 깍두기를 보고 그린 게 아니다. 사직동이라는 지역을 답사 전에 미리 로드뷰를 해보았는데 저런 집들이 참으로 많았다.


내심 기대를 하고 얼른 사직동으로 이동했다. 서촌 마을 근처라서 이동도 편했다. 날씨가 좀 선선해지니 따릉이를 타고 사직단 근처에서 내렸다.


그리고 이윽고 시작하는 오르막길을 차근차근 이동하면서 풍경을 담아보는데... 이런 푯말이 각 호마다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출입 금지> 스티커가 붙어있는 사직동의 여러 가구 수


참으로 희한했다. 아니 그보다 더 걱정되었던 것은 종로구에서 왜 이러한 푯말을 붙였는지 의아했다. 문득 앞마당에 소소한 텃밭을 꾸미는 할머니에게 여쭤보았다.


할머니는 외지인의 달갑지 않은 질문에 3초간 나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이윽고 이 말을 툭 던지셨다.


"재개발이 곧 시작될 테니 뭐 그런거 아니더냐. 말세다 말세."


이 말 한마디로 끝났다. 최근에 용역업체가 다녀간 이후 집 곳곳에 이러한 푯말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종로구에서는 조만간 건설사 및 시행사를 통해 재건축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혹시라도 몰라 최근 뉴스 기사를 찾아보니 역시는 역시였다. 사직동은 문화재 보존 구역이 근처에 있기에 개발이 되지 않을 줄 알았지만 사실 아니었다. 


문득 생각에 잠겼던 나는 이 동네에 거주하시는 분들의 나이대와 호구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노인층, 그리고 저소득 가구수가 많은 듯 보였다. 할머니는 자신의 옛 추억을 회고 삼아 나에게 사직동이 얼마나 풍요롭고 조용한 동네인지 설명해 주셨다.


"사직동은 그냥 동네가 아니여. 옆에 경복궁도 있지. 광화문도 있지. 그리고 경희궁도 있는 곳인데 왜 여기를 떠나라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


누가 떠나라고 했는지 이미 예측이 되었다. 지자체에서 날인, 결재를 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 충분히 이해되었다. 물론 상생을 위해서 그리고 시대가 흐름에 따라 옛 동네가 사라진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세상 불변의 법칙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텃밭을 키우러 경희궁 어느 낮은 언덕으로 이동하셨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난 사직동 곳곳을 다시 후벼파기 시작했다.


종로구에서 이미 시행한 재개발. 전면 재개발이라기보다는 공가 및 흉가를 갈아엎고 새롭게 단장할 모양인가보다. 그렇게 믿어야지.

지도 로드뷰로도 확인이 어려운 곳이었기에 성인 남자가 겨우 지나갈만한 좁은 골목을 겨우 입성했다. 마치 정글 숲을 지나가는 것처럼,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처럼 난 모험 심리 뿜뿜 자극받으며 사직동을 거닐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괜찮았다. 뭔가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어느 좁디좁은 골목을 3분간 지나가자 겨우 등장한 곳.


땅은 하염없이 난자하게 파헤친 모습이었고, 곳곳에는 출입 금지 천막과 바리케이드, 그리고 형광줄이 붙어 있었다.


왜인지 들어가면 뭔 사건이 터질지 모를까 봐 덥석 겁이 났다.


인근에는 아직도 사람의 흔적이 있는지 김치찌개 끓는 냄새와 빨래 걷는 소리가 자자했다. 어느 할아버지였다. 이내 눈이 마주쳤고 나를 용역업체 어느 직원으로 봤는지 냉큼 "꺼져-이놈아!" 이런 말을 남기시고는 호다닥 도망가셨다. 나도 갑자기 뻘쭘해지고 무서운 건 덤이었다. 이제 그런 옛정이 있는 사직동이 아니구나 새삼 느껴졌다. (사실 재개발 이면에는 사람의 심리가 그럴 수밖에 없지.)


-


아무튼 이 사건을 계기로 난 앞으로 공가나 폐가와 같은 개발 구역은 가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느 서울의 옛 건축물을 수집하고 기록하시는 분들은 이런 곳도 잘 가시던데 난 아직 그런 짬밥이 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나보다. (사실 겁났다.)


<다음 화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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