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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Sep 01. 2022

재개발 흔적 찾기

재개발 답사 보고서.Zip

[할머니와 할아버지, 소소한 김치찌개 냄새, 옆구리가 시리도록 허전한 장독대, 2층 저지대 주택, 빨간 벽돌의 노후화, 출입 금지 푯말, 길고양이들]



내가 남길 수 있는 거라곤 이 포스트잇 메모 하나뿐이었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낸 포켓용 노란색 이면지 위에 하나씩 연상되는 키워드를 적어보았다.


도시의 회색빛이 연상되지 않은 이 소소한 동네는 이제 기록으로 남겨야지.

골목 곳곳을 누비다 보면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 둘 글로 남긴다.


그동안 골목투어를 하면서 그저 멋스럽고, 관광지, 핫플레이스, sns인증샷 용도, 대중적인 전시회, 미술관, 독립서점이라는 인공적인 한계에 머물렀던 나는 아주 작은 만년필을 꺼내 잠깐 우두커니 서면서 이 기록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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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초록다움


장마철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정글과 같은 골목이 되어버린 사직동 풍경을 하나하나 찍어보았다.

곳곳에는 잡초가 무성하며, 보행길 곳곳에는 이름 모를 잔디들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도시, 그저 사람들이 살며 의식주를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공생할 수 있다는 역설적 사진을 겹겹 쌓아 계단 형식으로 만들어보았다.


계단 형태의 각도는 문명의 이기와 과학은 발전하지만, 그에 반해 자연은 점점 도태되어 결국 인간중심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결과로 이어진다는 표면을 설명해 주고 있다.



사진 2) 치안상태가 취약했던 근대 건축물, 능소화는 반쯤 피어있고


곳곳 담벼락은 성인 남자가 겨우 넘어갈만한 상태였으며,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이 곳곳에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현재 활용되지 않음이 사진에 고스란히 놓여있다. 전조등과 비상 센서는 그저 방치되어 있고, 거미집을 치고 있는 거미와 녹슨 전조등이 그저 나를 반겨줄 뿐이었다. 사직동 및 교남동 주변 인왕산에서 서식하는 야생 유기견들이 종종 출몰하니 놀라지마고 종로구에 바로 신고 요청하라는 안내문도 적혀있다.


서울 도심이라고 믿기지 않을, 그저 서울 외곽을 연상케하는 작은 시골 동네 같다.



사진 3) 인공적인 장소 위에 만났던 잡초, 그리고 예쁜 잔디


골목 곳곳을 누비면 만날 수 있는 90년대 전조등이 반갑다. 근처에는 목조로 되어있는 전봇대가 있다는 현 주민의 정보를 토대로 지도가 찍히지 않은 곳곳을 누벼보았지만 사실상 없었다. 아니면 재개발로 인해 이미 위험 가능성이 높은 전기와 필수 부자재를 이미 철거하고 치운 모양이다. 인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갈색 철문 앞에는 썩어버린 우편만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중간에 조선 구한말에 만들어진 목조식 대문이 반쯤 누워진 채 그 뒤로 경고형 펜스가 가로막고 있다. 그 안을 찍어보니 무성한 잔디가 사람이 없는 공가 곳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이 무서워서 도망간 갓혁...)



사진 4) 재개발의 흔적, 누군가의 사진, 누군가의 유품이 아니길.


조금 더 깊숙이 올라가니 재개발의 현장이 고스란히 방치되어 있다. 위험경고망과 펜스가 가까스로 위태롭게 있었으며 누군가가 남겨놓은 벽붙이 TV가 이름 모를 공가 앞마당에 쉬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민들레 비스름한 예쁜 노란 꽃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옛 가스 설비품이 외롭게 인왕산 자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할아버지의 옛 가족사진이 바닥에 반쯤 찢어진 채 (아니면 불에 탄 흔적이 있었다.) 어느 구석에 나뒹굴고 있었다. 가정사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참한 결과가 아니길 기대하면서 다시 이 공가를 나와본다.


이때 처음으로 어느 허름한 공가에 입성했다. 매캐한 연탄 냄새와 삐걱거리는 수세식 화장실, 그리고 곳곳에 널린 옛 생필품들이 반갑지가 않았다. 오싹한 느낌이 내 목 뒤를 덮치는 듯했다. 위급하게 나와본다. 기가 약했는지 아니면 처음으로 이러한 장소를 배회해서 그랬는지 그 결과는 참으로 아찔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함부로 흉가나 공가를 들어가지 말란 이유가 있었구나.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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